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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자고 일어나니 집에 아무도 없었다. 전화해보니 와잎과 아들 녀석은 20분 거리의 처가에 있었다. 아들 녀석을 처가에 맡기고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와잎의 말에 그래~ 그래~ 급반색으로 대꾸를 하며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앗싸! 늦은 마감의 피로도, 새벽에 처먹은 치맥의 숙취도 한 방에 날아갔다. 이 넝쿨째 굴러온 토요일 오후를 어떻게 보낸담~. 소파에 널브러져 영화를 볼까? 만화를 보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을까? 소설에 널브러져 소파를 볼까? 뭔 소리여?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시청각 교재는 달라도, 결론은 널브러져 있는 게 장땡인 것을! 컵라면으로 아점을 때운 뒤, 손 닿을 거리에 주전부리를 부려놓고 케이블 채널을 보며 널브러졌다. 캬~ 여기가 낙원이오, 이곳이 천국일세. 예전에 봤던 가 이리도 재밌는 영화였단 말이냐. 그러던 중 중도 못 깎는 제 머리를 잘도 깎는 원빈을 보며 까무룩 실신했다.
위기에 처한 반라의 여인을 구한 뒤 프렌치키스를 하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팔자가 늘어졌구만~.” 눈을 떠보니 와잎이 눈앞에 서 있었다. 아, 진짜 좀만 늦게 오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여자야~. 둘러보니 TV는 꺼져 있고, 시간은 오후 4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아들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장모님이 파워레인저 장난감 사준다는 미끼로 겨우 저녁까지만 맡겨놓고 왔다고 했다. 갑자기 아들 녀석이 보고 싶어진 내가 물었다. “왜 그냥 데리고 오지?”와잎이 즉답했다. “오면 니가 볼 거냐? 그리고 간만에 둘이서 오붓한 저녁 시간도 갖고 좋잖아?” 진짜 좋을까? 멍 때리고 있는 나를 보며 와잎이 싸늘하게 말했다. “왜 싫어?” 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억지춘향으로 말했다. “좋지, 얼씨구나 좋구나~.”
이윽고 자신의 베프인 쏭양 부부와 저녁 자리가 있으니 어서 씻고 준비하라고 했다. 약속 장소는 베트남 음식 전문점 ‘포몬스’ 서울 여의도점. 합리적인 가격에 맛도 괜찮은 집이라고 와잎이 말했다. 월~ 월~ 월남 스타일~. 쏭양 부부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최근 사이클을 타서 살이 쪽 빠진 쏭 남편을 배우라며 면박을 줬다. 브라우니, 물어~. “그럼 주말에 애 안 보고 자전거 타도 돼?”라고 묻자, 와잎은 “그냥 애랑 집에 있어. 내가 자전거 탈 테니까”라고 말한다. 와잎은 다양한 롤이 나오는 세트모둠전식, 양지머리 쌀국수, 석쇠구이 돼지고기 덮밥, 해산물 팟타이(볶음면)를 순서 없이 주문했다. 베트남의 333캔맥주와 사이공맥주도 빠뜨리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맛이 좋았다. 쌀국수를 즐기지 않던 내가 먹기에도 맛났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집어먹고 있는데 장모님과 통화한 와잎이 웃으며 말했다. “애 엄마네서 재우기로 했어~.” 순간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난, 이후 젓가락을 놓고 술만 마셨다. 와잎은 ‘이게 미쳤나’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신줄을 놔야 돼~. 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월남맥주를 두 순배 돌린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소주로 갈아탔다. 아니, 나만 갈아탔다. 집에 어떻게 왔을까. 옷은 그대로였다. 배가 고팠다. 홀로 컵라면을 먹으며 난 외쳤다. 아들아, 아내가 무서워! 셀프꽐라 된 아비의 처지를 너는 아느냐? 문의 02-780-1515. xreporte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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