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_편집자주
지난해 마지막 날, 중국 보건 당국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발병 사례를 처음 공식 보고했다.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변종 바이러스는 동아시아를 거쳐 이란 등 중동으로 급속히 번졌고, 2월 말부터는 유럽 전역과 미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최근엔 남미 브라질에서 바이러스가 맹렬한 기세로 퍼지고 있다.
첫 발생에서 꼬박 다섯 달을 넘겼지만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는 대다수 나라에서 국가 방역의 치명적 결함을 들춰 보였다. 국제사회의 공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국에선 보리스 존슨 총리가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치료를 받는 등 여러 나라에서 정부와 내각의 최고위급 관리들의 감염도 잇달았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고 규정했다. 앞으로 한동안 인류는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야 할 것이란 음울한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전세계 보건의료 시스템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지정학적 질서까지 뒤흔들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과 대결이 더 가파르게 위험수위로 치닫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양대 강국이란 뜻에서 흔히 ‘G2’라 하는 두 나라의 견제와 힘겨루기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그러나 2016년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뒤 그 양상이 훨씬 노골적이고 심각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기존 국제안보와 협력 체제를 뒤집어놓았다. 옛소련 붕괴 뒤 최대 적수가 된 중국과 노골적으로 대립할 뿐 아니라, 전통적 동맹인 서유럽 국가들과도 방위비 분담 규모와 무역수지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대서양 양안 동맹의 핵심이자 군사적 토대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해서도 냉소적 태도로 일관했다. 참다못한 유럽연합(EU)이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유럽 독자군 창설을 추진했을 정도다. 그런 한편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세기 내내 숙적이던 러시아와는 이상한 밀월관계를 유지하다 탄핵 위기까지 몰리기도 했다.
코로나19 앞에서 무기력했던 G2
그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은 자신이 궁지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정치적 성과를 쌓을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중국이 주변국들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는 건 외부의 적과 군사적 긴장을 높일 뿐 아니라 ‘자유세계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다. 중국과의 교역수지 적자를 이유로 무역전쟁을 벌이는 것도 재임 중 경제 호황을 최대 성과로 내세우는 트럼프로선 손해 볼 게 전혀 없다. 5월15일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코로나19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결별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진단했다. 미국과 중국은 1970년대에 ‘닉슨 독트린’으로 냉전을 청산한 뒤 줄곧 가까워지며 40년간 협력을 확대했지만, 오늘날 미국 정책 설계자들은 중국과 경제적·지정학적 대결에 몰두한다고 해석했다. 이런 전환을 ‘대결별’(The Great Decoupling)이라고 규정했다.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은 커플링(동조화)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개별 국가의 정책이 세계 흐름과 달리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말한다.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자 더욱 ‘중국 때리기’에 열을 올린다. 이런 행보는 올해 12월 미국 대선과도 관련이 깊다. 재선을 노리는 그에게 코로나19 대응의 실패는 치명적 악재로 떠올랐는데, 중국을 외부의 적으로 삼아 지지층을 결집하고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 자신을 비롯해 백악관의 최고위급 관리들이 끊임없이 코로나19 대유행의 중국 책임론을 따지며 거칠게 비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양쪽 모두 이익을 얻는 ‘윈-윈’(win-win)이기보다 모두 손해를 보는 ‘루즈-루즈’(lose-lose) 게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언젠가부터 미국과 중국은 ‘G2’로 묶여 불리기 시작했다. 국제사회의 양대 강국이란 얘기다. 경제 규모와 군사력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에서 두 나라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했다. 코로나19 대유행을 계기로 G2 시대가 ‘G0(제로)’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인류 공동의 문제에 직면해 책임 있게 국제사회를 이끌어갈 지도력을 갖춘 국가가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미국과 중국의 국제적 위신은 한없이 추락했다. 중국은 야생동물이 숙주인 코로나19의 발원지로 알려진데다 발생 초기 몇 달간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잔뜩 몸을 움츠려야 했다. 4월17일 독일의 최다 부수 일간지 <빌트>는 ‘친애하는 시진핑 주석에게’라는 제목의 공개편지를 실어 “코로나19는 당신의 정치적 멸망을 의미할 것”이라는 악담을 쏟아내기도 했다.
인류가 맞서 싸워야 할 상대는 바이러스
다섯 달이 지난 지금, 사정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중국은 3월1일 누적 확진자가 3만 명을 넘어섰으나 이후 지금까지 석 달 연속 본토 내 신규 확진자가 한 자릿수 수준을 유지하며 확연한 안정세로 돌아섰다. 반면 미국은 3월 하순부터 확진자가 급증해 지금까지 줄곧 하루 평균 2만 명 안팎의 신규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5월28일 기준, 전세계 누적 확진자는 57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중 미국이 약 175만 명으로 전체의 30%다. 유럽의 누적 확진자 195만 명을 포함하면, 근대 인류 문명의 표본이자 규범적 가치의 기준을 자임해온 ‘서구’ 사회가 65%를 차지한다. 사망자 비율은 더 참담하다. 약 36만 명의 전체 사망자 중 미국과 유럽에서만 약 27만 명(75%)이 숨졌다.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누구도 승자가 없을 뿐 아니라, 인류가 맞서야 할 진짜 상대는 바이러스이지 외지인 또는 다른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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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_G제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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