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30분. 에디터 10여 명이 각자 컵을 들고 방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와 있던 사람은 오드리 쿠퍼 편집국장이었다. 회의는 (이하 ) 뉴스 웹사이트 보고부터 시작했다. 어떤 기사가 온라인 뉴스 사이트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봤는지 현황이 발표됐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신문인 은 두 개의 뉴스 웹사이트를 운영한다. ‘크로니클’(유료)과 ‘SF게이트’(무료)다. 뉴스 웹사이트에 대한 보고가 끝나자 에디터들은 이날 아침 발행된 신문을 함께 점검했다. 종합섹션, 스포츠섹션, 경제섹션 위주로 살폈다. 151년의 역사를 가진 신문이지만 편집회의에서 먼저 챙긴 것은 온라인 사이트 현황이었다.
현황 보고가 끝난 뒤 에디터들은 다음날 신문의 1면 기사를 무엇으로 할지 논의했다. 회의 진행은 쿠퍼 편집국장이 아닌 디지털에디터 크리스틴 고가 했다. 고는 부서별로 어떤 기사가 있는지 일일이 물었다. 정치에디터는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가 샌프란시스코 근처에 온다고 보고했고, 경제에디터는 구글 개발자회의(IO)가 이날 열린다고 했다. 스포츠에디터는 샌프란시스코의 미국프로농구(NBA)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플레이오프 경기가 있다고 했다.
편집국장은 올해 구글 개발자회의에서 새로운 게 있는지 물었다. 경제에디터는 눈에 띄는 것은 없고, 가상현실(VR)이 이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편집국장은 “VR? 그거 크리스마스 때 한번 써보고 안 보는 거잖아”라며 실제 VR 장비를 써보는 것처럼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가 “이거 자주 쓰는 사람 있나요?”라고 묻자 에디터들도 함께 웃었다.
온라인 뉴스 현황 살피며 하루 시작한국 언론에선 미래 디지털 미디어 모델로 VR를 꼽기도 했지만, 편집회의에선 아직 웃음거리였다. 회의는 톱기사로 샌더스의 방문과 구글 개발자회의 시작, 물 관련 기사를 정한 뒤 30분 만에 끝났다.
은 아침 뉴스룸을 한 달에 한 번씩 독자에게 공개한다. 역사상 첫 여성 편집국장인 오드리 쿠퍼는 뉴스룸을 디지털화하는 데 앞장섰다. 쿠퍼의 지휘하에 은 미국 내에서 혁신적인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노력 속에 어떻게 뉴스를 만드는지 뉴스룸을 공개하고 독자가 신문에 애정을 갖게 하려는 의도다. 공개된 편집회의를 참관한 뒤 한국에서 함께 간 넥스트저널리즘스쿨 학생들과 크리스틴 고 에디터, 사회 분야 칼럼니스트 C. W. 네비우스를 만났다.
한국보다 역사가 오래된, 전통의 미국 신문 역시 모바일로 옮겨가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신문 구독 감소는 미국 대도시 신문사들을 구조조정으로 몰아가는 형편이다. 은 변화된 언론 환경에 맞춰 뉴스 웹사이트를 강화하고 기사 유료화를 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종이신문 의 유효 발행부수는 16만7600부(평일 기준)지만, SF게이트 사이트 구독자는 66만9500명, 유료 사이트 의 구독자는 17만4500명이다.
기사가 나가면 바로 반응이 온다 은 온라인 웹사이트가 유료다. 유료로 뉴스를 제공하는 것은 자신 있기 때문인가.크리스틴 고 우리가 기사를 유료로 파는 것은 미국의 다른 미디어회사가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사 모두가 유료인 것은 아니다. 웹사이트를 2개 운영하는데 하나는 유료고 하나는 무료다. 인쇄매체에 돈을 내고 보는 독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지역 커뮤니티에서 뉴스를 배포하는 우리의 역할에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 인쇄매체로 뉴스를 보는 독자가 줄어드는 만큼 온라인 구독자를 늘려야 한다. 실제 우리의 도달률은 크로니클과 SF게이트를 합쳐서 매달 3100만 명에 이르는 규모다. 두 사이트와 인쇄매체를 합하면 우리는 미국 전역에서 4번째로 큰 규모의 신문사다. 인쇄매체 구독은 감소해도 디지털 구독은 더 늘릴 수 있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네비우스 기자의 관점에서 우려되는 건, 유료화 문제 이전에 우리 기사의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인쇄매체 구독자가 감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독자가 고령화됐기 때문이다. 자주 독자 전자우편을 받는데 “나는 60대이고 손에 종이신문을 들고 보는 게 좋다”라고 쓰여 있다. 내 아내는 시내에 있는 IT 기업에서 일하는데, 어제 퇴근하면서 앞서 걷는 남자의 전화 통화를 들었다고 한다. “와, 나 어제 미디어에서 일하는 어떤 남자를 만났는데, 그는 정말 변화에 뒤떨어졌어. 세상에 종이신문을 보더라니까.”
줄어드는 종이신문 구독자 대신 웹사이트가 우리 기사의 영향력을 유지하게 해준다. 지금도 우리가 어제 쓴 기사 중 어떤 것이 온라인에서 많이 읽히는지 주시하고 있다. 하루 2천~3천 페이지뷰가 나온다면 SNS를 통해 기사가 퍼져나간 실제 영향력은 그것의 10배 정도 될 것이다.
어제 내보낸 기사도 우리가 도시에 영향을 끼치는 의미 있는 일을 한다고 느끼게 해줬다. ‘교사 연봉’을 다룬 인터랙티브 기사였는데 우리의 온라인 기사 도달률을 정말 높이 끌어올렸다. 긍정적이다. 가 처음 기사 유료화를 시작했을 때 칼럼니스트와 기자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 그래서 기사 유료화를 잠시 접었지만 결국 재개했다.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기사를 쓰는 것)은 유행이 지난 상품을 파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도 기사를 읽으며 (공짜가 아니라는) 책임을 느낀다. 단지 우리는 이를 어떻게 수익화할지 찾으려는 것이다. 돈을 내야 하는 유료 사이트를 만들면 여기로 들어오는 독자가 줄어서 영향력이 감소한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시청에 대한 기사를 쓰면 여전히 시청부터 시민들까지 반응이 온다.
크리스틴 고 아침에 반응이 오는 건 아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바로 오는 거지. (웃음)
긴 기사, 가장 많이 읽힌 기사크리스틴 고 두 사이트는 집중하는 게 각각 다르다. 유료 사이트인 크로니클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이 기사를 보며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댓글 등을 달며 참여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다. 그렇게 해서 그들을 온라인 유료 구독자로 바꾸는 것이 목표다.
무료 사이트인 SF게이트의 경우 독자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를 보지 않는다. 페이지뷰가 얼마나 높은지가 중요하다. 그래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사가 도달했는지 산정할 수 있으니까. 페이지뷰가 많으니 크로니클보다는 SF게이트의 광고가 훨씬 많다. 우리는 광고 수익도 얻으면서 온라인 독자가 SF게이트를 통해 크로니클 사이트(유료)로 넘어오게 만들려는 것이다.
수익의 대부분은 여전히 종이신문에서 나온다. 신문 구독자와 광고주로부터 돈을 번다. 하지만 계속 종이신문 구독자가 줄어들면서 회사는 이제 수익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SF게이트 광고를 통해 얻는 수익은 2500만달러 수준이다. 광고주들이 접근할 수 있는 많은 데이터와 마케팅 정보 등 우리가 구축한 것을 사용해서 다시 성장하려고 한다.
네비우스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는 게 ‘롱폼 저널리즘’(Long-form Journalism·스토리텔링형 긴 기사)의 최후라고 말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교사 연봉’ 관련 기사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인터랙티브 뉴스’(독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체험형 콘텐츠)로 가득 차 있다. 긴 ‘인게이지먼트 타임’(Engagement Time·콘텐츠에 몰입하거나 관여하는 시간)을 기록했다. 롱폼 스토리와 롱폼 프로젝트를 위한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비관론자들은 아무도 더 이상 컴퓨터에 앉아 긴긴 이야기를 읽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읽고 있다. 물론 한편으로 의기소침해지는 것도 있다. 칼럼을 쓰는 데 이틀이 걸렸는데 내 기사에 독자가 머무는 시간은 3분30초였다. (웃음) 근데 이 수치도 괜찮은 거다.
크리스틴 고 올해 우리의 야심찬 기획은 신문에 실은 20쪽짜리 스페셜 섹션이었다. ‘에이즈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기사였다. 온라인으로도 모든 스토리를 그대로 냈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별로 따로 작은 기사도 냈다. 그리고 6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지원을 받았다. 한 대학교는 이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펴내는 데 돈을 냈고, 또 다른 후원자는 제작비 일부를 댔다.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과 캐나다, 포르투갈 등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처럼 인쇄매체 외에 우리가 만든 기사의 도달률을 높이는 다른 방법이 없는지 계속 모색 중이다. 단지 신문사로 남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미디어회사로서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한다.
<i> 네비우스는 20년 이상 에서 일한 베테랑 기자다. 서울올림픽 등 8개 올림픽을 취재하며 주로 스포츠를 담당했고 최근에는 메트로(도시)를 맡아 칼럼을 쓰고 있다. 유머를 곁들인 그의 설명에는 연륜이 있었다. 크리스틴 고는 에서 디지털 업무를 담당한다. 2008년부터 일했고 기자 등 전 직원을 대상으로 디지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교육을 맡기도 했다. 일요판도 그의 손을 거친다. 2000년 에서 일할 때 퓰리처상을 받았다.</i>우리의 미래 독자는 누구인가 탐사보도나 긴 이야기도 온라인 사이트에서 많이 읽히는가.크리스틴 고 ‘에이즈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 기사가 그렇다. 긴 기사였지만 올해 가장 많이 읽힌 기사다. 뉴스 사이트에 들어와 읽은 것 가운데 가장 오래 머무른 기사는 항상 그 기사였다. 독자들이 기사를 보며 6분 정도 머물렀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긴 기사를 읽으려는 욕구를 가졌다고 한다. 좋은 기사와 그 사이트에서만 읽을 수 있는 독특함, 그런 것을 갖춘다면 사람들은 재미를 느낀다.
긴 기사를 모바일에서 보는 걸 힘들어하지 않나. 종이로 보는 것을 선호한다고 생각했다.크리스틴 고 독자의 읽는 습관과 관련 있는데 세대별로 차이가 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룹의 사람들은 신문을 손에 들고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내 또래나 그보다 젊은 세대는 정말 거의 누구도 신문을 보지 않는다. 책을 볼 때도 아이패드나 킨들(전자책 단말기)을 사용한다.
나는 긴 기사를 만들 때 온라인에서 읽는 경험을 어떻게 구현할지 먼저 방법을 강구하려 한다. 스마트폰을 생각해보면 온라인에서 기사를 읽을 때 글자가 깨지면 사용자는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또 기사가 전부 글자로 이뤄지면 쭉쭉 내려버리고 말겠지. 그래서 중간중간에 좋은 사진과 그래픽, 비디오 같은 스토리텔링에 중요한 요소를 꼭 넣으려고 한다.
딸에게 뉴스를 경험하게 해주려고 신문과 태블릿PC를 가져다줬더니, 딸이 선택한 것은 태블릿PC였다. 이게 바로 미래 독자다. 우리는 여기에 맞춰서 생각해야 한다.
네비우스 신문이 죽어도 괜찮다. 그래도 롱폼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다. 인게이지먼트 타임도 늘릴 수 있고 인터랙티브 기사도 쓸 수 있다. 이게 우리의 힘을 북돋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미국)=이완 기자 wani@hani.co.kr정리 이민경 넥스트저널리즘스쿨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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