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1일 새벽 이스라엘군이 18년 만에 국경을 넘어 레바논 남부 지역으로 지상군 병력을 투입했다. 같은 날 저녁엔 이란이 이스라엘 영토로 탄도미사일 200여 발을 발사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보복을 다짐했다. 중동 전역에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국제유가는 출렁였다. 전날인 9월30일 대륙간선물거래소(ICE)에서 배럴당 71.77달러를 기록한 12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장중 한때 75.45달러까지 치솟았다가, 전장보다 1.79달러 오른 배럴당 73.56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선 전날 배럴당 68.17달러를 기록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이 장중 한때 배럴당 71.94달러까지 올랐다가, 전장보다 1.66달러 오른 배럴당 69.83달러로 장을 마쳤다.
주식시장은 폭락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173.18(0.41%) 떨어진 4만2301.7로 장을 마쳤다. 우량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지수도 53.73(0.65%) 떨어진 5725.07을, 첨단·기술주 중심 나스닥 지수는 278.81(1.53%) 떨어진 1만7910.36을 각각 기록했다.
눈에 띄는 예외가 있다. 록히드마틴(LMT)의 주가는 전날보다 21.3달러 오른 605.86달러를 기록했다. 노스럽그러먼(NOC)의 주가도 15.81달러 오른 543.88달러를 기록했다. 아르티엑스(RTX·옛 레이시온)의 주가 역시 3.23달러 오른 124.39달러로 장을 마쳤다. 이 세 기업은 미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펴낸 최신 ‘세계 100대 군수업체’ 순위에서 1~3위를 차지했다. 그러니 전쟁은 누구에게 이로운가?
“우크라이나 부스 옆에는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이 마치 어린 동생을 보호하는 큰형처럼 자랑스럽게 전시돼 있었다.” 로이터 통신은 2022년 6월13일 프랑스 파리 인근 빌팽트에서 열린 ‘유로사토리’ 참관 기사에서 이렇게 썼다. 격년으로 열리는 유로사토리는 세계 최대 규모 지상군·대공방어용 무기 전시회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4년 만에 재개된 행사의 초점은 자연스레 넉 달여째로 접어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모였다. 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동유럽 무기제조사 대표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올해 박람회는 온통 우크라이나 얘기뿐이다. 전쟁은 분명 사업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내가 전쟁을 환영한다는 건 아니지만….” 통신이 언급한 재블린(FGM-148) 미사일은 록히드마틴이 레이시온과 공동으로 개발한 미군의 3세대 적외선 유도방식 대전차 미사일이다. 병사의 어깨에 견착하거나 차량에 탑재해 발사하는데, 사양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발사대와 미사일 1세트당 가격은 약 3억~3억5천만원에 이른다.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탱크와 전차를 잡을 수 있어 ‘가성비 최고’란 찬사를 받는다. 재블린 미사일은 러시아의 침공 직후 방어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에 가장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재블린 미사일에 ‘성 재블린’이란 별칭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는 11월20일 낸 보도자료에서 러시아의 침공 이후 2024년 11월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 규모가 641억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국무부는 자세한 군사지원 목록도 공개했는데, 재블린 미사일은 1만 발 이상 지원했다고 밝혔다. 단순 계산으로 약 20억달러(2조7868억원)에 이르는 액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록히드마틴의 ‘사업’에 분명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전쟁은 어떨까? 미국외교협회(CFR)는 11월13일 낸 자료에서 2023년 10월7일 가자지구 침공 이후 1년여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군사지원 규모를 ‘최소 125억달러’(약 17조4천억원)로 추산했다. 반면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의 전쟁비용 문제를 추적해온 브라운대학에 딸린 왓슨국제문제연구소 쪽은 2024년 4월 의회를 통과한 ‘대이스라엘 긴급군사지원법’에 따른 지원액 141억달러와 연례 군사지원금 38억달러를 합쳐 2023년 10월부터 2024년 9월까지 1년 동안에만 모두 179억달러(약 24조9천억원)를 지원했다고 짚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23년 10월9일치에서 “가자지구 전쟁 발발 직후 록히드마틴(8%), 노스럽그러먼(11%), 아르티엑스(4%)를 비롯한 방산업체 주가가 폭등세를 보이며 2020년 3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무기체계를 만든다는 점에 대해 사과할 필요는 없겠다.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위협에 대응하는 데 대단히 효과적인 억제수단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있고, 그게 장기적으로 사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레고리 헤이스 레이시온(현 RTX) 최고경영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한 달여 만인 2022년 3월25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로 공급되는 무기체계는 모두 미 국방부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의 비축분이다. 결국 비축분은 모두 소진될 거고, 새로 생산한 무기체계를 다시 비축해야 할 때가 올 거다. 향후 몇 년 동안은 활황세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 방산업체의 본격적인 ‘잔치’는 전쟁 이후 시작된다. 전쟁으로 빈 무기고를 채워야 하고, 미래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국방예산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2022년 유럽연합(EU)의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13%나 급증한 바 있다. 러시아란 ‘실체적 위협’은 유럽 각국의 국방예산 증액에 정당성을 부여할 터다. SIPRI가 2024년 4월22일 펴낸 ‘세계 국방비 연감’을 보면, 2023년 지구촌 국방비 총액은 전년 대비 6.8% 상승한 2조4430억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31개 나토 회원국이 쓴 국방비는 1조3410억달러로 전체의 55%를 차지했다.
전쟁으로 돈을 버는 건 방산업체뿐이 아니다. 방산업체 투자자도 돈방석에 앉는다. 미국 대안매체 슬러지는 9월12일 연방 상·하원 의원과 그 가족 50여 명이 방산업체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가 2023년 재산신고 현황자료를 분석한 결과, 이들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은 최소 1090만달러(약 152억원)에 이른다.
의원들이 가장 많이 주식을 보유한 방산업체는 감지기(센서)와 유도장치를 생산하는 허니웰이었다. 이 업체가 생산한 부품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를 공습할 때 사용한다.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업체는 아르티엑스였다.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방공망 ‘아이언돔’에 사용하는 미사일을 이 업체가 생산한다. 슬러지는 “방산업체 주식을 보유한 의원들이 방산업체에 막대한 예산을 투여하는 안건 표결에 참여하는 건 명백한 이해충돌”이라고 짚었다. 2024 회계연도 미국의 국방예산은 9530억달러(약 1328조원)에 이른다.
“동료 의원 상당수가 자기들이 투자하고 정치자금까지 후원받는 방산업체에 천문학적 예산을 몰아주고 있다. 2023년 연방 상·하원 의원들이 방산업체 주식을 거래한 건수는 모두 96건인데, 이 가운데 8건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한) 10월 이후 이뤄졌다.”
미 의회에서 유일한 팔레스타인계인 러시다 털리브 하원의원(미시간주)은 2024년 2월6일 보도자료를 내어 이렇게 질타했다. 그는 이날 ‘정치인의 전쟁을 통한 이득 취하기 금지법안’을 대표발의했다. 털리브 의원은 자료에서 “방산업체 주식을 보유한 선출직 공직자가 예산 편성권을 행사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군-산-의회 복합체’의 강력한 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선출직 공직자의 방산업체 주식 보유를 당장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쟁은 끔찍하다. 전쟁으로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다. 9·11 동시테러와 ‘테러와의 전쟁’ 20주년을 맞아 왓슨국제문제연구소는 진보적 싱크탱크 국제정책센터(CIP)와 공동으로 ‘전쟁의 이익: 9·11 이후 국방예산 증액의 혜택을 본 기업들’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9·11 이후 급증한 국방예산으로 가장 큰 이득을 취한 것은 크고 작은 방산업체”라며 “아프가니스탄 침공(2001년 10월)을 시작으로 (지난 20년 동안) 미 국방부는 14조달러를 전쟁비용으로 사용했다. 이 가운데 3분의 1에서 절반가량을 방산업체가 취했다”고 짚었다. 윌리엄 하퉁 국제정책센터 무기·안보 프로그램 담당 국장은 “전쟁 또는 전쟁 준비 대신 외교를 우선시해야 한다. 전쟁을 통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이득을 취하는 세력에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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