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가운데)이 2025년 9월3일 오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전승절 80돌 기념행사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을 이끌고 천안문 망루로 향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년 9월3일 수도 베이징 한복판 천안문(톈안먼) 망루에 올랐다. 오른쪽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왼쪽엔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무위원장이 자리했다. 톈진과 베이징을 무대로 나흘간 이어진 대서사의 절정이다. 치밀한 상징조작으로 완성된 2막극은 각각 중국의 소프트파워(연성권력)와 하드파워(경성권력)를 상징한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선 다국적 연대의 주인공이 중국임을 세계에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8월31일~9월1일 톈진에서 제25차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열렸다. 2001년 6월 중국과 러시아, 중앙아시아 4개국으로 출범한 상하이협력기구는 24년 만에 10개 회원국, 2개 옵서버국, 14개 대화상대국 등 26개국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로 성장했다. 전세계 인구의 50%, 경제 규모의 25%를 차지하는 아시아·유럽·아프리카 최대 지역협력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관심의 초점이 된 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다. 오랜 기간 미국과 밀착했던 모디 총리가 7년4개월여 만에 중국을 향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부과한 고율 관세 탓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8월6일 인도에 25% 상호관세 외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이유로 25%의 추가 보복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9월1일 모디 총리가 톈진 메이장 컨벤션센터에 마련된 회의장에 도착했다. 그는 다가오는 푸틴 대통령의 손을 부여잡고 시진핑 주석 쪽으로 이끌었다. 세 정상은 손을 마주 잡고 한참을 웃으며 대화했다.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이었던 인도가 중국·러시아와 함께 미국에 맞서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다.
이날 회의를 주재한 시 주석은 ‘초심과 사명을 마음에 새기고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자’는 제목의 연설에서 ‘공평과 정의’를 강조했다. 그는 “냉전적 사고와 진영 대결, 특정국의 횡포에 반대한다.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 체계를 수호하고, 세계무역기구(WTO)를 핵심으로 하는 다자무역 체제를 지지하며,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협치 체계 구축에 나서자”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의 수호자를 자임하고 나선 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부터)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5년 9월3일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올라 전승절 80돌 기념 열병식을 지켜보고 있다. 교도 연합뉴스
무대는 베이징으로 옮겨졌다. ‘중국 인민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전쟁 승리’(전승절) 80돌 기념행사장인 천안문 광장은 9월3일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 개막에 앞서 합창단의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은 인민예술가 장한후이가 1936년 발표한 항전가곡 ‘송화강에서’다. “내 고향집은 동북 송화강에 있습니다/ 저기 산림탄광이 있어요/ 그리고 저 산 가득 콩과 수수/ 내 고향집은 동북 송화강에 있습니다/ 거기 내 동포가 있습니다/ 늙으신 부모님도/ 9·18, 9·18/ 비참했던 그 시절부터/ 내 고향 땅을 떠나….”
‘9·18’은 흔히 ‘만주사변’으로 불린다. 1931년 9월18일 일제 관동군이 자원과 물자가 풍부한 만주 일대를 병참기지로 삼기 위해 일으킨 침략전쟁이다. 합창단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곡은 ‘공산당이 없었다면, 신중국도 없었다’는 제목의 혁명가곡이었다. 일제의 만행을 딛고 공산당이 새로운 중국을 건설했음을 부각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이윽고 리창 국무원 총리가 행사 개막을 알렸다. 80발의 예포가 울렸다. 육·해·공군 각 80명씩으로 이뤄진 의장대가 중국 국기(오성홍기)를 게양했다.
이어 시 주석이 연설에 나섰다. 핵심은 세 가지였다. 첫째, 중국 인민의 희생으로 항일·반파시스트 전쟁에서 승리했다. 둘째, 인류의 공동 노력으로 평화를 되찾았다. 셋째, 지금 세계는 다시 평화냐 전쟁이냐, 대화냐 충돌이냐의 기로에 섰다. 인류는 운명공동체다. 중화민족이 인류를 위해 중대한 공헌을 할 것이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2025년 9월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를 앞두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번엔 열병식이다. 육·해·공군에 이어 로켓군, 우주군, 사이버군, 정보지원군, 병참지원군, 무장경찰, 예비군, 여성민병대, 평화유지군 등이 차례로 행진했다. 이어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기갑부대를 시작으로 초음속 크루즈미사일(YJ-19)과 초대형 무인잠수정(AJX-002), 전세계 어디든 타격이 가능한 사거리 2만㎞급 다탄두 대륙간 전략핵미사일(DF-5C) 등 최첨단 무기가 등장했다. 하늘에선 조기경보기를 필두로 각종 특수임무기와 전략폭격기, 공중급유기 등이 위용을 뽐냈다. 세계 최강 군사대국인 미국에 맞설 수 있는 무력을 갖췄음을 과시한 셈이다.
전승절 80돌 기념행사엔 상하이협력기구 참여국 등 26개국의 국가원수가 참석했다. 한국·싱가포르·베네수엘라 등 6개국에선 국회의장·부총리급이 참석했다. 브라질·헝가리·니카라과 등 6개국은 특사를 파견했다. 중국 외교부가 8월28일 공개한 참석인사 명단을 보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일 먼저 등장한다. 1945년 함께 싸운 ‘항전의 우방국’이기 때문이다. 천안문 망루의 한가운데에 시 주석을 중심으로 나란히 선 세 정상의 모습은 미국에 맞서 북·중·러가 ‘반미 전선’을 구축한 것처럼 보였다. 과연 그럴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은 2차 북-미 정상회담(베트남 하노이)을 한 달 앞둔 2019년 1월 이후 6년8개월 만의 일이다. 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2018년 3월 첫 방중에 이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한 같은 해 5월과 6월에도 중국을 방문했다. 2019년 6월엔 시 주석이 방북했다. 이후 6년2개월여 동안 북-중 두 정상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2020년 벽두부터 코로나19로 양국의 국경이 막혔다. 2022년 초 북한이 국경을 연 직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와 급격히 밀착했다. 두 나라는 2024년 6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통해 준동맹 수준까지 관계를 끌어올렸고, 같은 해 10월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으로 혈맹이 됐다.

2025년 9월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전승절 80돌 기념 열병식에 참가한 인민해방군 장병들이 줄 맞춰 행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북-러가 밀착하는 사이 북-중 관계는 흔들렸다. 대표적 사례가 2023년 북한의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27일) 70돌 기념행사다. 러시아에선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세르게이 쇼이구 당시 국방장관이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했다. 중국에선 리훙중 전국인민대표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당정대표단장으로 평양을 찾았다. 앞서 전승절 60돌을 맞은 2013년엔 시 주석의 측근이자 권력 서열 8위인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이 참석했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방북대표단의 ‘급’을 낮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당시 김 위원장은 쇼이구 장관과 사흘간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했다. 리 부위원장은 시 주석의 친서 전달 외에 별다른 공식 일정이 없었다.
김 위원장의 전격적인 다섯 번째 방중에 앞서 양국 관계가 개선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짐이 있었다. ‘조-중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 체결 64돌을 맞아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이 2025년 7월9일 마련한 기념행사다. 북쪽을 대표해 강윤석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이 행사에 참석했다. 하지만 2024년 7월11일 열린 63돌 기념행사엔 최고인민회의 조중우호의원단 위원장인 김승찬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 참석했다. 북이 행사의 ‘격’을 높인 셈이다. 조-중 조약 체결일 기념행사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이 참석하는 게 오랜 관례다.
좀더 미묘한 변화는 일찍부터 감지됐다. 중국 외교부가 한반도 정책 관련 질문에 일관되게 강조하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반도 비핵화다. 둘째, 한반도 평화·안정 유지다. 셋째,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다. 2022년 6월7일 자오리젠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한반도 관련 질문에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것이 관련 각국과 국제사회의 공통이해에 부합한다. 각국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동하기 위해 공동 노력에 나서길 희망한다”고 답했다. 세 요소가 모두 담겼다.
반면 같은 해 9월9일 브리핑에서 마오닝 대변인이 한 발언은 전과 달랐다. 북한이 공세적인 핵사용 교리를 담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핵무력정책법) 입법을 발표한 날이다. 마 대변인은 관련 질문에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변화가 없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란 대전제에서 출발해,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동하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 게다. 이후 중국 외교부 쪽은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비핵화를 ‘실현 불가능한 망상’으로,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 정상회담을 ‘상대방에 대한 우롱’으로 규정한 바 있다.
전승절 행사를 전후로 한·미·일 삼각 협력에 맞선 북·중·러 삼각 협력 체제가 구축되면, 한반도와 동북아가 냉전 시절로 복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외교·안보 원로는 “걱정을 가불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두 가지 살필 게 있다. 첫째, 진영 간 경제권이 철저히 분리됐던 냉전 때와 달리 지금은 전세계가 공급망으로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어느 한쪽을 버릴 수 없는 구조란 뜻이다. 둘째, 중국은 북·러와 처한 현실이 다르다. 북한과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는 ‘불량국가’다. 중국은 국제규범 준수를 강조하는 ‘정상국가’다. 북·중·러를 하나로 엮으려면, 중국이 국제규범을 어겨야 한다는 뜻이다. 안치영 인천대 교수(중국정치학)는 이렇게 짚었다.
“전승절 기념식에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하면서 ‘그림’은 만들어졌지만, 역사적으로 북·중·러 동맹은 존재한 적이 없다. 되레 중국으로선 그걸 가장 피하고 싶을 것이다. 미-중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순 있겠지만 북-중, 중-러 경제협력도 제재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제재의 선을 넘어선 관계 개선은 중국에 엄청난 손해를 초래할 텐데, 그걸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도 비슷한 평가를 내놨다. 그는 “북·중·러 삼각 체제에는 북-중, 북-러, 중-러란 3개의 양자관계가 존재한다. 북-러는 현재 동북아에서 정치·군사·외교·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다. 반면 중-러와 북-중은 다르다”고 말했다. 중-러 관계는 미국에 대한 일종의 ‘대항 헤게모니’란 측면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와 달리 중국은 유엔과 세계무역기구 등 다양한 국제기구와 규범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2025년 9월3일 오후 중국 베이징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함께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북-중도 마찬가지다.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과 함께 북이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 경제는 중국)을 추진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김 전 장관은 “그건 불가능한 소리”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북제재 등 국제규범을 지키겠다는 중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며 “제재의 틀 안에서 인도적 지원을 하거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단체 관광객을 보내는 등 인적 교류는 할 수 있겠지만, 러시아처럼 제재를 위반하면서까지 북-중 협력을 추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외교에서도 적용된다.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미국에 달렸다. 남북, 북-미 관계도 마찬가지다. ‘적대적 두 국가’를 내세운 북이 조만간 남북대화에 나서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만날 가능성도 매우 낮다. 미국이 ‘북·미 수교-평화협정 체결-비핵화’란 싱가포르 합의의 3단계 해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8월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말했다. 육상 장거리 경기에서 페이스메이커는 일정한 속도로 앞서 달리면서 다른 선수의 속도를 올리는 구실을 한다. 의학에서 페이스메이커는 심장이 너무 느리게 뛸 때 전기자극을 통해 정상적인 리듬으로 박동하도록 돕는 이식형 기계장치(인공 심장박동기)를 뜻한다. 한반도 평화란 심장의 박동이 멈추지 않도록 어떻게든 화해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 당국자를 지낸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동결-축소-비핵화’란 3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지금은 1단계만 얘기하면 된다. ‘동결’을 위한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지에 집중해야 한다. 산을 하나 넘어야 다음 산을 넘을 수 있다. 눈앞의 산도 못 넘으면서 먼 미래까지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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