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중심에서 서쪽으로 7~9km 사이. 바다와 육지가 맞닿는 곳에 외도동이 있다. 구제주시 중심 지역에서 보기엔 가장 서쪽에 위치한 ‘바깥’(外都) 마을이다.
폭염이 절정에 달한 지난 7월27일 외도동 월대천에서는 아이들의 물놀이가 한창이었다. 천변에는 수백 년 된 팽나무와 소나무가 휘늘어져 그늘을 만들었다. 바닷바람이 더해지자 더위가 금세 식었다.
“지난해 12월 마을에서 ‘외도동 마을미디어 라이브소울 페스티벌’을 열었고요, ‘보이는 라디오’ 방송도 진행했습니다.” 강창석(56) 외도동마을미디어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위원장이 말했다. 강 위원장의 설명 도중, 월대천 맞은편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얼굴이 보였다. “추진위원이면서 디제이(DJ)도 맡은 친굽니다. 의용소방대원이라서 물놀이 지킴이 하나보네요.”
‘소통의 울타리’ 방송내 이웃이 DJ가 되는 방송. 지난해 7월 발족한 추진위는 외도동 마을방송 이름을 ‘라이브(LIVE) 소울’이라고 붙였다. 소울은 ‘소통의 울타리’의 줄임이다. 사전을 찾다가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침’(疏鬱)이란 뜻도 발견했다. ‘이거다!’ 싶었다.
무엇이 답답했을까. 강 위원장은 마을미디어를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뭉친 이유로 “필요성에 대한 절실함”을 꼽았다. 과거 외도동은 도시와 촌을 잇는 길목이면서도 농촌마을에 가까웠다. 변화는 2000년대 초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새 주거지들이 생기면서 시작됐다. 2천 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을 시작으로 새 인구 유입과 상가 형성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2000년 기준 8003명이던 인구는 2016년 6월 기준 1만9132명으로 2.5배 가까이 늘었다. 1980년대 학생 수 감소로 분교가 됐던 초등학교는 2011년 다시 본교로 승격했다.
강 위원장은 외도동 토박이 ‘원주민’과 제주도 내 다른 지역 및 제주도 바깥에서 온 ‘이주민’의 비율을 2 대 8 정도로 추정했다. 강 위원장은 서귀포 출신으로 2000년대 초 외도동에 이사 온 뒤 지역의 급격한 변화를 직접 겪었다. “주민들 사이에 문화적 이질감이 있어서 학부모 모임 등 각종 생활 모임에서 정보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않으면 불필요한 오해와 잡음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을미디어의 필요성은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 소통 문제만이 아니다. 공항 소음, 학교 등 시설 유치처럼 마을이 함께 대응해야 할 이슈도 늘었다. “자연부락 7곳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 3곳, 총 10개 커뮤니티가 외도동을 이루는데 각자 마을회, 부녀회, 노인회 등을 갖추고 있어 이들을 묶어낼 필요도 느꼈죠.”
강 위원장이 ‘마을미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2014년. 당시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 도의원과 대화하는 중에 등장한 아이디어다. 우여곡절 끝에 1년이 걸려 제주영상위원회의 ‘2015 마을미디어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주민자치위원회와 별도로 추진위를 꾸렸다. 위원은 강 위원장을 포함한 주민 4명. 이들 가운데 영상·라디오 등을 기획, 촬영(녹음), 편집해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추진위와 함께 활동할 ‘외도동마을미디어제작단’ 1기를 공개 모집하고 이들과 함께 제주영상미디어센터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1월 3주 동안 영상, 라디오, 사진 교육을 받았다. 11월은 한창 귤농사를 할 때라 지원자가 많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다른 주민 6명이 제작단 1기로 합류했다. 한 달 만에 연 마을미디어 페스티벌에서 마을영상제, 보이는 라디오, 마을사진전시회를 선보였다. 축제에는 주민 100여 명이 참여했다. “뜻도 모르고 실체도 없는 ‘마을미디어’라는 일에 도전하고 하나둘 공부하면서”(송미영 추진위원) 이뤄냈다.
김경탁 제주영상미디어센터 제작교육팀 주임은 외도동 마을미디어의 탄생이 ‘특별하다’고 평가했다. “제주의 다른 마을미디어는 이주민 혹은 문화기획 경험자들이 주도하는데 외도동은 제주 토박이 방송 초보자들이 꾸렸습니다. 제주가 아닌 전국 마을미디어 현황을 봐도 1~2명 개인으로 시작한 뒤 커지는 경우가 많고 외도동처럼 마을 단체가 주도하는 경우는 드물죠.”
‘이주민의 외도살이’ 인기 절정다른 마을미디어가 그렇듯 외도동 추진위도 공간, 인력, 장비, 예산 등에서 어려움이 끊이지 않는다. 일회성 지원사업은 끝났다. 고민 속에서도 추진위와 제작단은 홈페이지( www.livesoul.org), 팟캐스트 팟빵( www.podbbang.com/ch/11257), 페이스북( www.facebook.com/livesoul)을 통해 라디오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달마다 하나씩 모두 7편의 방송을 업로드했다. 이주민들이 말하는 외도 생활 이야기, 외도초등학교 운영위원장과 학부모회장의 대담, 공항 소음 피해, 중앙·지역 언론 기사 톺아보기 등을 다뤘다. 누적 다운로드는 수백 회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인기 콘텐츠는 ‘이주민이 말하는 외도살이’다. 솔직담백한 토크가 비결이라면 비결. “저는 제주가 고향인 남편을 따라 제주로 이사를 와서 만 8년째 제주살이 하고 있는데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아직까지 육지 사람 계급장을 갖고 있지요.”(‘삼춘다방’ 프로그램 1회 중에서)
추진위와 제작단의 평균연령은 40대 후반. 강 위원장은 1970년대 라디오와 음악다방 전성기를 기억한다.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다들 (라디오에 대한) 로망이 있었더라고요. 한번은 (방송을) 해보고 싶었다는 거죠.” 추진위 내부 규약에는 ‘주민들이 꿈과 끼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가 포함돼 있다. 차츰 규모를 키운 뒤에는 지역 청소년들이 마을미디어 속에서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 역할도 하겠다는 장기 목표가 있다.
주민 모두 주인공 될 때까지아직 여력이 되지 않아 라디오 위주로 운영되지만 “요즘 세대에게 더 익숙한” 영상 분야도 보강해서 더 많은 주민들과 만날 목표도 세웠다. 지난 7월9~10일 열린 ‘월대천축제’에서는 추진위원 4명 모두 ‘주민기자증’을 달고 센터에서 카메라를 빌려 이틀 내내 영상 촬영을 했다. 강 위원장은 “축제에 참여한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어디에서 나왔냐?’고 물어서, 자연스럽게 ‘라이브소울’ 홍보 무대가 됐다”며 웃었다. “주민이 주인이 되고, 주인공이 되는 방송.” 라이브소울의 최종 지향이다.
글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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