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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랭이왕족발과 와잎의 멘붕

등록 2012-08-28 08:58 수정 2020-05-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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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주중(!)을 뒤로하고 맞은 고통스런 주말 아침, 아들 녀석과 파워레인저 놀이를 하고 있는데 중학교 동창 헐랭이(별명)가 전활 했다. 삐쩍 곯은 몸에 바람 불면 흐느적거려 헐랭이라 불린 녀석. 그 별명을 지은 날, 우연히 전단지에 나온 헐랭이왕족발 상호를 보고 그 이후 헐랭이왕족발로 불리기도 했다. ‘매직아이’로 보면 약간 송승헌을 닮아서 녀석은 자신을 승헌이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우린 송승헌의 본명인 승복이라고 불렀다.

느닷없는 전화에 녀석은 아직도 휴가냐고 물었다. 휴가, 그만 좀 가자. 휴가 두 번 갔다가 골로 가겠다. 녀석은 맛집을 알려주겠다며 자신의 집에서 가까운 광명으로 오라고 했다. 뭐 헐랭이왕족발? 전화를 끊고 거실로 나오자 가기 귀찮은데~ 중얼거리며 와잎이 벌써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오늘도 빠름~.

차를 끌고 광명으로 향하는 길, 칼럼 연재 초기에 소개된 인근 족발집이 없어진 것을 보고 와잎이 말했다. “쓰는 족족 망하는구만~.” 예전에 쓴 다른 가게도 얼마 전 업종 변경됐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난 뜨끔했다. “니가 주폭 부린 건 생각 안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대낮부터 주폭(晝暴)당할까봐 꾹 참았다.

간만에 본 헐랭이는 몸이 다부졌다. 헐랭이에서 벗어나려고 몇 년간 헬스로 몸을 키운 까닭이었다. 하지만 상체운동만 한 탓에 하체는 여전히 헐랭이였다. 상체 이정재+하체 김정렬=여전히 숭구리당당 헐랭이였다. 녀석은 우리를 제대로 된 중국집으로 안내한다며 애기능 하림성으로 이끌었다. 와잎이 뒤에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짱깨? 가뜩이나 중국음식 많이 먹어서 중국 사람 됐는데~.” 쎄쎄! 와잎 개갈굼 승리~. 하림성은 글루탐산나트륨(MSG)과 인공첨가물을 넣지 않고 맛을 낸다는 수타짜장집이었다. 우리는 ‘탕슉’과 유린기, 쟁반짜장을, 와잎은 소맥을 주문했다.

탕슉과 유린기는 튀김옷이 적당해서 바삭한 식감이 좋았다. 탕슉 소스는 너무 달지 않아 적당했다. 뒤늦게 나온 쟁반짜장의 춘장은 캐러멜 색소를 넣지 않아 색깔이 갈색빛이었다. 다른 면보다 조금 더 두꺼운 수타면이 쫄깃했다. 맛은 덜 자극적이고, 심심하기까지 했다. 들큰한 일반 짜장면에 비해 뒷맛이 담백했다.

칼럼 연재를 아는 헐랭이가 “가게 소개해주고 안주를 협찬받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와잎이 말했다. “오빠 같으면 가게 얘기 달랑 2~3줄 나오는데 협찬해주고 싶겠어?” 부창부수 내가 덧불였다. “홀에다 똥만 안 쌌지 맨날 가게에서 진상 피우고 오바이트하는 내용인데 제정신 가진 업주라면 소금 뿌리지~. 그래서 절대 우린 신분을 안 밝혀.” 곧바로 와잎이 으르렁거렸다. “오늘 진상 한번 떨어볼까?” 그러자 옆에서 또봇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들 녀석이 갑자기 말했다. “엄마 또 술 먹냐? 엄마 술 좋아하냐?” 와잎은 멘붕에 빠졌다. 과연 니가 내 아들이구나~. 아비의 한을 니가 풀어주는구나~. 헐랭이는 배를 헐랭거리며 웃고, 와잎은 맥주 추가 주문에 돌입했다. 그날 아들 녀석의 그 한마디로 겨우 소금 세례를 면했다.

P.S. 아무튼 내 돈 내고 니(와잎)가 먹었지만, 문을 닫은 업소들에 심심한 위로를 건넵니다. “다른 가게에서 손님이 주사 부리면 소금 뿌리세요~.” 문의 02-899-9295.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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