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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은 어떻게 악마의 총이 되었나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인 AK47의 개발과 확산, 그로 인한 참상 다룬 <역사를 바꾼 총 AK47>
등록 2012-04-07 11:17 수정 2020-05-03 04:26

옛 소련 시베리아 출신의 28살 청년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키예프 사단의 전차병 중사로 전쟁에 참가했다. 1941년, 청년은 러시아 서부의 브랸스크에서 독일 기갑부대와 만났다. 전차 안에 있던 그는 전황을 살펴보려고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때 독일군의 포탄이 날아와 청년이 탄 전차 앞의 차를 명중시켰다. 파편이 튀었고 청년의 왼쪽 견갑골이 뚫렸다. 전투가 끝나고 다른 부상자 약 20명과 함께 트럭으로 후송되었는데, 그 트럭마저 습격을 당해 대부분의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독일군은 자동으로 연속 사격을 할 수 있는 단기관총을 갖고 있었고, 당시 소련군 보병은 한 발 발사할 때마다 손으로 볼트핸들을 당겨야 하는 연발식 총을 갖고 있었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주검 더미 사이에서 청년은 전우들을 잃지 않겠다는 오로지 하나의 이유로 자동소총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작이 쉽다는 장점이자 결점

전 기자 마쓰모트 진이치는 (민음인 펴냄)에서 AK47의 개발과 확산 과정, 그로 인한 폭력과 후유증을 촘촘히 취재해 다뤘다. 애초 전쟁에서의 총은 멀리 있는 표적을 쓰러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총은 크고 무거워도 상관없었고 한 발 발사할 때마다 목표물을 재조준해야 했기에 연속적으로 발사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적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큰 총은 무용지물이었다. 예컨대 러일전쟁 당시 203고지 쟁탈전에서는 양쪽 병사들이 총을 거꾸로 쥐어 곤봉처럼 들고 육탄전을 벌였다. 1차 세계대전에서 대포와 폭격기가 개발되며 총의 소용은 더욱 떨어졌다. 작고 가볍고 좁은 장소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연속 발사가 가능한 총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 독일이 권총의 변형인 MP(Machine Pistol·자동권총)를 먼저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청년 칼라시니코프는 MP의 무력에 당했고 AK47을 개발했다. 자신이 개발한 총이 전쟁에 쓰이기 위해 국가에 채택될 줄은, 급기야 독일의 G3, 미국의 M16과 함께 3대 돌격 소총으로 현재까지 전세계적으로 쓰이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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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지만 기계 다루기를 좋아한 칼라시니코프는 전쟁이 아니었다면 자동소총의 설계도 대신 농업용 트랙터의 설계도를 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AK47은 부품 수가 8개밖에 되지 않는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분해하고 청소하고 다시 조립하는 데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두 시간이면 누구나 배울 수 있을 정도로 조작이 쉽고, 혹한·혹서는 물론 습기와 모래 등 이물질에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AK47은 큰 전쟁이 끝나고도, 개발자의 본의와 다르게 나이와 성별, 직업을 불문한 이들을 폭력의 현장으로 내모는 ‘악마의 유혹’이었다.

옛 소련은 동유럽 국가를 비롯한 20여 개국에 특별한 조건 없이 AK47 생산 라이선스를 줬다. AK47 생산을 시작한 나라들은 나중에는 자국의 형편에 맞춰 마음대로 수출과 지원을 시작했고, 무기 수출의 국제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돈만 된다면 누구에게든 팔아넘겼다.

AK47은 1960~80년대 베트남·쿠바·앙골라·모잠비크 등에서 식민지 해방 투쟁의 주역으로 빛나기도 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중동과 동아프리카 등지로 흘러들어간 총은 오늘날 크고 작은 내전 지역부터 각종 이권 다툼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가장 흔한 흉기로 전락했다. 총기가 범람한다는 건 치안 부재를 반증하는 것이다. 개인이 무력으로써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사람들 사이의 신뢰는 무너지고 사회는 급속도로 붕괴했다. 저자는 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무력이 통제되지 않는 지역의 참상을 전하며 국가와 무력,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하나의 해답으로, 소말리아 북서부 지역에서 독립을 선언한 소말릴란드공화국의 예를 제시한다. 내전에 지친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민병이 소유하고 있던 5만 정에 이르는 총기를 정부에 반납하도록 했다. 국제사회에서 공식 국가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힘쓴다.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총기로 무장한 사설 경호원들.  민음인 제공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총기로 무장한 사설 경호원들. 민음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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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해한 AK47. 몸체를 제외하고 총 8조각에 불과한 단순한 구조다. 고장이 적고 손질이 간편해 미숙한 병사들도 쉽게 다룰 수 있다.

분해한 AK47. 몸체를 제외하고 총 8조각에 불과한 단순한 구조다. 고장이 적고 손질이 간편해 미숙한 병사들도 쉽게 다룰 수 있다.

1억 개의 총구, 그 이상의 공포

20년 이상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전문기자로 지내며 각지의 분쟁 지역을 탐사한 저자 또한 취재 중 AK47의 총구 앞에 표적이 된 적이 몇 차례 있었노라 말한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부패한 국가, 붕괴한 치안, 사기가 떨어진 병사가 존재하는 환경에는 언제나 AK47이 있었다. 저자는 일상에 스며 잔혹한 살상무기가 된 AK47의 역사를 다뤄 폭력과 살인을 피부로 느끼며 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이 지구 저편에 아픈 현실로 실재한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AK47은 현재 전세계에 1억 정 이상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총구 앞에는 1억 개가 넘는 공포가 몸을 떨고 있을 터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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