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파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이 어둡고 좁은 길을 냈다. 그 길을 따라 개혁파가 다시 이란 정치무대 전면에 서는 파란이 연출됐다. 전국 단위 정치무대에서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던 개혁파 후보 마수드 페제슈키안의 대통령 당선은 이란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1954년 9월 튀르키예·이라크·아제르바이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란 북서부 서아제르바이잔주의 소도시 마하바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쪽은 아제르바이잔계, 어머니 쪽은 쿠르드계 집안이다. 그가 페르시아어(이란어)는 물론 쿠르드어와 아제르바이잔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유다. 인구 약 8900만 명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소수민족인 이란에서 소수민족 언어 구사 능력은 ‘정치적 자산’이다.
1973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곧 입대해 시스탄·발루치스탄주의 극빈촌인 자불에서 군복무를 했다. 당시 자불은 이란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혔다. 젊은 페제슈키안은 그곳에서 ‘정치적 각성’을 하게 된다. 제대 뒤 서아제르바이잔주 타브리즈의과대학(TUOMS)에 진학한 그는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종전 뒤 그는 모교의 일반외과 전문의 과정을 거쳐 수도 테헤란의 이란의과대학(IUMS)에서 심장외과 전문의 과정을 마쳤다. 이어 1994년엔 타브리즈의과대학 학장으로 부임했다.
페제슈키안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비극적 사건이 이 무렵 벌어졌다. 의대생 시절 만나 결혼해 3남1녀를 낳은 산부인과 전문의인 아내와 막내아들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재혼하지 않고 요리를 배워가며 남겨진 2남1녀를 홀로 보살폈다. 그가 대선 후보 등록을 할 때 히잡(무슬림 여성이 머리에 쓰는 수건)을 쓰고 곁을 지킨 건 화학자로 성장한 딸 자흐라였다. 그는 선거 유세에서 “제 가정에 충직했던 것처럼, 여러분께도 충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를 교정에서 정치권으로 이끈 건 개혁파 성직자 모하마드 하타미의 대통령 당선이다. 그는 1997년 하타미 정부 1기의 보건부 차관으로 발탁됐고, 2001년 하타미 정부 2기 출범과 함께 보건장관에 지명됐다. 하타미 대통령 집권 8년 내내 보수파는 집요하게 개혁파 정부를 공격했다. 극한 대립으로 온 사회가 들끓었다. 2005년 대선에서 하타미 대통령의 후임으로 선출된 것은 ‘보수파의 총아’였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테헤란 시장이었다. 이란 사회가 ‘후진’하기 시작했다.
“공무원이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고도 정원이 딸린 집을 사고, 친척을 모두 돌볼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인간은 저런 식으로 돈을 벌고, 또 쓰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영국 런던에서 운영하는 개혁파 성향 인터넷 매체 <이란와이어>는 2024년 7월6일 페제슈키안 당선자가 2008년 국회(마즐리스)의원 첫 출마 당시 한 발언을 따 이렇게 보도했다. 아마디네자드 정권의 부패에 분노한 그는 제2의 고향인 타브리즈에서 출마해 무난히 당선됐고, 이후 내리 5선에 성공했다. 2016~2020년엔 국회 제1부의장을 맡기도 했다.
페제슈키안 당선자의 대선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3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가 온건 보수파인 악바르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했다. 당시 개혁파의 폭넓은 지지를 얻었던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끝내 출마 자격을 얻지 못했다.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2021년에도 대선 출마를 선언했지만, 출마 자격을 얻지 못했다. 이란에선 이슬람 고위 성직자 6명과 율법학자 6명 등 12명으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가 공직 후보의 출마 자격을 검증한다. 2024년 대선에서 그는 어떻게 출마 자격을 얻었을까?
개혁파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당선된 2013년과 2017년 대선 때 투표율은 각각 72.7%와 73.3%를 기록했다. 반면 경쟁력 있는 개혁파 후보가 출마하지 못한 2021년 대선 때 투표율은 약 48.5%까지 극적으로 떨어졌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대선뿐이 아니다. 2012년과 2016년 치른 총선의 투표율은 각각 66.2%와 61.6%를 기록했지만, 개혁파 후보가 배제된 2020년 총선의 투표율은 42.6%로 급락했다.
2024년 3월 치러진 총선에선 투표율은 역대 최저치인 40.6%까지 떨어졌다. 특히 전체 투표수의 약 5%가 무효표였다. 개혁파 진영의 ‘선거 보이콧’ 촉구에 따라 유권자 절대다수는 투표하지 않았고, 그나마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는 조직적으로 ‘항의 투표’를 했다는 뜻이다. 개혁파를 아예 후보군에서 배제하면, 투표율을 높일 수 없음이 자명해졌다.
그래서다.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숨진 뒤 불과 20여 일 만인 6월9일 헌법수호위원회는 출마 의사를 밝힌 80명 가운데 고른 6명의 후보에 페제슈키안 당선자를 포함시켰다. 나머지 5명은 보수파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페제슈키안 당선자가 선전할 것을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 6월28일 치른 1차 투표의 투표율은 39.9%로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웠다.
개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중도 사퇴한 2명을 뺀 보수파 후보 3명과 맞붙은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1041만여 표(득표율 44.4%)를 얻으며 1위를 차지했다. 보수파 외교전문가인 사이드 잘릴리 후보가 947만여 표(40.4%)로 그 뒤를 이었다. 현직 국회의장으로 당선 가능성이 점쳐졌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후보는 338만여 표(14.4%)에 만족해야 했고, 보수적 율법학자인 무스타파 푸르모하마디 후보는 단 20만여 표(0.9%)를 얻는 데 그쳤다. 과반 득표자가 없는 터라, 상위 두 후보 간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기적처럼 성사된 결선투표를 앞두고 두 차례 열린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선명한 개혁성을 앞세워 잘릴리 후보를 압도했다. 정치·문화를 주제로 한 첫 번째 토론회(7월1일)와 경제를 주제로 한 두 번째 토론회(7월2일)에서 그가 한 발언을 추려보자.
“인간에 대한 어떤 형태의 강요에도 단호하게 반대한다. 여성과 소녀들에게 가해지는 행태에 수치심을 느낀다. (…) 히잡을 강제로 벗겨서도 안 되고, 착용하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인간에게 뭔가를 강요하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가혹행위를 하는 일체의 방식에 대해 종교적 신념에 입각해 반대한다.”
“세계 최대 원유·천연가스 보유국임에도 국민에게 겨울엔 가스를, 여름엔 전기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 핵 협상을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다른 외교적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관계 정상화와 협력적 정책을 통해 (미국 등 서방이 부과한) 제재를 해제시키겠다.”
“다른 국가의 영토를 침탈·점령하는 행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 집단살해(제노사이드)와 인종차별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그는 여성의 복장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 제도에 명확한 반대 의사를 밝혔고, 만연한 인터넷 검열도 강력 성토했다. 반면 잘릴리 후보는 라이시 전 대통령을 ‘순교자’로 칭하며, 그의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1979년 이슬람혁명 뒤 처음 결선투표를 한 건 2005년 대선 때다. 당시 1차 투표의 투표율은 62.7%, 결선투표 투표율은 그보다 3%포인트가량 낮은 59.8%였다. 7월5일 치러진 사상 두 번째 결선투표에선 투표율이 1차 투표(39.9%) 때보다 10%포인트 가까이 오른 49.7%를 기록했다. 참여 유권자는 1차 투표(2347만여 명) 때보다 645만 명가량 늘어난 2992만여 명이었다. ‘기이한 열기’였다.
잘릴리 후보는 결선에서 1차 투표 때 자신과 나머지 보수파 후보 2명의 득표수를 합산한 것(1306만여 표)보다 약 50만 표 많은 1353만여 표(득표율 45.2%)를 얻었다.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1차 투표(1041만여 표) 때보다 약 597만 표가 많은 1638만여 표를 얻었다. 1차 투표에 불참한 뒤 결선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10명 가운데 9명이 페제슈키안 후보를 지지했다는 뜻이다.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8월 초 취임한다. 그에 앞서 내각을 구성해야 한다. 장관 임명에는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승인과 보수파가 장악한 마즐리스의 동의가 필요하다. 첫걸음부터 쉽지 않아 보인다. 고령인 하메네이(85)의 후계 구도 논의가 본격화하면 정국에 복잡성이 더해질 터다.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를 침공한 이스라엘이 전선을 넓힌다면, 이란도 분쟁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이미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고 있는 레바논·시리아 등 이른바 ‘저항의 축’ 국가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겠다고 다짐했다.
경제·외교의 사활이 걸린 2015년 체결한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복원도 ‘고난의 행군’이 될 공산이 크다. 합의 이행 감시와 우라늄 등 핵물질 회수 책임을 맡은 러시아가 합의의 다른 한 축인 미국·유럽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정면충돌하고 있다. 2018년 일방적으로 합의를 폐기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재입성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안팎으로 상황이 녹록지 않아 보인다.
45년 전 이란에서 삶을 규정하는 ‘이슬람’과 정치를 규정하는 ‘공화국’이 어우러져 ‘이슬람공화국’이 탄생했다. 이슬람식 ‘근대화 혁명’이었다. ‘이슬람’(종교)과 ‘공화국’(민주주의)은 여전히 대립하고 있다. 페제슈키안 당선자는 둘 사이에서 균형추 구실을 할 수 있을까? 그가 온건 보수파까지 아우르는 ‘거국내각’을 구성할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레 나온다. 그 또한 ‘혁명’이리라.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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