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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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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요, 근데 왜 1번 찍는교?”

청년들, 탑골공원에서 지지 정당과 노인복지 공약을 ‘블라인드 테스트’로 묻다 ‘무조건 1번’과 다른 공약 지지, 노년층의 보수성은 생애사를 통해 이해해야
등록 2016-03-29 12:47 수정 2020-05-02 19:28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6월 당 워크숍에서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2016 무엇으로 승리할 것인가’란 보고서를 나눠주었다. 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이 만든 ‘제20대 총선 전망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핵심은 “(2016년 총선을) 세대 전쟁으로 치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20~40대의 지지를 최대화하고, 장·노년층의 제1야당 호감도를 높이는 우호화 전략을 짜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야당의 이런 고민은 인구 구성에서 고령층의 비중이 늘어난 데다, 이들의 지지 성향이 새누리당 쪽에 쏠린 현실에서 기인한다.
총선 975만여 명의 파워
최근 가장 큰 선거였던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연령대별 유권자 비율을 보면, 60살 이상이 전체 연령대에서 21.9%를 차지했다. 20대(16%), 30대(19.1%), 40대(21.6%), 50대(19.7%)의 비중을 웃돌았다. 이번 총선에서 60살 이상 유권자는 약 97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투표율도 높다. 60살 이상 유권자는 2002년 대통령선거부터 2014년 지방선거까지 주요 9개 선거에서 최소 65% 이상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주목할 것은 60살 이상 노년층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실제 투표자 수에서 노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진다는 점이다. 노년층의 투표율이 높고, 이에 비해 청년층의 투표율이 낮기 때문이다. 노년층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보다 더 큰 비중으로 실제 투표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권에서 노년층에 촉각을 세우는 것은 이들의 정치 성향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발표한 2016년 3월 마지막주 정기조사를 보면, 60살 이상 응답자의 62%가 새누리당을 지지했다. 이들의 65%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여당은 이들의 지지를 더욱 견고하게 붙잡을 방법을, 야당은 노년층의 호감도를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길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총선을 앞두고 ‘청년의 투표와 정치 참여’(제1104호 특집1 참조)에 대해 살폈던 은 노년층의 투표 심리를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택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실제 투표한 사람들 중 60살 이상 비율이 27.1%에 달할 만큼 이들이 선거 판세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청년이 노년을 만나다
기성 언론이 제대로 조명하지 않는 ‘구석 정치’를 직접 보도한다는 목표로 구성된 청년들의 독립미디어 은 60살 이상 노인 75명을 수도권 일대에서 만났다. 청년의 눈으로 노년층의 투표 심리를 살폈다.
이들의 취재에 더해, 노년층의 정치 성향을 분석(뉴스 북리뷰)하면서,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노년층의 정치적 의사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함께 짚었다.
어르신들이 뒷짐을 지고 무언가 경청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들의 손은 이번 총선에서 누구를 선택할까. 박승화 기자

어르신들이 뒷짐을 지고 무언가 경청하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들의 손은 이번 총선에서 누구를 선택할까. 박승화 기자

선거철만 되면,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이 비난의 대상이 된다. ‘무심한’ 청년들과 대조되는 것은 60살 이상 유권자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20대 투표율은 42.1%였다. 반면 60살 이상 유권자의 투표율은 68.6%였다.

이미 노인 유권자 비율은 다른 세대를 앞질렀다. 고령화 사회가 임박한 상황에서 노년층 유권자들을 ‘불통의 존재’로 치부하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노인 유권자들은 덮어놓고 1번을 찍는다’는 고정관념을 잠시 벗어놓기로 했다. 대신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았다.

선호 공약… 새누리 22명 vs 더민주 20명

흔히 노인들은 정책·공약·인물 등을 따지지 않고, 정당만 보고 (그것도 특정 정당에) 투표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도 그럴까. 정책·공약 선호도와 투표 행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책·공약과 상관없이 특정 정당만 지지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두 종류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시도했다.

정답은 하단에 있습니다.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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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블라인드 테스트’는 지난 3월4일 이뤄졌다, 두 개의 ‘공약지’를 들고 서울 종로 탑골공원을 찾았다. 한쪽에는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다른 쪽엔 새누리당의 노인복지 공약을 적었다. 각 공약이 어느 정당의 것인지는 숨겼다. 60살 이상 노인들에게 선호 공약을 고르도록 부탁했다(그림1 참조). 투표 뒤, 공약이 마음에 드는 이유도 추가로 물었다.

60살 이상 유권자 42명이 참가한 1차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새누리당의 공약을 선택한 사람은 42명 중 22명, 더민주의 공약을 선택한 사람은 20명이었다. 과학적 표본 추출에 의한 설문조사가 아니라 임의적인 앙케트 조사여서 그 신뢰성을 강조하긴 힘들지만, 대체로 공약 선호도에서 두 정당 지지도에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선호 공약과 지지 정당 사이의 관계는 어떨까. 이를 알아보고자, ‘2차 블라인드 테스트’를 벌였다. 이번에는 새누리당 공약 4개와 더민주 공약 4개를 골라, 정당 구분 없이 나열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공약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공약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공한(2016년 3월14일 기준) 정당별 총선 공약 소개를 참조했다. 선호 공약을 선택한 뒤에는 이번 총선에서 지지하고 싶은 정당도 물었다.

2차 블라인드 테스트는 서울 한남동 주민센터, 용산노인종합복지관, 광흥창 마포노인종합복지관, 경기도 안산 일대 등 4곳에서 진행했다. 60살 이상 유권자 33명이 참여했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공약은 더민주의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매월 기초연금 30만원 지급’(12표)이었다. 그다음은 더민주의 ‘불효자 방지법 제정’(5표)이 차지했다. 3위는 새누리당의 ‘치매 관리 원스톱 서비스’와 ‘노인복지청 신설’이 각각 4표를 얻었다. 뒤를 이어 새누리당의 ‘간병비 인하’와 더민주의 ‘65살 이상 실업급여 지급’ 공약이 각각 3표를 받았다. 가장 낮은 선호를 보인 것은 새누리의 ‘공공 실버주택 공급’과 더민주의 ‘공공근로수당 40만원으로 인상’(각 1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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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호 공약과 지지 정당 연관성… 새누리 11표 vs 더민주 22표

공약에 대한 2차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총 33표 가운데 더민주가 22표를 얻어 11표를 얻은 새누리당보다 우세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당을 찍을 것인지 묻자 33명 가운데 27명이 새누리당이라고 답했다. 더민주 지지자는 3명에 불과했다. 2명은 국민의당 후보를 찍겠다고 했고, 1명은 지지 정당을 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를 종합하면, 60살 이상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더민주 공약을 선호하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이들의 대다수가 새누리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다.

그 한 사례가 안산에서 만난 김재복(84)씨다. 김씨는 새누리당을 지지한다. 그런데 그가 고른 공약은 더민주의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매월 기초연금 30만원 지급’이었다. 자신이 선호하는 공약이 ‘더민주의 공약’이라는 설명을 듣자, 김씨는 “새누리당도 그 공약 하겠지…”라며 멋쩍게 웃었다.

전라도 출신인 김씨는 과거 대선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했다.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 “나도 교회 다니거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교회가 중요해.”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다. 김씨에게 공약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달라지는 김씨의 선택 기준은 꼬집어 무엇이라 단언하기 힘들었다.

60살 이상 고령층 유권자가 정책·공약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부의 공식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14) 유권자 의식 조사’를 보면, 60살 이상 유권자의 18.5%만이 후보자 선택시 정책·공약을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응답했다.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가장 낮다. 정책·공약이 아닌 다른 요인을 고려해 투표하는 것이다.

정책·공약을 투표 행위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인들만 비판할 수는 없다. 공약의 설득력이 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인 관련 여야 공약을 비교 분석한 김형수 한국노년교육학회 부회장은 “정당 공약 개발팀의 전문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특히 더민주의 ‘기초연금 인상’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내걸었던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지급’ 공약에 10만원을 더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당선 이후 애초 공약을 수정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노인들은 “이 공약이 좋다”면서도 재원 마련 방법을 못 미더워했다. 지금도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데 10만원을 더 지급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더민주는 ‘부자 증세로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는데, 김형수 부회장은 “(노인들은) 부양 세대(자식)에게 기대는 것을 싫어하는데 증세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야당에 ‘디테일’을 주문한다. 기초연금의 경우 가난한 시대를 살았던 노인들이 나라의 돈을 쓰는 것에 민감하다는 점을 감안해, 설득력 있는 재원 마련 방법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다고 박 평론가는 지적했다. 숲이 아닌 나무 한 그루씩을 보여주면서 친절하게 노인 유권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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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박정희 그리고 노인

그런 선거 전략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들 노년층이 ‘그럴듯한 공약’ 몇 가지로 지지 정당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공약이 아니라면 이들의 투표와 정치 성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 그들 옆에 앉아 말동무를 자처했다. 노인들은 자연사박물관 같았다. 그들의 이야기는 길었다. 노인이 던지는 표의 뿌리께까지 더듬어 나간 끝에 우리의 물음표를 지워주는 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생애사와 정치적 성향 사이의 관계였다.

“인민군이 찾아왔어. 끌려가서 며칠 동안 수사를 받았지.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뭔 줄 알아? 북한에 끌려다니는 거야. 걔네한테 뭘 퍼주고 양보하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야. 걔네는 무슨 짓을 할지 몰라.”

탑골공원 팔각정에 앉아 있던 김재삼(91)씨는 68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해냈다. 그는 자유를 찾아 강을 헤엄쳐 건넜다. 인민군으로부터 정치 탄압을 겪은 김씨의 대북관은 확실했다. 그것은 보수 정당의 입장과 일치했다. 김씨는 “공약은 필요 없다”면서 “안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씨 외에 많은 노인들이 전쟁을 겪었고, 같은 이유에서 보수 정당을 지지하고 있었다. 마포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박춘우(77)씨는 “무조건 1번”이라고 답했다. 박씨는 허름한 가방에서 약통을 꺼내 보였다. 그는 “6·25 때를 잊을 수 없다. 인민군이 쏜 포탄이 집 앞에 바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얻은 심장병은 박씨를 평생 괴롭혔다. 그런 그에게 1번은 잊지 말고 챙겨야 할 약통과도 같았다.


박씨는 허름한 가방에서 약통을 꺼내 보였다. 그는 “6·25 때를 잊을 수 없다. 인민군이 쏜 포탄이 집 앞에 바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얻은 심장병은 박씨를 평생 괴롭혔다. 그런 그에게 1번은 잊지 말고 챙겨야 할 약통과도 같았다.

전쟁 뒤에 태어난 60대 노인들은 개발시대 또는 박정희 신화에 애착을 보였다. “무료급식 받으러 오셨냐”는 말에 손사래를 치던 오철(65)씨는 ‘노력 성공 신화’ 신봉자였다. 그는 학교를 다니는 것 대신 집에서 목돈을 챙겨 나와 사업에 뛰어들었다. 일본까지 건너가 도로공사 기술을 배워왔다. 때마침 박정희 정권이 고속도로사업을 추진했다. 경부고속도로부터 남해고속도로까지 그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다.

그런 오씨에게 ‘공짜로 밥을 얻어먹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오씨는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를 이야기하는 더민주 등 야당을 싫어했다. “청년들도 힘들다고 할 게 아니라 저 길거리에 가서 과자라도 한 봉지 팔면 된다. 이익이 적더라도 처음부터 욕심 부리지 말고 꾸준히 노력하라”고 그는 조언했다.

민경백(68)씨는 탑골공원 정문에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해체 서명을 받고 있었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군대 갔다 왔어?”라고 물었다. 민씨는 육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장군이었다. “학생, 6·25 때 몇 개 나라가 우릴 도와줬는지 아나?”라는 말을 시작으로 안보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학창 시절 그는 공부에만 집중했고, 친구들이 데모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민씨는 세월호 특조위나 야당을 불순한 반동세력으로 의심하고 있었다.

오래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노인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보여주고 전문가의 분석을 들어보았다. 직접 대면 상담한 것이 아니므로 한계는 있지만, 이성욱 상담심리사(37)의 분석은 흥미로웠다.

70대 이상 ‘6·25 세대’가 안보관을 중심으로 지지 정당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이성욱 상담심리사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쟁이라는 큰 사건을 경험한 충격 때문에 안보에 민감하고, 안보 문제에서 같은 입장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상담심리사는 전후에 태어난 60~70살 ‘박정희 세대’에 대해서도 생애사적 배경에 주목했다. 예비역 장군인 민씨의 경우, 군인으로서 생애를 보냈다는 사실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민씨가 전체주의적 사고를 생애 동안 학습했을 것”이라고 이 상담심리사는 설명했다. 그런 민씨에게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 개개인이 일사불란하게 각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위배되는 불온행위인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노년층 가운데는 유난히 ‘복수’ 또는 ‘응징’과 관련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가 많았다. 광흥창 마포노인종합복지관에서 만난 김아무개(77)씨는 “(박 대통령이) 말을 아주 똑 부러지게 당차게 잘한다. 이북에 당하고만 살았는데 속이 뻥 뚫린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차동한(79)씨는 “국가를 부정하는 단체와 인물들에게 압박을 가한 것도 탁월하다”고 말했다. 자신들을 대리해 북한 또는 ‘국가 부정 세력’을 응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번의 책임도 크다

정부 및 새누리당의 실정에 대해 진보·개혁 인사들이 비판하는 대목에 대해서도 노년층은 나름의 논리를 갖추고 있었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둘러싼 한-일 합의에 대해 차동한씨는 “67년 동안 아무 말 없던 일본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지 않았느냐”며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했다.

취재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한 점도 있었다. 60살 이상 노년층은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보다 더 강한 어조로 ‘정치 혐오’를 표현했다. 정책 선호 조사를 실시하는 내내, 대부분의 노인들은 응답을 회피했다.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 있어.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거잖아”라고 말했다. “국회가 해산됐으면 좋겠다”는 노인도 여럿 만났다. 이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무조건 1번’을 찍는 이들에게서도 공약 불신, 정치 혐오 현상이 두드러졌다.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기 전만 해도 그들의 투표는 맹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전혀 바뀔 수 없는 모태신앙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 표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노인은 1번이 좋거나 마음에 꼭 들어서 찍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차악’을 고를 뿐이었다. 공약을 믿지 않기 때문에 거시적 정책 방향을 살피게 되고, 그래서 안보를 중시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노인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생애사가 가지는 영향력은 크다. 또한 그들의 정치 불신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야당이 이를 민감하게 고려하지 않고 찍어주길 바라는 건 승산 없는 게임의 반복일 뿐이다.

김인경·김재환·허빈 ‘갈릴레이 서클’ 기자
왼쪽부터 김재환, 허빈, 김인경

왼쪽부터 김재환, 허빈, 김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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