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인권 OTL-숨은 인권 찾기⑦]
6월7일 토요일 저녁 7시. 사흘간 계속된 촛불 저항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이 막바지로 달려갈 즈음, 다섯 사람이 손팻말을 든 채 거리 한복판에 누워 있었다. 손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쓰인 팻말이 들려 있었다. “청소년·여성 보호 됐거든요.” “촛불시위는 우리 모두의 것이에요.”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가는 사람, ‘다이인’(직접행동의 한 방식으로 ‘죽은 척’함으로써 저항을 드러냄)이라는 색다른 시위 방법에 환호하는 사람, “저게 무슨 소리야? 약하니까 도와주려고 하는 건데”라고 수군거리는 사람 등 반응도 다양했다.
이 액션에 참여한 20대 초반의 여성 송이송씨는 5월24일 시위대에서 밀려난 경험이 있다. 일부 시민이 처음 거리시위를 한 뒤 광화문으로 돌아온 자정 무렵, 경찰들이 차벽에서 쏟아져나와 시민과 대치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앞쪽에 자리해 있던 송씨에게 사람들이 외쳤다. “여자들은 뒤로 빠지세요.” “위험합니다.” 여성들도 외쳤다. “남자분들, 앞으로 나와주세요.” 송씨는 “제가 싸울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국 한 40대 남성이 어깨로 제치면서 밀어내 뒤로 빠지게 됐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발목을 삐끗했다. 송씨는 “보호받으러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주장하는 바를 이야기하기 위해 집회에 나온 것인데, ‘여성 보호’ 원칙이 나오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려는 여성은 뒤로 빠져야 하고, 몸이 안 좋거나, 결의가 안 돼서 뒤에 있는 남성들은 되레 욕을 먹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며 “우리 모두 시민이고, 시민에는 남녀가 없다는 걸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진보 블로그에는 집회·시위에서의 ‘여성 배제’와 관련해 다양한 글들이 올라왔다. ‘유랑감자’라는 아이디를 쓰는 블로거는 “전경들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 ‘해산시키려고 하는군’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꼭 감았는데 전경들이 나를 비켜가 남성들을 해산하러 갔다. 행진을 하는 사람 모두 남성이고, 전경들도 남성만을 타깃으로 한다. …여자는 유령이다”라고 썼다. ‘달군’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은 “내 선택에 의해서 움직이고 싶은데, 인도를 배회하면서 구경꾼이 되어버렸다. …집회판에서 배제의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쓰기도 했다.
6월4일 블로거 ‘여름’이 글을 올렸다. “집회의 성비에서 남녀가 비슷하고, 촛불 소녀, 유모차 부대 등 오히려 여성들이 더 주체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여성·청소년 보호’를 내건 예비군이 등장하는 등 우리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우리 존재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보호 됐거든요’를 다이인 액션을 통해 말해봐요. 함께해요.” 뜻을 함께하는 여성 8명 정도가 모였다. ‘여름’은 “비폭력 시위를 전제로 하는 한, 전경이 진압하는 상황에서 무기를 든 전경과 아무것도 들지 않은 시민이 대치하면 시위대 모두 위험하지, 남성이라서 덜 위험하고 여성이라서 더 위험한 것은 아니다”라며 “‘보호 대상’이 아니라 함께 주장하고 소리치고 저항하는 대상으로 인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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