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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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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톡스 김정은과 주말집단농장

질 좋은 대게 맛, 서울 녹번동 김앤김 대게전문점
등록 2012-07-05 14:30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21>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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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오전 10시50분부터 고민했다. 마감을 마치고 새벽녘에야 누인 몸뚱아리는 빈둥대길 요구했다. 후배의 올 거지? 라는 별로 간곡하지 않은 음성이 귓전에 메아리치다가, 악! 갑자기 비명이 터져나왔다. 안방에 들어온 아들 녀석이 내 배 위에서 점프를 하며 포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가자! 결혼식 안 가고 가만있다가 골로 가겠다.

나갈 준비를 하는데 와잎이 말한다. “나도 따라가서 한잔 마셔야지~.” 잔치 잔치 열렸네~. 왜 회사도 따라다니지? 라고 묻고 싶었지만, 진짜 따라올까봐 꾹 참았다. 도착했을 때, 신랑·신부는 행진을 하고 있었다. 와잎이 말했다. “때맞춰 잘 왔네~.” 난 대꾸했다. “내가 한 타이밍 하잖아~.” 역시 부창부수. 신랑의 얼굴을 본 와잎이 일갈했다. “쟤 보톡스 맞았어? 얼굴이 왜 이케 부었어? 완죤 김정은이구만~.” 싱글벙글인 김정은에게 다가가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고난의 행군에 합류한 걸 환영한다.” 김정은은 내 말을 못 알아먹었다.

신랑에게 눈도장을 찍은 우리는 단체사진도 안 찍고 바로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뷔페식이었다. 와잎은 접시 두 개에 음식을 한 가득 담아왔다. 내 거까지 챙겨온 줄 알고 감동하려고 한 순간 와잎이 말했다. “뭐해~ 가져다 먹지 않고?”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바랄 걸 바라야지~라고 생각하며 나서는데 뒤통수의 와잎 목소리. “올 때 소맥 좀 가져와~.”

식(사)을 마치고 우리는 편집장과 몇몇 회사 선배들이 규합해서 꾸려나가는 북한산 주말(집단)농장으로 향했다. 아들 녀석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기보다 매주 술판을 벌인다는 얘기에 솔깃한 와잎 때문이었다. 도착했더니 농장 곳곳에서 술판이 흥건했다. 와잎이 말했다. “주말농장이 아니고 주말가든이구만~.” 정인환·이세영 선배도 같이 온 가족과 함께 직접 기른 상추로 고기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선배들은 와잎을 보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면서도, 두려움의 눈길을 감추지 못했다. 와잎은 ‘걱정 마라~ 오늘은 안 달린다’는 표정으로 예의 모드 페이스 조절에 들어갔다. 병풍처럼 펼쳐진 북한산 자락을 보며 유기농 상추에 쌈 싸먹는 고기 맛은 기막혔다. 아들 녀석은 누나들을 따라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와잎에게 우리도 주말농장 하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와잎은 말했다. “해~ 애랑 둘이서~. 난 좀 쉬어야지~.” 영원히 쉬면 안 될까?

해가 저물고 귀갓길에 오르던 참새들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와잎은 고기 먹었더니 가벼운 게 당긴다고 했다. 너 상상임신했니? 우린 지인 소개로 알게 된 녹번동 김앤김 대게전문점으로 향했다. 김앤김은 질 좋은 대게를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집. 스페셜과 소맥을 주문했다. 대게와 함께 고소한 광어·우럭회가 나왔다. 대게의 속살은 달고 달았다. 고단한 아들 녀석은 그만 뻗어버리고 가벼운 게 당긴다는 와잎은 무거운 대게를 잘도 먹었다. 애 먹이려고 했는데 혼자만 신났구만~. 난 근처에 사는 개아범에게 전화를 했다. ‘사당동 노래방 사건’ 이후 2년 동안 못 본 녀석이 보고 싶었다. 920호에 계속. 문의 02-388-6659.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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