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오버더 뚝 오함마의 비법

등록 2012-11-16 20:38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21 X

한겨레21 X

얼굴이 안 보이는 그림자가 목을 졸랐다. 몸을 움직이려 하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그림자를 뿌리치고 눈을 떠보니 아들 녀석의 종아리가 내 목을 누르고 있었다. 아 놔~. 어미도 모자라 아들 녀석까지 (지)아비를 아주 골로 보내려고 하는구만~. 아들 녀석의 종아리를 옆자리 아내의 목에 올려놓고 다시 돌아누웠다. 와잎은 숨도 안 쉬고 자는지 세상 몰랐다.

불금 마감을 겨우 마치고 가까스로 누운 자리, 그렇게 토요일이 밝았다. 아점을 차리며 와잎이 말했다. “낮잠도 아닌데 어제 가위눌렸어~.” 난 몸이 허해서 그런 거라며 술 좀 줄이라고 걱정해줬다. 와잎 왈. “본인 걱정이나 하셔~.” 오늘 밤엔 허벅지!라며 주먹을 불끈 쥐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중학교 친구 ‘용나미’였다. ‘오버더 뚝 용나미’. 고향역 근처에 있던 뚝 ‘너머’에 살던 용나미는 중학교 때 담임의 가정방문을 위해 그린 자기 집 약도에 바둑판 모양으로 도랑, 논, 밭이라고 써 큰 웃음을 준 인물. 우리는 녀석의 동네를 있어 보이게 ‘오버더 뚝’이라고 불렀다.

용나미는 지역사회에서 알아주는 미남이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작은 얼굴, 녀석은 스스로를 정우성이라고 불렀고, 우린 감우성이라고 불렀다. 한편, 치킨과 어묵을 좋아한 쾌남 용나미의 손은 곱상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솥뚜껑’이었다. 사람의 손이라기보다 파충류의 발에 가까웠다. 탁자 위에 주먹 쥐고 올려놓으면 ‘오함마’가 따로 없었다. 그 손만 내밀면 외상술도 먹을 수 있고, 남들 떼인 돈도 당장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우린 녀석의 약을 올렸다.

녀석이 전화를 한 것은 서울에 결혼식이 있어 오는데 같이 저녁이나 먹자는 것. 와잎에게 “용나미가 저녁 먹재”라고 말했더니 와잎이 말했다. “아싸, 사시미(회)나 먹어야지~.” 남편이 좀 살아보겠다고 자전거 산다고 할 땐, 돈이 어딨냐고 개무시하다가 그 입으로 동남아 놀러 가면 안 되냐고 묻는 ‘반전 있는 여자’답다.

와잎과 아들 녀석을 꾸역꾸역 데리고 ‘오버더 강’ 종로에서 저녁께 녀석을 만났다. 처자식을 두고 홀로 올라온 녀석은 스포츠머리에 앞머리만 젤을 발라 바짝 세운 컨추리 스타일 그대로였다. 파충류 발도 그대로였다. 와잎의 사시미 타령으로 우린 근처 지중해참치로 향했다. 와잎은 참치회 스페셜과 소맥을 주문했다. 주머니 사정보단 먹고 싶은 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품격 있는 여자’답다. 기본 반찬으로 나오는 죽을 먹으며 딸바보의 딸 자랑을 들었다. 솥뚜껑으로 ‘공책’이라 불리는 스마트폰 속 딸 사진을 보여주는데, 이건 돼지 목에 진주도 아니고, 아주 족발에 은하수였다. 사시미가 나왔을 때, 용나미가 조용히 말했다. “딸 낳는 비법 알려줄까?” 난 쓸데없는 소리라 일축했다. 해동이 잘된 참치회는 시나브로 녹았다. 적당한 가격에 맛도 적당했다. 와잎이 슬슬 발동을 걸자, 아들 녀석이 태클을 걸었다. “엄마~ 또 술 먹냐?” 니가 효자로구나~. 와잎은 “이건 보리차야~”라는 말도 안 되는 애드리브를 쳤다. 그날, 술 먹고 헬레레하는 와잎을 보며 난 오함마에게 그 비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술을 못 먹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 문의 02-723-8685.

xreporter21@gmail.com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