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순전히 주관적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제주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고 요청받았을 때 그 말을 던졌다. 돌아온 답은 오히려 그게 더 좋다는 거다. 그래서 가볍게 글을 쓰련다.
우선 개인적 일상부터 시작하는 게 나을 듯싶다. 기자라면 흔히 술만 퍼마시는 직업으로 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술만 얻어먹고 다니는 직업으로 여긴다. 그런 점에서 ‘김영란법’이 참 잘 만들어졌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선배나 후배를 보면 그렇게 행동하는 기자가 많다. 정보를 캐내려, 혹은 일상화된 몸의 부르심 때문에 술자리를 기웃거리곤 한다. 이 글에 불편을 느끼는 기자도 있겠고, 왜 이런 글을 쓰느냐고 욕하는 기자도 있겠다. 글이 불편하더라도, 그 정도는 감내할 줄 알아야 기자 아니던가.
‘친한 형님’ 공무원은 2명뿐나는 공무원과 술자리를 잘 만들지 않는다. 또한 공무원과 친하게 지내려 하지 않는다. 공무원이 기자를 보는 시선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지역언론 26년차 기자다. 1991년부터 기자생활을 했으니,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 기간에 수천 명에게 ‘김형훈’이라는 이름이 박힌 명함을 건넸다. 그중엔 공무원이 상당수다. 하지만 친한 형님 사이로 지내는 공무원은 딱 2명뿐이다. 그동안 “뭘 하고 다녔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기자로 살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물론 그 2명 외에 ‘형님’이라고 부르거나 나에게 ‘형님’이라고 하는 공무원도 있으나, 개인사까지 속속 얘기하는 이들은 내겐 없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좋은데 앞으로 몇 년 더 기자생활을 할지는 모르겠다. 언젠가는 펜을 내려놓아야 한다. 펜을 내려놓고 공무원을 만나봐야 공무원들의 속성을 알게 된다. 그래서 괜히 속을 버려가며 술자리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술을 먹지 않고 어떻게 정보를 얻느냐”고 항변할 기자도 있겠으나, 술을 마셔야 정보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술은 꼭 마셔야 할 때만 마시면 된다. 정보를 얻는 건 기자 개개인의 몫이기에 어떤 기준에 따라서 행동하라는 것도 웃기다. 대신 나는 가족을 챙겼다. 덕분에 ‘아름다운 남편상’(제주 YWCA 주관)도 받았으니 부족한 건 없다. 기자가 어떻게 그런 상을 받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기자도 사람이다. 직업과 연관된 이미지가 너무 경직돼 있어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아닐까. 검사나 경찰에게 쏠린 시선이 그렇듯, 기자라는 직업에 쏠린 시선도 그렇다.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 기자는 술이나 얻어먹고 가족을 덜 챙기는 사람 취급을 받기에 너무 아쉽다.
내가 기자생활에 처음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언론사는 손에 꼽을 만큼만 있었다. 이젠 아니다. 대체 제주도에 몇 개의 언론사가 있는지 모를 정도다. 70개에서 80개는 되는 것 같다. 아니, 더 넘는가? 언론사는 많으면 좋지만 문제는 질에 있다. 품질을 높여야 할 언론이 스스로 품격을 깎아먹는 게 지금 제주 언론의 현실이다. 기자의 품격도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다. 언론은 공기(公器)여야 한다면서 그렇게 행동하라고 다들 배웠다. 정말 제주에서 공기를 자처하는 언론은 몇이나 될까.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밖엔 없다. 반대로 공기임을 집어던지고 이권에 개입하는 곳이 더 많다. 언론 사주의 지시를 받아 이권 개입에 앞장서는 기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게 기자인가, 누가 말했듯이 ‘개돼지’이지.
개인적으로 언론사는 더 늘어나도 좋다고 본다. 1인 언론사도 늘어나 활발히 활동하길 바란다. 물론 나도 나름의 언론을 가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러나 제주 언론에는 허황된 욕구로 가득 찬 이들로 넘쳐난다. 앞서 ‘개돼지’를 자처하는 이들도 있고, 언론의 탈을 쓴 미디어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재작년에는 사이비 기자가 철창에 들어가기도 했다. 내가 속한 언론을 거론하며 “공동기획을 하고 있으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업체를 협박하다가 딱 걸려들었다. 경찰 수사력이 가동됐고, 그 사이비 기자는 내 회사까지 찾아와 그게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결국 그가 들어갈 곳은 감옥뿐이었다. 사이비 기자도 판치지만, 진짜 기자이면서 사이비 행세를 하는 이들도 있다. 아니, 그런 기자들이 사이비이군. 정신 좀 차리고 언론 본연의 자세로 제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푸닥거리라도 해야 할 판이다. 왜냐? 기자는 행동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글로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언론이 이권에 눈독을 들이는 형국이니 푸닥거리를 해야겠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 언론을 바라보는 부정적 환경을 바꿀 수 없다. 사람들은 기자가 대단하다는 착각을 한다. 기자 스스로도 그렇다. 예전엔 나에게 공개적으로 인사 청탁을 해온 공무원도 있었다. 물론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런 환경이 기자를 우쭐하게 만든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래저래서 푸닥거리를 해야겠다.
푸닥거리해야 할 언론 환경‘제주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을 써달라고 주문받았는데, 너무 ‘지역언론 고백서’ 형태로 쓰는 건 아닐까 자문해본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다. 이런 특집 지면이 아니면 언제, 누구에게 이런 말을 할 기회가 있겠는가. 이게 제주라는 지역만의 일일까? 아니라고 본다. 제주보다 심한 곳이 많다. 그래서 언론을 지키려는 이들도 도매급으로 사이비로 매도되고, 언론 보기를 ‘개돼지’, 심지어 ‘쓰레기’로 보는 것 아니던가. 보수를 자처하는 언론, 정권에 놀아나는 언론, 과연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고 있는가. 나의 지역언론 고백처럼 그들도 고백해야 한다. 제대로 된 보도를 하지 못했다고 고백해야 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일상부터 쓰려 했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글이 무거워진다. 고백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사랑 고백을 하려고 해보라. 쉽게 던지지 못한다. 언론의 자기고백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걸 누구에게 뱉을까, 과연 뱉어도 될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고백을 받아준 이 고맙다. 더 진한 지역언론 고백은 다음 기회로 넘기겠다.
너무 무겁게만 가면 글이 안 된다. 재밌지도 않다. ‘제주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주제에 제대로 답해야 하는데, 지역언론 고백은 하나의 푸념이다. 기자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역에서는 일부 매체를 제외하고는 박봉이다. 그다지 월급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언론의 가치를 지키려는 기자들을 보면서 힘을 낸다. 다행히도 내 곁에 그런 기자가 몇몇 있다.
기획특집으로 느끼는 카타르시스나는 단발성 기사보다 기획특집에 신경을 곧추세운다. 그래야 뭔가를 했다는 자부심이 솟아나고, 심지어 카타르시스까지 느낀다. 그게 글이다. 글이 주는 마력에 빨려드는 기분은 제대로 글을 써본 사람만이 안다. 요즘은 도시개발에 꽂혀 있는데, 마침 이 제주 특집을 마련한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구가 제주도처럼 늘어나는 곳이 없다. 건축 경기가 제주도처럼 활황인 곳도 없다. 제주도 곳곳은 집 짓는 풍경만 있다. ‘공사 공화국’이라는 말이 딱 맞다. 그러다보니 좋은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게 눈에 많이 띈다. 어느새 제주도 집값은 여타 대도시보다 비싸졌고, 서울의 일부 지역보다 비싸졌으니 말이다. 예전엔 1억원이 안 돼도 집 한 채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젠 최소 2억∼3억원은 있어야 집을 장만할 수 있다. 나는 집이 있으니 문제가 없으나 박봉에 시달리는 젊은 기자들은 언제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런 걱정을 해결할 뾰족한 묘안은 나오지 않는다.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이 잔뜩 있는데 다행히도 나는 그런 문제에 항변할 기회가 있었다. 얼마 전에 내놓은 라는 책이다. 책은 오래전에 써온 글과 최근에 쓴 글을 함께 담았다.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다. 그렇게 제목을 단 이유는 제주를 너무 낭만적으로만 보지 말고 제대로 바라보라는 뜻에서다. 마침 책을 주제로 여행상품도 만들어졌다. (주)뭉치에서 만든 이 상품은 ‘2016/2017 우수여행상품 공모전’ 결과 우수여행상품이 됐다. 얼마 전에는 기자와 서평가 등을 모시고 팸투어도 진행했으니 행복이 넘쳐난다. 그보다 앞서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점에서 저자 강연도 했다. 솔직히 요즘은 기자인지 작가인지 분간이 되질 않는다. 김형훈 세 글자가 박힌 명함보다는 를 쓴 작가로 소개받으면, 그걸 더 잘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헷갈린다.
술 약속 대신 재능기부 달려가기자로 산다는 것. 우선은 글을 쓰는 일이다. 그런데 기사만 쓰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 자신이 쓴 글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감동도 줘야 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요즘은 그런 기회가 많다. 작가로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불러주기도 한다. 마을신문을 만드는 데 도와달라고 하면 달려간다. 청소년기자 교육을 해달라면 달려간다. 돈을 받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무일푼 봉사, 다른 말로 하면 재능기부쯤 되겠다. 그런 일도 잦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에게 받기만 했고 주는 건 약했기에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일정이 꽉 차 있다. 어떤 이는 술 약속이 많아서 그런 걸로 안다. 그건 아니다. 여기저기서 불러주기에 약속을 지키러 가는 일이 많을 뿐이다. 불러줘서 너무 고맙다. 기자직을 그만두면 나를 부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기자로 있는 한 그러고 싶다. 그래야 사회문제에 공감하고, 기사를 통해 지적해온 문제를 사회 구성원과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 다른 기자들은 어떤 답을 할지 참 궁금하다. 그래서 서두에서 순전히 주관적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이젠 ‘제주에서 기자로 산다는 것’이라는 물음에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답을 해야 할 시점이다. 답은 “즐겁다”이다. 덧붙이자면 그런 기자로 살 수 있게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마누라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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