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기다리셨다. 그동안 칼럼이 왜 이렇게 한 방이 없냐며 남 속도 모르고 서운해하셨던 분들, 와잎이 개과천선한 거 같다며 영 아쉽다고 막말하신 분들을 위해 마이 와잎 제대로 한 건 터뜨려주셨다. 부디 나 가거든~ 사고치면 안 되겠니?
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인지 궁금했었지~. 드디어 떴구나, 떴어. 야무지게 술 말아드시고 와잎 얼굴은 벌겋게 뜨시고, 그런 마누라 건사하느라 내 얼굴도 누렇게 뜨시고~.
지난 토요일, ‘미래 사돈’과 회동을 갖자며 나가자고 할 때도 이런 사달을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몇 주간 지독한 감기로 본의 아니게 절주 패턴을 보여온 와잎인 까닭에 그날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더랬다. 집을 나서면서도 와잎은 계속 훌쩍거렸으니까. 만신창이 몸으로 설마 달릴 것이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우리 6명은 서울대입구역 부근의 삼미옥으로 향했다. 속이 허할 때 종종 찾았던 삼미옥은 30년 전통의 설렁탕집. 설렁탕을 비롯해 꼬리곰탕과 도가니탕의 국물 맛이 일품인 곳이다. 우리는 2층 방에 자리를 잡았다. 어르신들의 친목 모임으로 정신이 없었다. 어수선한 가운데 난 1996년 봄 방한한 세계적인 석학 위르겐 하버마스조차 여기 국물 맛을 보고 “코리안 스튜, 베리 굿!”이라고 말해 더욱 유명해졌다는 곳이라며 미래 사돈에게 잘난 체를 했더니 와잎이 말한다. “하마스가 누구야?” 그러더니 곧바로 수육 대자와 설렁탕, 소맥을 주문했다. 술 주문은 작작 하고 책 주문 좀 하자, 와잎아~.
우설을 비롯해 각종 부위가 함께 나온 수육은 푸짐하고 부드러웠다. 국물을 좋아하는 아들 녀석은 설렁탕을 들이마셨다. 아주 술처럼 먹는구나. 싹이 노랗구나~. 미래 사돈이 소맥을 말아 와잎에게 권했다. 와잎은 감기 걸려서 술 먹으면 안 되는데~ 하면서 넙죽 받았다. 난 한두 잔 먹고 말겠거니 했다. 그건 나만의 개착각이었다. 와잎이 술이 들어가니까 콧물·기침이 멎었다며 오 놀라워라~ 하는 표정을 연방 지을 때도 난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었다. 와잎은 병권을 찬탈하더니 폭풍 주문을 해댔다. 와잎이 주문할 때마다 안쪽 자리의 어르신들의 눈길이 일제히 와잎에게 꽂혔다. 몇 분은 내 며느리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는 표정이듯 싶었다. 와잎은 그러거나 말거나 승주 엄마와 마구 짠을 했다. 몸도 안 좋은데 적당히 마시라고 하자, 불콰한 와잎은 큰소리로 답했다. “그동안 술 안 먹어서 몸이 아팠던 거야, 노인네야~.” 평소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노인네’라고 부르던 와잎의 망언이 터져나온 순간 안쪽 자리에선 어허~ 흠흠~ 같은 헛기침이 연신 나왔다. 어르신들, 자식 교육의 중요성 아시겠죠?
설렁탕이고 나발이고 부랴부랴 자리를 접고 인근 횟집에서 2차를 했다. 아들 녀석과 승주는 ‘강남스타일’ 말춤을 추고 와잎은 승주 엄마와 남편 성토 대회를 이어가며 들이부었다. 승주 아빠와 난, 3차를 가자고 속여 승주네 집으로 아내들을 긴급 수용했다. 승주 엄마는 안방에서, 와잎은 남의 집 거실에서 뻗어버렸다. “정신줄 놓지 말고 집에 가야지~.” 와잎을 흔들어 깨우자, 아들 녀석이 누워 있는 승주에게 따라했다. “아주, 정신줄을 놨구만~.” 대리운전을 부른 뒤, 두 팔로 와잎을 부축하고 동시에 한 팔로 아들 손을 잡고 차까지 오는데 만다라가 따로 없었다. 대리운전 아저씨에게 토요일에 고생하신다고 말을 건네니 아저씨가 말했다. “저보단 손님이 고생하시네요.” 난 울컥했다. 문의 02-889-9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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