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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 살아 있는 킬링 캠핑

등록 2012-10-20 04:58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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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합본호를 마감하던 9월 하순, 이세영 기자가 회사 앞 호프집 ‘스핑’에서 동을 떴다. “메뚜기도 한철인데 더 추워지기 전에 캠핑 가자.” 그즈음 장인이 쓰던 텐트를 물려받고 뒤늦게 캠핑에 꽂힌 그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린 다음주에 주어질 일주일간의 달디단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갑론을박을 벌였다. 땡처리 비행기표를 구해서 일본 오키나와를 가자, 아니다 푸껫을 가자, 됐고 그냥 속초라도 가자로 현실적인 논의를 이어가는데 이 기자가 재차 캠핑 타령을 했다. 김남일·김성환 기자와 난 ‘너나 가라 캠핑’으로 응수했다. 이 기자는 “쌍놈의 ××들, 닥치고 캠핑 가자”며 거듭 칭얼거렸다.

아이들만 데리고 가자는 이 기자의 얘기에 김남일·김성환 기자는 자식도 없는 우리가 왜 애 딸린 유부남이랑 캠핑을 가야 하냐며 안주나 하나 더 시키라고 면박을 줬다. 그렇게 캠핑은 이 기자 혼자 가는 걸로~ 정리되는 듯싶었다.

다음날인 토요일 오후, 이 기자가 전화했다. 낼 캠핑 갈 거니까 주객전도용으로 술과 고기를 사놓으라는 것이었다. 아주 주객전도구만~. 정말 갈 기세였다. ‘쌍김’ 기자들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 아들 녀석만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통화 내용을 듣던 와잎이 말했다. “나 없이 주객전도용으로 캠핑을 간다고? 킬링 캠핑 가고 싶은가 보지?” 난 비굴하게 말했다. “우리 세 식구 다 같이 가야지~.”

그 다음날 오후 출발하려고 짐을 싸는데 이 기자한테서 문자가 왔다. 자신도 혼자 가기로 했으니 혼자 오라는.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이 기자에게 전활 했다. 일부러 크게 말했다. “남자끼리만 간다고? 애들은 하나도 없다고? 그럼 애 데리고 가도 혼자 놀아야겠네? 근데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우선 끊어봐.” 돌아보니 와잎은 ‘뭬야’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난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혼자 오라는데 나도 안 갈까봐.”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그냥 혼자 갔다와. 가기로 했는데 안 가면 그렇잖아.” 이 순간도 중요하다는 것을 난 육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아냐. 나 혼자 가면 무슨 재미야.”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그냥 갔다와. 다음에 같이 가고.” 앗싸! 내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가고 있었다.

결혼 이후 처음으로 떠난 나 홀로 여행. 이게 꿈이냐 생시냐?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불곡산장 캠핑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 기자와 난 서로의 어깨를 치며 작전이 성공했다며 환호작약했다. 곧바로 각자의 와잎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는 반전 센스도 잊지 않았다. 저녁께 도착한 캠핑장엔 전문캠퍼 정용일 선배와 깍두기캠퍼 윤운식 선배도 와 있었다. 주말 캠퍼들이 물러간 뒤로 호젓한 사이트에 텐트를 치고 숯불을 피웠다. 장 봐간 오스트레일리아산 와규를 올리고 맥주를 따랐다. 콧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적당히 익힌 쇠고기를 소금에 찍어 입에 넣었다. 자유의 맛이었다. 목구멍에 맥주를 들이부었다. 해방의 맛이었다. 유부남 6명은 외쳤다. “살아 있네~.” to be continued. 문의 031-840-7860.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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