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오세훈의 속도전, 다시 위기 몰린 종묘

세계유산 지위 위협 경고에도 세운4구역 변경인가 강행… 시장직 상실 위기 속 ‘날치기 알박기’ 논란
등록 2026-06-26 09:31 수정 2026-06-30 08:55
서울 종로구 종묘 입구에서 바라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 채윤태 기자

서울 종로구 종묘 입구에서 바라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 채윤태 기자


오세훈의 서울시가 종로구 종묘 앞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세운4구역)에 고층 빌딩을 짓는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 사업이 진행되면 종묘의 세계문화유산 지위가 위협받는다는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오 시장이 ‘알박기’식으로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 시장은 ‘명태균 여론조사 대납 혐의’ 재판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의 구형을 받으면서 정치적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구청장 바뀌기 전 끝낸 ‘알박기 인가’

 

서울시의 ‘속도전’은 오 시장이 6·3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서울시로 돌아오자마자 진행됐다. 서울시는 선거를 치른 지 이틀 만인 2026년 6월5일 2차 건축물 안전영향평가 확정 심의를 열고 세운4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을 조건부 의결했다. 건축물 안전영향평가는 초고층 건물이나 연면적 10만㎡ 이상의 대형 건축물에 요구되는 심사로, 자치구의 인가 뒤 종전자산 감정평가와 분양신청 등이 진행된다. 6개월가량 뒤 관리처분인가를 받는 절차가 진행되면 착공에 들어간다.

2006년 시작된 세운4구역 사업은 이미 2018년 6월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고, 2020년 2월 관리처분계획인가까지 받아 2022년 착공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오 시장이 2022년 4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을 발표하면서 대대적인 변화가 생겼다. 서울시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일대의 용적률과 최고 높이를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는 결국 기존 계획을 뒤집고, 2025년 10월30일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 변경을 고시했다. 660%였던 용적률을 1008%까지 올리고, 건물 최고 높이를 71.8m에서 141.9m로 높인 것이다. 건물 층수는 20층에서 38층으로 올라갔다. 오 시장이 변경한 계획안에 따르면 세운4구역에 세워질 고층 빌딩이 세계문화유산 종묘의 경관을 가린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운4구역과 종묘 담장은 불과 약 173~199m 거리다.

서울시의 ‘날치기’ 의결 뒤, 공은 종로구로 넘어갔다. 그러나 종로구청의 상황은 복잡하다. 결정권이 넘어온 시점이 정권 교체기와 겹쳤기 때문이다. 6·3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낙선하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찬종 후보가 당선됐다. 유 당선자의 취임은 7월1일이다.

유 당선자는 취임 전인 6월 안에 세운4구역 사업인가를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담당 부서에 전달했다. 그는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며, 자신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 세운4구역 사업을 인가하면 담당 공무원에 대한 감사와 책임 추궁을 검토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그럼에도 정문헌 구청장은 6월18일 세운4구역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를 직접 기안해 결재했다. 그리고 6월19일 종로구보 게재를 통해 고시함으로써 인가안은 법적 효력을 갖추게 됐다. 인가와 고시가 강행되는 과정에서 구청 직원들이 양쪽의 압박 사이에 끼였다. 종로구는 정문헌 구청장의 인가 결재 직후 고시를 주저한 직원들에 대한 경위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2026년 6월19일 결재한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 고시’.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2026년 6월19일 결재한 ‘세운4구역 재개발사업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 고시’.


38층 빌딩에 가려질 세계유산

 

핵심은 중요 절차인 관리처분계획변경인가 권한이 종로구청에 있다는 점이다. 유찬종 당선자가 구청장에 취임한 뒤 이 단계에서 서울시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지만, 그 경우 서울시와 종로구 간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

가장 큰 변수는 국가유산청이다. 유산청은 서울시의 계획 변경안대로 세운4구역의 최고 높이를 1.5배가량 높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취소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기존 계획안인 최고 높이 71.8m(청계천 방향)는 유산청의 전신인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20년 가까이 논의하며 절충한 합의안인데, 오 시장이 이를 파기했다고 비판한다.

유산청은 세운4구역의 높이 제한을 두 배 가까이 높인 오 시장의 계획이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훼손할 것으로 본다. 종묘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고층 건물로 인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유산청은 “세계유산 종묘의 OUV 가운데 진정성(integrity) 부분에서 완충구역 너머에 도시화로 인한 고층 건물 건설이 있을 경우, 종묘의 조망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명시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995년 종묘의 세계유산 등재 때부터 “종묘 내 조망선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없도록 인근 지역에 고층 건물이 건축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유산청은 2026년 5월6일 세운4구역 재개발이 종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지 세계유산영향평가(HIA)를 받은 뒤 사업시행인가 절차를 진행하라며 서울시·종로구·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에 ‘세계유산 종묘와 그 역사문화환경 보호에 필요한 조치 이행 명령' 공문을 보냈다. SH에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그에 따라 사업시행변경계획을 보완·조정할 것, 서울시와 종로구에는 세계유산평가 절차가 완료된 뒤 사업시행계획변경인가 절차를 진행할 것을 각각 명령했다.

 

유네스코까지 간 종묘 개발 논란

 

7월19일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도 종묘 앞 재개발 문제가 공식 안건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2026년 3월 서울시에 세 번째 권고 서한을 보내 세운4구역의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권고하며 현장 실사단을 파견할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종로구의 인가 고시로 행정 효력이 발생하자, 유산청은 이 고시 취소 절차 준비에 착수했다. 유산청은 지방자치법 제188조에 근거한 후속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이 조항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처리가 법령을 위반하거나 공익을 현저히 해친다고 판단될 경우 주무부 장관 등이 시정을 명하고, 필요한 경우 취소 또는 정지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반면 세운4구역 시행자인 SH는 유산청의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 명령이 부당하다며 이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강 대 강 대치 속에 서울시는 입장을 바꿔 세계유산영향평가 수용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종묘 경계로부터 180m가량 떨어져 있어 시 조례상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기준인 100m 이내에 해당하지 않아 영향평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종묘 경관 훼손 논란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사업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서울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유산영향평가를 받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산청과 서울시, 종로구, 사업주체인 주민 등이 평가 범위와 방식, 사업계획 조정 방향 등을 협의하고 그 결과를 유네스코에 알린다는 계획이다. 유산청도 “유산영향평가에 참여하면 1년 이내 절차가 끝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오 시장은 6월24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에 참석해 전날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조찬을 함께 했다고 밝히며 “세운지구 종묘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 모색 자리였고 상당히 건설적인 대화가 오갔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선거 전에도 세 차례 유산청장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2026년 6월25일 서울 종로구 종묘 앞에서 ‘종묘 앞 초고층 개발사업인가 고시 철회 촉구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채윤태 기자

2026년 6월25일 서울 종로구 종묘 앞에서 ‘종묘 앞 초고층 개발사업인가 고시 철회 촉구 공동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채윤태 기자


팔겠다던 땅, 커지는 책임론

 

앞서 한겨레21은 2025년 11월24일 세운4구역의 토지 등 소유자 지분 30%가량을 보유한 한호건설그룹(한호·현 디블록그룹)이 용적률 상향에 따라 천문학적인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는 특혜 논란을 보도했다. 언론과 정치권,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은 한호는 2025년 12월1일 자신들이 보유한 모든 세운4구역 토지와 건물을 SH에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호는 입장문에서 “세운4구역의 시행사인 SH에 한호건설 보유 토지를 매수하여줄 것을 공문으로 정식 요청했다. SH를 통한 매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일반에 매각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매각 이유로는 “세운4구역 개발이 정상적으로 추진돼도 개발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호가 계속 4구역 토지를 보유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야기할 것을 우려해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7개월이 지난 2026년 6월25일 현재까지도 매각은커녕 관련 절차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SH는 “SH 담당 부서인 세운정비부가 검토 중”이라는 답변만 했다.

유찬종 종로구청장 당선자는 한겨레21에 “7월1일 취임하면 조사해서 정문헌 구청장이 ‘셀프 기안’을 한 것이 직권남용인지 검토해서 형사 조처할 예정”이라며 “행정의 난맥상이 보이지만, 유산청이 서울시와 현재 대화를 진행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부드럽게 협의안을 찾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전현희 민주당 의원 등은 6월25일 종묘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개발인가 고시는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위법·기습 행정의 전형”이라며 “전임 종로구청장은 임기 종료와 지방선거 직후라는 틈을 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대와 공익감사 청구를 외면한 채 변경인가를 기습 처리하는 ‘날치기 알박기’식 폭거를 감행했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이어 “오 시장과 서울시의 무분별한 개발 강행으로 인해 대한민국 최초의 세계유산인 종묘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거나 끝내 세계유산 자격마저 취소된다면, 이는 세계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씻을 수 없는 국가적 망신”이라고 강조했다. 전 의원은 “7월 부산에서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린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종묘가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치욕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