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사진으로 말하는 게 더 편할 세 사람이었다. 첫 번째 사진가 박승화 기자는 학생 때부터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 사진을 담당하고 있다. 올해 사진집 을 발간했다. 1989년부터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았다. 두 번째 사진가 정택용은 주로 공장 굴뚝, 크레인, 천막 등에서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현장을 기록한다. 최근에 고공농성 현장을 담은 사진집 을 냈다. 세 번째 사진가 노순택은 주로 한반도의 분단 풍경을 작업한다. 7월17일까지 서울 통의동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열리는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의 전시회 ‘두 어른’을 기획했다.
이들 사진가 3명이 지난 6월28일 저녁 서울 마포구 동교동 ‘미디어카페 후’에 모였다. 그 많은 장소 중 왜 하필 거리인지, 왜 하필 사진으로 거리를 담아야 하는지 다섯 번째 필독 콘서트에서 나눴다. 안수찬 편집장이 사회를 맡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거리에서 ‘싸움’하느라 ‘외박’하는 사진가들</font></font>“사진을 거리에서 찍을 줄밖에 모른다.” 박승화 기자가 말했다. “왜 하필 거리에서 사진을 찍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그는 거리시위가 많았던 시기에 학교를 다녔다. 시위 다음날이면 참여한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이렇게 싸웠다’고 대자보로 알려주곤 했다. 글만 가득한 대자보에 어느 날 사진을 한 장 넣었다. 그러자 시큰둥하던 학생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때부터 박승화 기자는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거리에서 사진을 찍었기에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반면 정택용 사진가는 “거리에서 사진 찍는 생활을 늘 빨리 마감하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그는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한진해운 등의 노동문제를 알리는 사진을 찍는다. 모두 현재진행형 싸움이다. 그도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있다.
정택용 사진가는 그런 자신을 “사진의 그물에 갇혔다”고 표현했다. “왜 하필 글도 그림도 노래도 아닌 사진의 그물에 갇혔냐”고 사회자가 물었다. 노순택 사진가가 답을 이어갔다.
“사진집 안에는 선배들, 친구들, 심지어 저도 등장해요. 제가 있던 공간들이 누군가에 의해 촬영되고 사진집으로 나온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더라고요. 대중매체에 관심을 가진 계기도 직접 목격한 현장과 매체에서 보여지는 현장의 간극이었어요. 사진은 투명하고 객관적인 매체라 생각하는데 왜 사진들은 내가 직접 본 것과 다른 지점을 비출까?”
그렇게 노순택 사진가는 사진을 불신하게 된 계기부터 고백했다. 그에게 사진은 사실이 아닌 비현실이며 초현실이 되었다. 불신하기에 궁금해졌다. 착하기보다 나쁜 속성에 매력을 느꼈다. 같은 현장이라도 보는 시점에 따라 사진은 다르다. 그가 “교활한 매체”인 사진의 그물에 걸린 이유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진의 그물’에 걸리다</font></font>학생 때 시위 현장에서 사진을 시작한 박승화 기자는 ‘사진이 세상을 바꾸는 데 동기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사진은 민중이 어떻게 싸워왔는지 ‘승리의 보고서’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진집 은 그런 믿음으로 찍은 사진을 모은 책이다. 박승화 기자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만난 그 시대 친구들의 사진이 모여 있다. 시간이 흘러 ‘사진집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 2년이 흘렀을 때다. 그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기성세대한테) 묻고 싶었다”고 했다.
“그 시절에 저렇게 거리를 메우고 치열하게 싸우던 당신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애국을 외치던 당신들은 현재 민주 시민이 되었는가? 젊은 시절 이렇게 싸우던 당신들은 기성세대가 된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그는 이 사진들이 누군가에 대한 욕일 수도 있고 응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노순택 사진가는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고 믿었던 박승화 선배의 믿음이 우리 세대에 와서 와르르 무너졌다”고 했다. “우리 세대는 더욱더 방황했다. 사진집 이 추억처럼 느껴지지만, 슬퍼지는 것은 그때부터 ‘얼마나 더 나아가고 무엇이 변했는가’이다. 실제로 이 사회에서 힘없는 사람은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측면이 없지 않다. 싸움이란 것이 사실은 외박이고, 외박이 싸움이다. 그들이 싸움꾼이라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다. 이를 기록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훈장처럼 보여줄 수도 없다. 당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가 이렇게 괴물 같다고 사진은 말한다.”
질의응답 시간, 한 관객은 사진가 3명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여러분이 찍은 사진은 생명과 관련된 순간들입니다. 크레인 위로 올라가는 까닭은 ‘누군가 우리를 알아봐달라’는 뜻이죠. 아래에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들어주지 않으니까요. 그것을 봐주는 카메라 한 대가 있을 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하지만, 우리는 자주 현장의 사진가분들께 ‘계속 있어달라’고 부탁했어요. 카메라가 모두 사라지면 현장의 공권력이 무서워집니다. 카메라는 사회적 눈인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통해 수많은 사회로 퍼져나가니까요. 카메라가 있으면 공권력이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못해요.”
그는 사진이 부른 시민 참여도 감사하다고 했다. “사진의 힘을 느낀 것은 희망버스 때였습니다. 여러분은 희망버스 현장의 밝고 기운찬 모습을 담아주었습니다. 기사로는 한 줄 나오는 현장이 밝고 희망찬 연대의 모습으로 사회에 퍼졌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평범하지만 흥이 넘치는 그 현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끌어주었고, 덕분에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사진집이 많이 팔리면</font></font>이들의 사진집은 누가 볼까. 정택용 사진가는 싸움의 당사자와 같은 시대를 사는 구성원들이 싸움의 증언집을 봤으면 한다고 했다. “‘이 사진집을 볼 사람들이 누군가’ 생각하면 사진에 찍힌 사람들은 아니다. 현장 사진들을 모으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살아남는 것조차 힘든 사람들에게 이 사진집을 봐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사진을 찍고 사진집이 많이 팔리기 바라는 것은 ‘이 고단한 삶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게 될까’ ‘이런 기록과 흔적이라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세 사진가들은 오늘도 사진을 찍고 현장을 알린다.
이채연 객원기자 chloette020@naver.com <font color="#00847C"><font size="4">※ 필독 콘서트 현장 영상</font></font><style>.embed-container { position: relative; padding-bottom: 56.25%; height: 0; overflow: hidden; max-width: 100%; } .embed-container iframe, .embed-container object, .embed-container embed { position: absolute; top: 0; left: 0; width: 100%; height: 100%; }</style>전화신청▶ 02-20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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