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제네시스’ 전 드러머의 근황 </font>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제네시스’는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그룹이다. 어쨌든 그 전설이 만들어지기 전이겠다. 필 콜린스가 들어오기 전, 첫 번째 앨범을 내고 나서 바로 드러머인 크리스 스튜어트는 팀을 나갔다. 고작 열일곱 살. 잊혀진 어떤 드러머의 근황이 책의 발간으로 밝혀졌다. (눌와 펴냄)를 통해서다. 제네시스의 전 드러머 크리스 스튜어트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 시에라네바다산맥 기슭의 알푸하라스에 있는 ‘엘 발레로’의 농장주다. 번듯한 ‘명함’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농촌 정착기는 부러워할 만한 건 못 되는 것 같다. 그래도 확실히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점에서는 프로그레시브 록보다 ‘대중적’인 작업이긴 하다.
팀을 나가면서 그는 러시아 식당에서 기타를 치며 푼돈을 번 것 외에 음악 활동은 그만두었다. 돈벌이는 ‘출장 양털깎기’로 한다. 여행안내서 자료 취재원이 되어 여기저기를 다녀오며 ‘여행작가’라는 직함도 따라붙었다. 그는 어느 날 ‘험준한’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에 ‘시험 삼아’ 농장을 한번 둘러보러 갔다. 기가 센 부동산업자가 그를 안내하는 곳을 따라가며 그는 “영국 남부에서라면 정원용 헛간 한 채나 간신히 살까 싶은 돈을 가지고 폐가 하나, 어쩌면 땅뙈기도 조금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꿈을 꾼다. 그리고 부동산업자가 “당신에겐 여기가 어울린다”고 단언하며 “저 남자한테 이걸 쥐어줘요. 엄숙하게 말예요”라고 시키는 대로, 500만 페세타가 안 되는 돈을 쥐어주고 농장의 주인이 된다. “서식스의 공항 활주로 아래 오두막 세입자는 안달루시아 산속 농장 주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아내인 아나에게 농장을 샀다고 알려주는 것은 별로 두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곳이 댐 공사 예정지라는 소식을 안 것에 견주면. 댐은 25년 전 계획이라는 말을 들어도, 그렇더라도 엄청난 보상금을 받을 것이라는 말을 들어도, 안도할 수 없는 상황은 이어진다. 집은 차가 지나다닐 수 있는 길에서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있었고, 집에는 전갈이 출몰했고, 뱀이 나왔고, 아나가 너무나도 싫어하는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우린 진짜 모험을 떠나는 거라고. 지긋지긋한 일상의 반복은 안녕이야. 진정한 삶을 찾아서.” 고향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은 쉬웠다. 그곳에는 도로도 전기도 변기도 없었다. 심지어 계곡을 넘어 집으로 들어가는 곳에는 다리도 썩어간다. 그곳에서 껍질 안 벗긴 마늘과 대충 벗긴 감자와 고추를 집히는 대로 넣은 ‘파파스 아 로 포브레’(가난뱅이 감자)로 매 끼니 때우면서 그는 전 농장주 페드로에게 농장 일을 배워나간다.
그의 전직 중 하나였던 ‘양털깎기’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길을 제공해주었다. 일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아나가 이사를 와 모든 동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짐을 푼다. “이건 달걀 저미는 도구고요. 그건 아스파라거스 삶는 솥이에요. 그거요? 아, 이코지요. 찻주전자가 식지 않도록 씌워두는 덮개죠.” “삶의 허식들이 그들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중에 농장에서 요긴하게 쓰일 물건인 전기 양털깎이를 꺼냈을 땐 다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추측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항상 도움을 주는 옆집의 도밍고가 친척 중 한 명이 그 물건을 써보겠다고 했다고 전해준다. 크리스토발(크리스의 스페인 이름)은 양을 시커멓게 다 태워먹는다는 소문을 잠재우면서 양을 묶어두지 않고도 털을 깎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는 무사히 양털깎기를 마친다.
그는 여전히 좌충우돌의 영국 출신 신참 농장주였다. 양을 이리저리 잘 몰고 다니지도 못하면서 양을 기르고 자꾸 죽이면서도 가금류를 기른다. 그리고 조금씩 알아간다. 가뭄 뒤 닥치는 갑작스런 폭풍이 쓸어갈 테니 강과 다리에 돈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값을 올려받으려고 가축을 큰 시장에 내놓는 것보다 지역 사회의 고깃집에 파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엘 발레로에서 그는 딸 클로에를 낳고 지금은 앵무새도 기르고 있다고 한다. 읽으면서는 그의 낙천주의가 부럽지만 책을 덮으면서는 그곳 생활이 부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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