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무개(58)씨는 1999년 봄 ㄷ기계회사에 입사해 나사 홈을 파는 작업 등을 했다. 그러던 2001년 7월 휴일에 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려던 그는 몸이 마비되는 증상을 겪었다. 병원에서는 뇌경색이라고 했다. 업무상 재해라고 판단한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치료와 요양을 하는 데 필요한 급여)를 신청했으나 공단은 거절했다. 김씨의 업무와 뇌경색의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김씨는 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1·2심은 잇따라 김씨의 손을 들어줬고, 2005년 6월 대법원에서 판결은 확정됐다. 다음달 공단은 김씨에게 요양승인을 내줬다.
노동자가 산재를 당해 요양급여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했을 경우 법원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지만, 승소해도 노동자는 손해를 보기 일쑤였다. 대법 판결까지 몇 년이 흐르는 동안 휴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는 시효가 지나버리기 때문이다.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그러나 김씨의 고난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재해를 입은 다음날인 2001년 7월23일부터 치료가 끝난 2005년 6월20일까지 일을 못한 김씨는 이 기간의 휴업급여(요양하는 동안 일을 하지 못하면서 받지 못한 임금의 70%가량을 보전받는 급여)를 달라고 공단에 신청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재해를 입은 노동자는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동시에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공단은 김씨가 2005년 7월21일에야 뒤늦게 휴업급여를 신청한 것을 문제 삼았다. 법적으로 해당 권리의 소멸시효가 3년인 만큼 휴업급여를 신청한 2005년 7월21일로부터 3년 전인 2002년 7월21일 이후만 휴업급여를 인정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즉, 사고 이튿날인 2001년 7월23일부터 이듬해 7월20일까지 363일분의 휴업급여는 줄 수 없다고 결정한 것이다. 가뜩이나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2년8개월 동안 법원을 드나들어야 했던 김씨는 억울했다. 김씨는 다시 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사건을 받아든 서울행정법원 11부 김상준 부장판사와 윤경아·정준화 판사는 고민했다. 형식논리적으로는 공단 쪽의 조처가 타당성이 없지 않았지만, 이는 사법정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업급여 지급의 전제조건이 되는 요양승인 문제를 놓고 김씨가 오랜 기간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점 등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한 사건들에 대해 행정법원은 공단 쪽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려왔다. 재판부가 이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을 내리기 석 달 전인 2006년 2월, 대법원도 유사한 처지의 노동자가 낸 소송에서도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형식논리와 사법정의 사이에서 고민하던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후자를 택했다. 사실 그동안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휴업급여 신청을 해도 그 전제인 요양승인이 확정될 때(김씨의 경우 2005년 6월 대법원 판결)까지는 공단 쪽이 이를 지급한 전례가 없었다. 노동자 쪽으로선 휴업급여를 미리 신청해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판부는 “휴업급여 신청의 실익이 없도록 한 책임이 공단 쪽에도 있다”고 판시했다.
공단이 항소했으나 2심 재판에서 서울고법도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마침내 올해 9월18일 내려진 대법원 판결. 기존 판례에 대한 하급심의 도전에 대법원은 전원합의체를 열어 논의했다. 그러고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기로 최종 결정했다. 판결문은 사실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기간에도 획일적으로 시효가 진행된 것으로 보아 권리를 소멸시키는 것은 “국민의 권리 구제라는 사법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현재 대전고법에서 근무하는 김상준 부장판사는 과의 통화에서 “(대법원 판례에) 상반되지만 한 번쯤 (새로운 판결을) 써보자는 생각이었다”며 “대법원이 14명 대법관의 전원합의체로 (판례를) 변경한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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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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