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무렵 우리 동네 엄마들 사이에 카스테라팬 공동 구매 바람이 분 모양이었다. 전기를 꽂아쓰는 엄청 커다랗고 깊은 프라이팬 같은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방석만 한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었다. 엄마는 계란과 우유와 밀가루를 쏟아넣고 빵을 구웠다. 그때 집에서 그 빵을 먹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바로 아래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가 그랬고, 아빠는 출장이 잦았다. 엄마는 빵을 만들다가 이미 냄새에 질렸다. 맛은 좋았지만 끝까지 다 먹은 기억은 없다. 이웃에 나눠주려 해도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엄마랑 친한 아줌마들은 다 공구했으므로. 그렇게, 거대한 카스테라는 두 번인가 우리 집에 나타났다가 홀연히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카스테라는 내게 엄마와 단둘이 낮 시간을 보내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바닷가 동네였다. 카스테라의 달고 고소한 향을 맡으면 그 시절 동네에서 맡은 바다 향이 물씬… 까지는 뻥이고, 어쨌거나 놀 걱정이 전부였던 그 시절이 생각나 기분이 좋아진다.
<한겨레21> 정용일
박민규의 소설 ‘카스테라’는 마지막 장에 이를 때까지 카스테라의 달고 고소한 향과는 무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독신의 주인공은 처음엔 소음이 심한 냉장고와 좁은 공간을 나눠쓰는 게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갖은 방법으로 소음을 줄여보려 노력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주인공은 냉장고에 오히려 우정 같은 걸 느낀다. 그는 냉장고의 원리, 구조, 역사 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냉장의 역사란 부패와의 투쟁’이었다는 지점에서 그는 이 ‘환상적인 냉장시대’에 냉장고에 맥주캔과 김치통, 우유팩 따위를 채워넣는다는 게 좀 부끄러워졌다.
냉장고를 깨끗이 청소하고 가장 먼저, 자신이 꼽은 걸작 를 냉장실 정중앙에 조심스레 넣었다. 인류를 위해 오래오래 걸리버가 보관되길 바라며. 다음으로는 아버지를 넣었다. 아버지는 “누구나 소중하다고는 하지만 분명한 세상의 해악”이기도 한 복잡한 존재다. 다음으로 어머니, 학교, 동사무소, 신문사, 오락실, 미국, 맥도날드, 중국 등이 줄줄이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냉장고 속에 또 하나의 세계가 완성됐을 무렵,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다. 모든 일상은 그대로였지만 단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웅웅대던 냉장고가 고요해졌다는 것. 놀란 주인공이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아버지, 어머니, 세상의 온갖 것들로 가득 차 있던 냉장고는 텅 비었다. 오직 냉장실 정중앙에 반듯한 카스테라 한 조각만 놓여 있었다. 한입 베어무니 부드러운 향이 입과 코를 지났고, 그것은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맛이었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같은 사물이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감정을 달리하게 마련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앞으로 카스테라 향을 맡으면 화해나 용서 등의 감정이 생각날까. 어젯밤 이 소설을 읽으며 나의 처지에서 든 생각은, 개요와 문장 몇 개를 털어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아침에 카스테라처럼 반듯한 원고가 냉장실 정중앙에 놓여 있기를. 아우, 오늘도 마감 꼴찌다.ㅠㅠ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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