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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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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처럼 창의적으로, 모비딕 사냥만큼 끈질기게

기존 언론사 들어가지 않고 직접 언론이 된 <갈릴레이 서클> ‘모비딕 프로젝트’로 총선 보도의 빈구석 찌르고 <한겨레21> 등과 협업
등록 2016-04-14 15:22 수정 2024-11-06 15:28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조유라, 김재환, 김수빈, 최소영, 정재우, 박혜연, 이종희, 장은선, 박종화, 허빈, 김인경, 김석빈. 청년 독립미디어 <갈릴레이 서클>은 진지한 저널리즘을 담은 생활 밀착형 언론을 꿈꾼다. 갈릴레이 서클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조유라, 김재환, 김수빈, 최소영, 정재우, 박혜연, 이종희, 장은선, 박종화, 허빈, 김인경, 김석빈. 청년 독립미디어 <갈릴레이 서클>은 진지한 저널리즘을 담은 생활 밀착형 언론을 꿈꾼다. 갈릴레이 서클 제공


미디어 시장은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이다. 신문·방송은 원래부터 많고, 새로 만들어진 인터넷언론도 차고 넘친다. 블로그와 유튜브 등 1인 미디어까지 합치면 수를 헤아리는 건 포기해야 한다. 수많은 미디어와 경쟁해서 광고를 얻고, 기사 클릭 수를 높이려다보니 많은 미디어가 저널리즘보다 기사 어뷰징 등 ‘먹고사니즘’으로 빠져든 것도 사실이다.

‘희망은 있을까’ 싶은 미디어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젊은이들이 있다. 12명의 청년이 뭉친 <갈릴레이 서클>이다. <갈릴레이 서클>은 제20대 국회의원선거(총선)를 겨냥한 ‘모비딕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자체 홈페이지를 구축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한겨레21>과 <오마이뉴스> 등에도 콘텐츠를 제공한다.

“모이자마자 기획안부터 모았다”

<갈릴레이 서클>은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노인의 표심이 궁금하다며 서울과 수도권 등에서 100명 가까운 어르신을 만났고, 지역 청년들의 생각이 궁금하다며 대구, 광주, 강원도 원주에서 각각 100명씩 300명을 인터뷰했다. 기존 언론이 여론조사기관의 자료를 인용할 때, 이들은 직접 지역으로 내려가 수백 명씩 만났다. 그들의 열정과 여정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갈릴레이 서클>의 이야기는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께 독서모임을 하던 박종화, 장은선씨는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의 강의를 듣다가 의기투합했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 중요한 정보를 듣는 것이다’는 강의를 들었어요. 우리도 기자 준비생으로서 해볼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언론사 입사 지망생들이 모인 온라인 다음 카페에 글을 올렸다. 8명이 모여 올해 1월1일부터 시작했다. 얼마나 열정이 넘치는지 서먹서먹한 인사보다 회의로 직행했다. 장은선씨는 “모이자마자 기획안부터 꺼내놓고 시작했다”고 웃었다.

아이디어 회의는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미디어카페 ‘후’에서 진행했다. 일요일에 회의를 잡은 건 “일요일 저녁은 보통 다른 약속 없이 비워져 있기 때문”이란다. 회의는 주말도 반납한 채 밤늦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됐다.

박종화 대장(<갈릴레이 서클>은 대표를 ‘대장’이라고 부른다)의 ‘서번트 리더십’(하인 리더십) 때문에 힘든 일정을 감당해냈다고 팀원들은 말했다. “박종화씨가 스스로를 ‘갈아내면서’ 일을 찾아 하니 같이 안 할 수 없었다”고 장은선씨는 말했다.

모비딕 프로젝트라는 이름은 “평생을 바쳐 대형 고래를 추적하는 소설 <모비딕>의 주인공처럼 유권자를 위해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뜻”이라고 박종화씨는 설명했다.

이들의 목표는 총선과 관련해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특히 소외된 출마자에 주목하는 데 있었다. 지난 2월, 소수 정당과 비인기 후보자를 찾는 ‘프로듀스 300’과 총선 예비후보자 1426명의 전과기록 등을 분석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자신감이 붙은 <갈릴레이 서클>은 인원을 보강해 12명으로 확대했다. 총선을 겨냥한 7개 기획안을 만들었고 관심 있는 주제에 2~3명씩 달라붙었다. 넥스트저널리즘스쿨에서 배운 뒤, 뉴미디어답게 취재와 동영상 촬영도 병행했다.

노인 기획팀은 3월 초 서울 광화문광장과 종로 탑골공원 등을 돌며 노인을 상대로 각 당의 공약을 가린 채 선호를 물어보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다양한 노인층을 만나기 위해 노인정과 백화점 등도 찾아다녔다. 교수 등 전문가를 인터뷰하려고 <갈릴레이 서클>이라 소개하면 ‘묵묵부답’이기 일쑤였고, 국회의원 후보자 선거캠프에서도 이름 없는 매체의 설움을 받았다. 그래도 강행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람” 확인

지역으로 내려간 ‘구석청년’팀은 고생이 더했다. 대구·광주·원주에서 청년 100명을 만나기 위해 지역 중심가와 대학가 등을 발로 훑고 다녔다. 낯선 지역에서 길을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교통비를 아끼려고 우등고속버스 대신 일반고속버스를 택하고, 기차도 요금이 더 싼 무궁화호를 탔다. 점심은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때웠다. 잠은 모텔에서 잤다.

이들이 만든 언론은 아직 안정적 수입이 없다. 누리집에 광고도 없고 온라인 포털에 기사를 팔지도 않는다. 지역 취재 경비는 박종화 ‘대장’이 마련했다. “취직한 동생에게서 50만원을 빌려 썼어요.

대신 발품을 팔았다. 기존 언론사에서 보기 힘든 기획이 나오는 이유다. 발품 위주로 가니 3개월 동안 쓴 취재 경비는 모두 합쳐 70만원이 안 들었다. 사무실이 없어 커피숍을 찾아도 커피값과 밥값은 모두 각자 부담이다. <한겨레21>과 <오마이뉴스>에서 들어오는 원고료로는 충당하기 어려웠다.

이런 고난의 행군 끝에 나온 콘텐츠가 바로 <한겨레21> 제1105호 표지이야기 ‘할배요, 근데 왜 1번 찍는교?’와 제1107호 ‘어른처럼 투표하지 않겠다’ ‘19살 첫 투표, 벚꽃처럼 피다 지는 설렘’을 통해 소개된 기사들이다.

“요즘 젊은 놈들은 정치에 관심 없다는 비판이 문제가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고 박종화씨는 말했다. 다른 기획안들도 기사 또는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갈릴레이 서클> 누리집과 페이스북 ‘모비딕 프로젝트’ 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반응은 좋다. ‘할배요, 근데 왜 1번 찍는교?’는 포털 메인 기사로 소개되며 댓글이 수백 개 달렸다. 인터넷 매체 <슬로우뉴스>는 이 기사를 ‘이주의 좋은 기사’로 뽑기도 했다. 김인경씨는 “기사가 나간 뒤 달린 댓글을 모두 읽어봤다. 포털마다 다른 성향의 반응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했는데,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갈릴레이 서클>의 ‘(예비)기자’들로선 불안감과 싸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언론사 공채 시험이 시작됐는데도 취업준비생이 치러야 할 논술·작문 준비 대신 총선 취재에 매달렸기 때문이다. 대표를 맡은 박종화씨는 “서클 운영이 쉽지 않아 그만해야 하나 하루에 몇 번씩 마음이 왔다갔다 했다”고도 말했다.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은 후원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황량한 광야로 나가는 일이다.

그러나 일련의 취재보도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한 박종화씨는 모비딕 프로젝트 이후를 고민 중이다. “언론사 입사를 위한 스펙 쌓기가 아니라 기성 언론이 하지 않는 영역을 취재하는 것을 50일 동안 실험했다. 카카오 ‘스토리펀딩’을 시작하면서 돈도 조금씩 벌고 있다. 그래도 한국에서 우리는 기자가 아니다. ‘마와리’(경찰서 출입기자를 뜻하는 언론사 은어)도 돌지 않고 출입처도 따로 없다. 구성원도 언론사 입사 지망자와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 반반이다.”

부동산 탐사보도 커밍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갈릴레이 서클>은 총선 뒤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박종화 ‘대장’의 선택은 생활밀착형 미디어 스타트업으로 가는 길이다. “<갈릴레이 서클>을 언론사 지망생들이 추구하던 저널리즘의 가치를 잊지 않는 ‘소도’ 같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심층 탐사한 뒤 7월에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언론사 취업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봤어요. 이제 우물 밖으로 나온 거죠.” 박씨는 “눈이 커졌다”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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