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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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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언론사’의 인권

등록 2009-04-16 14:54 수정 2020-05-02 04:25

“모든 인간은 자유로우며, 존엄성과 권리에서 평등하게 태어났다. 모든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존재로서, 서로에게 형제애로써 대해야 한다.”(세계인권선언 제1조)
이 주옥같은 문장을 지금 써야 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써야겠다. 그건 누가 뭐래도, 어떤 상황에서도 진리이자 인류 보편의 합의이기 때문이다.
탤런트 고 장자연씨가 숨진 지 한 달이 넘었다. 경찰 수사는 경찰이라는 조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을 낳을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는 온라인을 떠돌고 있다. 그리고 이종걸 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리스트의 핵심을 짚어 실명을 공개했다. 그런데 왜 그 이름은 활자매체에 등장하지 않을까?
1차적으로는 프라이버시 문제다. 누구든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비록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행위를 했더라도, 그 행위가 사회문제일지라도 그 행위자는 한 개인으로서 자기 삶의 영역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예를 들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조강지처를 버린 벼락부자가 있다고 할 때 그 이유만으로 그의 신상정보와 사진이 모두 까발려지는 건 부당한 일이다. 이런 영역을 지워버리고 나면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문제되는 행위가 범죄로 분류되는 것이라면 얘기는 조금 달라진다.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은 사회적 합의를 깬 것으로, 행위자 스스로 공공의 관심 영역으로 걸어나온 것이다. 프라이버시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라는 말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무작정 그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없는 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최종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형사재판들을 기억한다면, 용의자 단계에서 또는 기소 단계에서라도 행위자들의 신상을 밝히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 ‘공인’의 경우다. 공인은 왜 달리 취급해야 할까? 그들은 그들의 지위로 말미암아, 똑같은 범죄행위를 했더라도 사회적 의미가 더 크다. 그 지위에 요구되는 사회적 기대를 저버린 것일 수 있고, 더구나 그 공적인 지위를 범죄에 이용했을 수도 있다. ‘죄질’이 남다른 것이고, 공론화를 통해 재발을 막아야 할 필요성도 훨씬 크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인의 지위는 자신을 겨냥한 의혹 제기와 공격에 맞서 자신을 변호할 수단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감방에 갇힌 이름 없는 피의자는 하소연할 방법이 없지만, 공인이라면 언론 접근성을 통해 얼마든 반박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해당 언론사’ 사장의 경우는 어떨까? 프라이버시가 깊이 관련된 사안임은 분명하다. 의혹이 진실이라면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반면 고 장자연씨의 유서와도 같은 기록에 신뢰성을 부여한다 하더라도, 혐의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 증거는 아직 부족한 게 현실이다.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의 노력은 계속되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그는 분명한 공인이고, 언론을 통해 자신을 변호할 기회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인물이다. 국회의원과 다른 언론사에 협박의 냄새가 풍기는 공문과 보도자료를 배포한 유력 신문의 오너가 아닌가.
다만 사건의 성격상, 범죄 혐의의 입증 가능성과 공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을 계량할 때 정확한 눈금을 정하기 곤란한 건 사실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전자에 비중을 두면 실명을 공개하기 힘든 것이고, 후자에 비중을 두면 실명 공개도 얼마든 가능하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가수 나훈아씨와 관련된 괴담이었다. 입증하기 힘든 루머 속에 고민이 컸을 그 공인은 바로 자신의 공인 지위를 이용해 사건을 한순간에 해결했다. 그가 기자회견을 자청했을 때 이 나라의 모든 언론이 몰려갔다. 심지어 공중파에 생중계까지 됐다. 나훈아씨는 진솔한 심경 고백을 했고, 이후 괴담은 사라졌다. 입증하기 힘들지만 오프라인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는 루머였다. 당사자가 선택한 대응이 다를 뿐이다. 법적 대응이라는 윽박지름이냐, ‘루머 대 진실’의 게임이냐. 정정당당한 공인이라면 어던 선택을 해야 할까.
복잡한 사안일수록 원칙을 돌아보게 된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다. 해당 언론사 사장에게도 인권이 있을 것이다. 해당 언론이 평소 아무리 인권을 등한시하고 툭하면 용의자 실명을 거론하고 무죄 추정 원칙을 쓰레기 취급했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도 인권이란 선물을 주고 싶다. 인권을 다시 생각하며 과거 보도 행태를 반성할 기회를 삼는다면 그나마 좋은 일일 테니까.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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