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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에는 ‘외로움부’가 있다

2018년 외로움부 장관직 신설하고 고독에 범정부적 대책 마련에 나서는 영국
등록 2021-10-30 06:48 수정 2021-11-03 23:31
영국 브리스틀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임시 영안실이 설치됐다. 2020년 4월14일 영안실 모습. 영국에선 혼자 사는 노령층 중 코로나19에 감염돼 고독사를 하는 일이 속속 일어났다. AP 연합뉴스

영국 브리스틀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임시 영안실이 설치됐다. 2020년 4월14일 영안실 모습. 영국에선 혼자 사는 노령층 중 코로나19에 감염돼 고독사를 하는 일이 속속 일어났다. AP 연합뉴스

외로움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많은 국가가 이를 공공보건의 중요한 의제로 다루면서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영국은 범정부적으로 고독과 맞서는 최일선에 있는 국가임이 분명해 보인다.

취약계층의 외로움 더욱 심각

영국이 고독을 얼마나 중요한 의제로 다루느냐는 2018년 1월 설립된 ‘외로움부’(Ministry of Lonelines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사 메이 보수당 정부가 신설한 이 부처는 우울증, 고독, 분노 같은 마음의 질병을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이슈로 인식하겠다는 의지의 표상이다. 이는 곧 개인의 고독과 고립 문제를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해결해가겠다는 것이다.

외로움부 설립에는 노동당 국회의원이던 조 콕스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다. 평소 소외계층을 위한 법률안 마련에 힘쓰면서 ‘외로움 협회’까지 만든 콕스 전 의원은, 2016년 지역구민들과 면담한 뒤 수차례 칼에 찔리는 테러로 희생됐다. 그의 사후 영국은 범정부적 차원에서 콕스위원회를 설립하고 13개 시민단체와 함께 영국 사회의 고독과 사회적 고립을 조사했는데, 이것은 콕스 전 의원의 유지를 이어가는 활동이었다.

콕스위원회는 2017년 말 생애주기에 따른 사회적 고독을 다룬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 보고서’ 발표를 시작으로, 2018년 10월 ‘연결된 사회를 위한 전략’이라는 제목의 범정부 종합계획을 발표한다. 이러한 발표를 기반으로 영국 정부는 2018년 사회적 고독을 담당하는 외로움부 장관직을 신설했으며 차관급에 해당하는 자살예방담당관직도 만들었다.

고독과 관련해 사회적 관심이 꾸준했던 영국에서 50대 이상의 고독 문제는 2002년 이후 매년 1천 명을 대상으로 하는 시계열 조사에 주요 문항으로 포함돼 자료를 축적해가고 있다. 2017년 발표된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 보고서’는 여기에 중년과 청년 인구 1천 명의 심층 인터뷰를 더해 새로운 조사를 했다. 이에 따르면 영국 인구의 약 14%에 해당하는 900만 명이 고독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고독을 경험하는 인구 가운데 3분의 2가량은 이를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취약계층이 겪는 외로움은 더욱 심했다. 심층 인터뷰에서 17~25살 청년층 가운데 거의 절반인 43%, 장애인의 50%,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 가운데 절반 이상(52%)이 ‘고립감을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360만 명에 이르는 노인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유일한 수단은 티브이(TV)라고 대답했다.

고립감과 외로움의 경험이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고통으로 쉽사리 전이되리라는 점은 자명하다. 앞의 보고서에 따르면 고독감을 느낀 사람 가운데 38%는 불면증에 시달린 경험이 있으며,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은 참기 힘들 정도로 외로움을 느낀 적이 있다. 또한 이민자 가운데 58%는 ‘고독이 새로운 사회에 정착하는 데 가장 큰 시련’이라고 응답했다.

흡연·비만 수준으로 건강에 영향

이러한 외로움은 흡연 또는 비만 같은 수준으로 개인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실제로 사망위험과 심혈관질환, 우울감, 인지능력 저하, 치매와도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 고독이 개인 수준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으며, 영국 전체로 따졌을 경우 매년 320억파운드(약 49조4천억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결과와 같다고 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만성적인 고령화 문제는 고독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20년 3~5월 런던에서만 고독사로 발견된 노인이 700명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를 전후로 실시한 조사(매달 국민 1만6천 명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조사)에 따르면 봉쇄령으로 개개인의 주관적 웰빙 지수가 훨씬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적인 외로움을 경험하는 이들이 애초에 기저질환이나 장애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 크고, 실제로 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더욱 취약하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만성적인 고령화 문제는 고독 문제 해결을 더욱 난망하게 하는 요인이다. 영국 통계청은, 외로움을 경험하는 50대 이상 인구가 2016~2017년 140만 명에서 2026년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독거 인구 비율이 각각 59%와 38%(2017년 기준)에 달하는 85살 이상, 75~84살 인구도 큰 폭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와 같은 흐름은 영국 사회가 외로움을 단순히 개인 차원의 감정적 문제를 넘어선 사회문제로 바라보게 된 배경이다. 영국 정부는 외로움이라는 문제에 적극 개입하면서, 여러 부처의 협업체계를 형성하고, 외로움을 측정·분류하는 기준을 제정하는 데 힘쓰고 있다. 종합대책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에 대처하는 가장 큰 방향은 개개인 사이의 사회관계망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히 생애주기에 따른 외로움을 포착해 고립의 위험이 극대화되는 취약계층을 포용하고 지지할 수 있는 지역사회 건설에 힘을 쏟는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종합대책은 변화하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통합적이고 연결된 사회관계망을 형성하는 일이 중앙정부 단일 차원에서는 불가능하고, 공공과 민간, 비영리 시민단체 같은 다양한 행위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영국보다 한국에서 시급한 문제

종합대책은 ‘보다 연결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행위자별 역할도 명시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외로움과 관련한 대책 마련에 책임지며 평가지표를 마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지방정부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계획을 마련한다.

이런 영국의 사회적 노력에 한국 정부는 주목해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인구구조와 사회상에 따른 개인의 고립과 외로움 문제는 어쩌면 영국보다 한국에 더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브리스틀(영국)=강상원 영국 브리스틀대학 정책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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