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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부양과 핵폭발의 재발 방지

등록 2013-02-09 08:46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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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미안해~. 자긴 그날 저녁도 못 먹고 마감을 하고 있었지. 일 이 밀렸다며. 그러니까 미리미리 좀 해놓지 그랬어? 하긴 그래도 자 긴 개고생하는데 배우자가 동네에서 치맥에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열 좀 받겠다. 그치? 그것도 모자라 10분에 한 번씩 전화해서 혀 꼬 부라진 목소리로 “언제 와~ 자기야?” 반복했으니 쓰린 속에 더 부 아가 치밀었을 거야. 미안해, 자기야~. 술 잘 먹어서 미안해~. 술 막 먹어서 미안해~.

사실 지난번 칼럼(946호 ‘기승전결이 부른 비명횡사’)을 보고 충격 먹었어. ‘재발’된 자기가 돈 때문에 ‘제발~’을 외쳐가며 생짜로 내시 경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미안하다가도, 아무리 술 먹어도 별 탈 없 는 내가 참 다행이다 싶더라. 그날 내가 술 먹은 건 자기한테 미안해 서야. 그날 오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지방간·위염도 없고, 간수치 정상으로 나온 게 자기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 그래서 한잔했지. 자기의 건강을 위해서 말이야. 그러니 건강 만세야!

‘재발’은 좀 어때?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신음 소리 내더니 괜찮아? 10년 전엔 장난 아니었잖아? 처음에 ‘썽’났다고 어머니한테 말했더 니 가제수건에 왕소금 넣고 뜨거운 물로 지져야 한다고 하셔서 그리 했더니만 더 ‘썽’이 났다며? 그래서 서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가 관이었다며? 버스 타서 한 손을 앞자리 등받이 잡고 남은 한 손을 뒤쪽 등받이 잡고 겨우 공중부양하듯 떠서 갔다며? 근데 버스가 과 속방지턱 넘어갈 때 철퍼덕 앉게 돼 비명을 질렀다며? 여자들이 막 쳐다봐서 개쪽팔려 중간에 내렸는데 가방 놓고 내려 막 뛰어가는데 죽는 줄 알았다며? 똥 싼 포즈로 겅중거리며 겨우겨우 학교에 갔다 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 쳐다보며 피했다며? 그렇게 땀 바가지로 흘리며 강의실까지 갔더니 휴강이었다며? 그동안 수업 땡땡이 까서 걱정스레 갔는데 자기만 연락 못 받았다며? 만신창이가 돼서 기듯 이 동아리방으로 왔는데 그날따라 여자 후배들만 있어서 돌아나오 는데 후배들이 밥 사달라고 막 붙잡았다며? 다리에 힘이 풀려 자기 도 모르게 나무의자에 꽝 앉았다며? 악! 핵폭발이 일어나며 머릿속 이 하얘졌다며? 후배들이 왜 눈가가 촉촉하냐고 물어봤다며? 차마 거기가 예민해서 그렇다는 말은 못하고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렇다 고 했다며? 후배들이 듣지도 않고 다른 선배랑 밥 먹으러 갔다며? 화장실에 기어가니 결국 터지고 말았다며? 그래서 남자 후배 R한테 ‘팬티셔틀’ 시켰다며? 돈은 안 주고 입던 팬티 줬다며?

이제는 정말 괜찮아? 회사에서도 공중부양하고 있는 거 아냐? 아 무튼 자기 몸뚱아리도 만신창이인데 거기다 대고 술 먹고 헬렐레 해서 미안해. 지난주에 평소 먹고 싶던 남영동의 이춘복 참치 사줘 서 이런 말 하는 거 아냐. 근데 거기 맛있더라. 참치 맛이 살아 있더 라. 양이 약간 적은 거 같지만서도. 소주가 막 들어가는 걸 반성하 는 차원에서 참았어. 잘했지? 참치는 언제 먹어도 맛있더라. 다음에 또 가자는 얘긴 아냐. 자기 ‘재발’ 다 나으면 갈 데가 있어. 재발 방지 를 위해 곱창 어때? 간에는 간, 대장에는 대장! 문의 02-794-4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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