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원 기자는 지난 7월 에 ‘‘58년 개띠’의 상가 사냥, ‘94년 개띠’를 몰아내다’ 기사를 보도했다. 예술가나 상인이 동네를 가꾸면,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떠나게 된다는 기존 젠트리피케이션 통설과는 달랐다. 기사에서 음 기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먼저 상권이 확장될 여지가 있는 지역에 외부의 부동산 자본이 들어오며 시작된다. 이들이 주거지를 상권으로 바꿔놓으면 이어 상인들이 뒤따랐다”고 분석했다.
음 기자는 서울 상수동과 연남동의 핵심 상권에 있는 건물 331곳의 등기부등본을 출력했다. 그 뒤 관련 정보를 모두 엑셀에 입력했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의 건물 주소, 면적, 건물주 이름, 나이, 주소, 근저당 설정 총액, 매매 총액, 매매 건수, 신·증축 건수, 용도변경, 등기 원인 등을 분석했다. 분석 과정에서 2012∼2013년 근저당 설정액이 늘어난 점, 한 사람이 여러 채의 건물을 소유한 점, 외부인 건물주가 더 많은 점, 건물주의 평균 출생연도가 1958년이라는 점 등을 발견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기사를 썼다.
가설이 ‘야마’가 되면음 기자는 몇 가지 가설(궁금증)을 세운 뒤 취재를 시작한다. 그는 “데이터를 활용하든 활용하지 않든 항상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 내용이 가설과 다르면 다시 취재해야 한다. 하지만 언론 시스템상 쉽지 않다. 매일 시간에 맞춰 마감해야 하는 한계가 있어서다. 그러다보면 가설에 끼워맞춰서 기사를 낸다. 그때 가설은 ‘야마’가 된다. ‘야마’는 언론사 은어로서 기사의 주제·핵심이라는 뜻이지만, 종종 취재도 하기 전에 선험적으로 정해놓는 주제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렇기에 가끔 ‘야마’는 ‘나쁜’ 기사를 만들어낸다.
음 기자는 평소 상수동과 연남동이 변하는 흐름을 꾸준히 관찰했다. 동네를 다니면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다른 기사의 취재원이던 건물주에게 ‘10억원짜리 건물을 7억원 대출받아 사고, 다시 그 건물을 담보로 다른 건물을 사고, 그렇게 또 건물을 반복해 산다는 것’을 들을 수 있었어요.”
데이터를 다루는 감각이 중요사전 취재한 내용으로 그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경제민주화와 상반되지 않을까?’ ‘거대 자본을 살찌우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젠트리피케이션을 다들 잘못 알고 있고, 부동산을 중심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그는 핵심 상권의 상가 등기부등본을 분석해 데이터를 만들고 검증하는 것으로 기초 취재 방향을 잡았다.
음 기자는 기사에 통계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부동산 이슈, 도시 이슈에선 통계가 중요해요. 사람들마다 말도 다르고 기억도 달라요. 왜곡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요. 각자 나름의 해석을 붙이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통계가 많이 도움이 되죠.” 평소 그가 현장을 자주 다니면서 얻은 노하우다.
하지만 그는 데이터나 통계는 어디까지나 기사의 주제를 보조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장 분위기를 묘사해서 풍부하게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주 무기”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서는 통계를 많이 썼지만 평소엔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해요. 데이터에 매몰되면 현장을 보지 않게 되어서 그래요. 데이터만 이용해서 기사를 쓰면 재미도 없고요. 이 기사는 데이터가 중심이 되었지만 새로운 팩트를 많이 도출해서 재미있는 거예요.”
매일 기사를 써내야 하는 신문사 시스템의 한계로 통계만 들여다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부에 있을 땐 국가통계포털(KOSIS)에 굉장히 많이 들어갔어요. 매일 기사를 써야 하니까요. 간단히 기사 쓰기 좋은 자료를 찾아두고 취재를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못 써요. 하지만 낮은 질의 기사를 양산하게 되죠.”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원칙은 없다. 기사를 작성할 때마다 노하우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다루는 감각이다. “어떤 데이터가 지금 기사 작성에 필요한지, 그 데이터에 무엇이 포함돼야 하는지, 내가 그 데이터를 보고 무얼 만들 수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해요. 엑셀은 간단히 다룰 줄 알면 되고, 분석하는 게 정 어려우면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도 좋아요.”
음 기자는 이 기사를 쓰기 위해 2016년 2월부터 5월까지 석 달을 투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등기부등본을 인쇄하고, 정보를 일일이 엑셀에 입력한 뒤, 통계 전문가와 함께 분석했다. 처음 세워둔 가설을 버리기도 하고, 생각지 못한 팩트를 발견하기도 했다. 매일 기삿거리를 마련하고 마감에 쫓기면서도 이 기사를 쓴 동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는 좋아하는 분야라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쓰는 동안엔 매우 즐거워서 잠이 잘 오지 않았어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죠. 회사 오는 게 즐거웠어요. 연수생들도 좋아하는 주제를 갖는 게 좋을 거예요. 그래야 누가 지시를 해도 자기 나름대로 바꿔볼 수 있으니까요. 궁금한 게 많아지니까 선배나 전문가에게 자꾸 물어보면서 일하기도 하고요. 억지로 하면 기자생활 오래 못해요.”
“‘좋은 궁금증’을 기술 활용해 제대로 검증”음 기자는 그동안 도시 관련 기사를 많이 썼다. 그가 쓴 ‘‘서촌’에 사람과 돈이 몰려오자… 꽃가게 송씨·세탁소 김씨가 사라졌다’( 2014년 11월23일치) 기사가 이슈가 되어, 서울시가 젠트리피케이션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는 도시계획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도시 전문 기자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도시 문제에는 항상 현장이 있어요.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다루는 도시 분야의 특성상 기자의 전문성을 발휘하기에 좋죠.”
결국 좋은 기사는 각자 좋아하는 분야에서 출발하는 셈이다. 좋아하는 현장을 잡고, 좋은 가설을 세우고, 그 과정 모두를 즐긴다. “이미 세상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은 개발되어 있어요. 좋은 궁금증을 갖고 가설을 세운 뒤 기술을 활용해 잘 검증하는 일이 중요하죠. 그게 4차 산업 시대에 갖춰야 할 중요한 역량인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기자가 경쟁력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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