혼자 사는 김도훈 기자는 최근 ‘아이’ 하나를 들였다. 한 달 전 서울 상수역 근처의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같이 가던 선배의 “어머 귀여워” 소리에 돌아보니 작은 턱시도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가고 있었다. 도망갈 줄 알고도 손을 내밀었는데 뜻밖에 손가락을 살짝 문 뒤 다리 사이로 몸을 비비면서 왔다갔다 했다. 앉아서 만지니까 그렁그렁 소리를 내면서 드러누워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눈에서 아른거렸다.
다음날 캐리어를 들고 그 골목으로 갔다. 길고양이는 기다리지 않는 법. 근처의 옷가게 아가씨에게 이 주변에 자주 나타나는 턱시도 고양이의 행방을 물었다. 나타나면 바로 연락을 주겠다는 친절한 아가씨의 말에 돌아서는데 고양이가 저쪽에서 나타났다. 그는 예전부터 ‘운명적인 만남’을 꿈꿔왔다.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예전부터 기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번번이 분양 단계에서 거절했지요. 따라오면 키우겠다고 그러면서 말이죠.” 이름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영웅을 따라 지었다. ‘한솔로’.
고양이가 사람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고양이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는 접근. 노석미가 글과 그림을 그린 (시공주니어 펴냄)의 이름 없는 고양이는 모든 게 싫다. 수다스런 새가 싫고, 방정맞은 개가 싫고, 소년들이 정말 싫다. 그런데 어느 비 오는 날, 이름 없는 고양이를 ‘냐옹이’라고 부르던 안경잡이 소년 하나는 고양이의 몸 위에 우산을 씌워준다. ‘냐옹이’라는 이름도 맘에 들지 않지만 고양이는 소년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한다.
운명적인 만남 그리고 ‘시작’, 그러고 나면 섭섭하다. 고양이는 길목마다 웅크려 있고 만남은 계속된다. ‘고양이를 자주 줍는 사람’도 있다. 만화책 (중앙북스 펴냄)의 저자 쿠루네코 야마토는 버려진 고양이와 자주 만난다. “제법 말쑥한 행색으로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도 불현듯 적극적으로 ‘애처로운 새끼 고양이’를 연출”하는 고양이들을 주워오기 때문에 이제는 망설이는 시간도 아까워 바로 주워오게 됐다.
6천 년 동안 고양이를 길러왔다는데(고양이를 인간의 동네로 들인 건 7천 년 전이라고 한다) 인간은 고양이를 완전히 집에 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길의 고양이와 집의 고양이들이 구분되지 않는다. 한국고양이보호협회 운영위원 이용철(봄이아빠)씨는 인간에 친화적이냐 그렇지 않냐, 좋은 품종이냐 아니냐, 털에 윤기가 나냐 나지 않냐 무엇으로도 집고양이와 길고양이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두 고양이의 분류 기준은 시간에 의해 ‘생겨난다’. 길바닥을 걸어다니다 보니 길고양이의 발바닥은 거칠고 집고양이는 발바닥이 말랑말랑하다. ‘생겨나는 것’ 외에 두 고양이에는 구분이 없는 것이다. 카테고리화를 거부하는 고양이는 모두 각자 하나씩의 카테고리를 지닌다.
고양이들의 다양한 행동은 세로 스펙트럼이라기보다 가로 스펙트럼에 가깝다. …고양이들은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애정을 표현한다. …내가 아는 다른 고양이는 사람의 얼굴 가까이로 자기 얼굴을 들이댄 뒤 앞발을 입 안에 넣기 위해 기를 쓴다고 한다. 얼굴을 돌리면 다른 쪽 발로 뺨을 이쪽으로 돌려가면서까지 앞발을 입술 사이로 구겨넣는단다. 어떤 고양이는 기분이 좋아지고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지면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는 사람의 뒤로 접근해서 종아리를 앙, 물고 도망가기도 한다고. -박사, 검정고양이는 애꾸다1인 가구가 전체의 20%를 돌파했다. 그러니까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동거자’의 수까지 나와 있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와 개를 기르고 있을 것이다. 영화 의 만화가 아사코의 집도 1인 가구다. 집이 작업장이고 어시스턴트들이 함께 작업을 하니까 외롭지는 않겠다. 혹시라도 외로우면 비빌 생명체도 있다. 고양이 ‘사바’다. 어느날 아사코는 마감을 끝내고 난 뒤 사바의 몸이 축 늘어진 것을 발견한다. 아사코는 슬럼프에 빠져 작업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고양이를 잃은 슬픔은 고양이를 통해 치유한다. 결국 용기를 낸 아사코는 펫숍을 찾아가고 ‘구구’를 만난다.
만화가 김은희씨도 혼자 살면서 고양이를 키웠다. 올봄 재발간된 (책공장 더불어 펴냄)은 그가 기른 고양이들의 일대기를 사실적으로 그린 만화다. 주인집 현관에 묶여 있던 걸 데리고 와서 살게 된 신디(‘신데렐라’), 신디가 수컷을 평가하는 기준이 됐던 페르캉 1세, 반응이 느리던 이유가 눈이 어두워서라는 것이 나중에야 밝혀지는 신디의 1세대 추새, 신디의 2세대로 페르캉 1세와 똑 닮은 전화받는 고양이 페르캉의 얘기가 ‘감정이입’으로 펼쳐진다.
만화가는 고양이들을 풀어놓고 키웠다. 그중 페르캉은 특히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어느 날 검은 고양이 페르캉은 애꾸가 된다. 개한테 물린 것 같다던 의사는 말한다. “요놈 페르캉은 6kg이 넘게 나가니 사실 개와 싸운다면 요놈이 이기죠. 고양이들은 나무나 담을 탈 수 있으니까 웬만해서는 이런 일이 없는데… 이런 경우는 누군가 일부러 몰아놓고 그러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검정고양이들은 애꾸가 많다. 굳이 포의 검은 고양이를 떠올리지 않아도 주변에서 보고 들은 적이 많다. 검정고양이의 대명사 같은 ‘애꾸눈 잭’ 고양이. -김은희,을 재발간한 ‘책공장 더불어’의 김보경씨도 고양이를 풀어놓고 키운다. 서울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에 있는 혜화동 단독주택은 그의 직장이자 집이다. 고등학교와 담벼락을 이웃한 정원이 펼쳐져 있다. 그곳 정원 한구석에 먹이 그릇을 두어 집 주위의 고양이들을 먹인다. 집에도 고양이가 있다. 이 ‘대장이’는 아주 천천히 집으로 들어왔다. 같이 사는 부모님은 고양이라면 기겁을 했다. 지난해부터 대장이는 궁금하니까 집 안을 엿보기 시작했다. 김보경씨는 동네에서 대장 해먹는 그의 기세가 일찍부터 마음에 들었었다. 김보경씨가 한편에서 엄마를 설득하고 대장이는 “매트까지만” “마루까지만”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며 엄마의 호의를 얻어갔다. 지금도 기세는 꺾였지만 동네 외출을 멈추지 않는다.
고양이보호협회를 비롯해 고양이 입양을 주선하는 사이트는 모두 엄격하게 외출 고양이를 금한다. 김보경씨도 올해 대장이가 새벽에 나가서 48시간을 들어오지 않아 애를 졸인 적이 있다. “막다른 골목이라 차도 별로 안 다니고 정원도 있어서 좋은 환경이지요. 외출을 하니까 대장이가 건강한 것 같긴 해요. 저 외에 외출 고양이로 키우는 사람은 딱 한 사람 보았네요. 그런데 길에 다니는 고양이를 무조건 약자로 보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는 한 한국에서 집고양이를 외출 고양이로 살게 하는 건 요원한 일일지 모릅니다.”
영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아사코는 문에 구구 전용 문을 뚫고, 볕이 좋은 날 밖으로 내보낸다. 골목길을 지나면 우거진 공원이 있다. 어떻게 가는지 궁금해 아사코는 뒤를 쫓아간다. 구구는 울타리 위를 걷고 사라졌다가 나무를 타고 떨어지고 다시 정원을 돌아다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기 때문에 어린 시절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다른 고양이에게 밀려나게 된다. 어린 고양이가 사람 손을 타면 어미가 밀어내기도 한다. 도시는 길고양이와 집고양이를 가른다. 도시는 길고양이를 키우고 사람은 집고양이를 키우게 돼버렸다.
“고양이로 변신해서 지구인들의 마음을 빼앗은 뒤 지구를 탈취하자.” -페리네 혹성 외계인, 요네하라 마리의 중에서 인간 수컷은 필요 없어김보경씨 동네에는 최근 고양이한테 가장 무섭다는 ‘범백혈구감소증’이 돌았다. 먹이를 먹으러 오던 새끼 고양이 네 마리 중 한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아침 정원에 나와보니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두 녀석은 먹이를 먹으러 오지 않았다. 어느날 사라졌던 두 마리 중 한 마리인 두리가 방 안으로 스윽 들어왔다. 그사이 몸은 비쩍 말라 있었는데 침대 위로 올라와 잠을 잤다. 먹이도 먹지 않고 시름시름 앓던 고양이는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을 되찾았다. 곁을 내주지 않던 놈은 카메라가 다가가자 김보경씨 옆에 바싹 다가갔다. “이놈은 살 것 같아요.”
먹이를 먹으러 오지 않는 고양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겨울이 오는데 길고양이들은 어디서 지낼까. 이용철씨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회원들 중에 집을 만들어준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위치가 노출되기 때문에 오히려 안 좋을 수 있다. 개하고 달라서 만들어줘도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고양이는 사막에서 생겨난 동물인데 털의 구조가 추위를 잘 참게 생겼다. 겨울에 안쪽으로 촘촘하게 털이 한 겹 더 난다. 모기가 옮는 신장사상충에 잘 걸리지 않는 것도 털이 촘촘해서다. 모기가 털 틈새를 못 뚫는 것이다. 그리고 발바닥 젤리는 추운 것을 잘 못 느끼고, 배를 땅에 안 닿고 앉을 수도 있다. 몇 년 전부터 겨울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따뜻한 것을 좋아한다. 여름에 나온 (데틀레프 블룸 지음, 들녘 펴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적어도 북반구에서는 따스한 게 먹이만큼이나 중요하다. 고양이한테도 마찬가지다. 나는 지금껏 따사로운 햇볕에 기분좋게 몸을 드러내거나 몇 시간 동안이고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고양이를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악셀 에게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양이는 자기 몸에서 불이 나서 털이 타는 냄새가 코를 자극할 때가 돼서야, 불고기가 되기 직전에서야 뜨거워지는 오븐 위의 자리를 포기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있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김보경씨는 해가 지고 나면 보일러실 문이 열렸는지 확인해둔다고 한다. 고양이들아, 지구 정복의 꿈은 접고 우리랑 평화롭게 살자. 먼저 겨울부터 잘 나야지.
‘요츠바’는 동거인에게 업혀왔다. 분양한 집에서도 길에서 데리고 온 거라 생시를 모르지만 그 크기면 5개월 정도 되었을 때인 것 같다.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는 박스를 워낙 좋아했다. 이마트 봉지에 넣어 다니기도 했고, 택배 박스에는 한번씩 다 넣어보았다. 어느 날 요츠바가 댓병짜리 정종 박스에 들어가 식빵 굽는 자세를 하고 앉았다. 딱 고등어가 배달되어 온 것 같았다. 요츠바는 몸집이 커져서 터질 때까지 박스를 즐겼다. 주인장들의 음주가무로 인해 ‘방치’되던 고양이는 동거인의 친가 복귀와 함께 딸려갔다. 실려가던 차 창문으로 요츠바가 나를 계속 쳐다보는 것 같았다. -고양시에 사는 것으로 고양이와 가장 가까운 동네에 산다고 생각하는 기자 본인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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