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줘’가 익숙한 시대, 나만의 글쓰기 해볼까

66데이즈 ‘문장 정원’ 프로그램. 박한평 제공
‘손수 글을 쓰다’라는 말은 오래전에 이미 의미를 잃었다. 펜이 붓을, 키보드가 펜을 대체했고, 이제는 그 키보드마저 대체될 참이다. “써줘” 한마디면 매끄러운 문장이 완성되는 시대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난주 사소한 전자우편 한 통쯤은 “써줘”로 뽑아 쓰지 않았나. 예전에는 직접 문장을 지었지만, 요즘은 내 마음과 얼추 비슷한 문장이 나올 때까지 ‘뽑기’를 한다.
누구나 인공지능(AI)을 더 잘 쓰는 법을 묻는 시대에,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박한평은 거꾸로 제안한다. 아예 AI를 쓰지 않는 청정구역을 만들자고. 누구보다 ‘문장이 비슷해지는 속도’를 체감하는 그는, 그럴수록 작가에게 남는 건 결국 ‘나만의 문장'임을 직관으로 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박한평 채널(https://www.instagram.com/hanpyeong_). 박한평은 거의 매일 글을 써 소셜미디어에 공유한다. 시작은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혼탁하던 시절이었다. 선정적인 글이 넘쳐나던 때, “다정한 유머로 도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고, 그 페이지는 수십만 구독자를 모았다.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문장을 떠먹이겠다는 다짐으로, 그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 같다고 느끼는 따뜻한 에세이를 매일 써 내려갔다. 그 글들은 ‘감정 기복이 심한 편입니다만’ ‘다정하게 말하다 보면 인생도 그렇게 될까 싶어서’ 같은 작품으로 이어졌고, 그를 베스트셀러 작가의 세계로 데려갔다. 지금 그는 첫 소설 계약까지 맺은, 고유한 문장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박한평 작가. 본인 제공
그런 그도 고백한다. 사실 AI에 쉽게 기대고 싶다고. “나도 AI 무지 좋아해. 게임보다 더 좋아할걸? AI를 배척하자는 게 아니라, 잠시 내려놓자는 거야. AI 없이 손으로 문장을 쓰다보면 잘 쓰든 못 쓰든 나만의 고유한 문장이 드러날 거야. 그걸 바탕으로 나만의 문체 가이드를 만들면 오히려 AI를 더 높은 차원에서 쓰게 하는 기초공사가 될 거라고 봐.” 그는 머지않아 손으로 쓰는 일은 점점 사라질 것이고, 그럴수록 나만의 문장을 쓰는 일은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굳이 에세이일까. 독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만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에 내 생각이랑 마음가짐이 담긴 일상적인 글을 올렸는데, 사람들이 내 문장에서 위로받더라고. 지금도 내 손편지를 받는 구독자가 100명쯤 돼. 나는 그 사람들 앞에서 더 ‘박한평스러운’ 글을 쓰고 싶어. 어쩌면 시나리오와 소설은 AI가 그럴듯하게 꾸며 써줄 수 있지만, 나를 닮은 에세이만큼은 카피가 불가능한 영역 아닐까? 그리고 이왕이면 나와 10년을 함께해온 구독자들과 함께 우리만의 지문 같은 문체를 찾아보자는 거지.”
고백하자면, 나 또한 이 짧은 한 바닥의 기사도 AI가 알아서 착 뽑아주길 바랐다. 이제 손수 글 쓸 날도 얼마 안 남았겠지 하며, 다시 내 손으로 기사를 눌러 쓴다. 그의 실험적 발상은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내가 운영하는 소셜저널링 플랫폼 66데이즈에서, 우리는 실제로 ‘AI 청정 글쓰기 구역’을 실험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66일 뒤 내 문체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마지막으로 내 고유의 문장을 보존해보려고 한다.
박한평(@hanpyeong_) 플레이리스트
1. 이연
https://www.youtube.com/@이연LEEYEON
종이 위에 손으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채널이에요. 일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소재도 ‘이연다운 시선’으로 해석하고 풀어내는 걸 보면 제 생각도 정돈되는 걸 느끼곤 합니다.
2. 수탉
https://www.youtube.com/@sutak_istp
이건 은밀한 알고리즘인데, 저는 공포게임 마니아예요. 따스한 글 쓰는 사람이 밤엔 이런 걸 본다니까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제 소설들은 제법 차가운 편이고, ‘아무도 죽지 않는 밤’ ‘탐스러운 것들’ 등 서늘한 톤을 지닌 심리 스릴러를 쓰고 있어요.
3. 지식인사이드
https://www.youtube.com/@지식인사이드
출연하는 모든 인터뷰이의 내용 자체도 좋지만, ‘질문하는 사람의 자세’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태도’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가공하는 능력’을 지닌 한석준 아나운서의 진행 방식을 특히 애정합니다. 빠져들듯 듣고 있어요.
김수진 ‘66데이즈' 대표
*김수진 소셜저널링 ‘66데이즈' 대표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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