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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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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한류 소녀, 리리입니다

“언젠가 가을에 꼭 한국에 갈 거예요, 빨간 낙엽이라는 걸 진짜 보고 싶어요,
그때까지 애인이 생겨 남산타워에 가고 싶어요”
등록 2015-03-21 16:35 수정 2020-05-03 04:27

안녕하세요. 저는 19살 인도네시아 여자 리리라고 해요. 저는 서자카르타의 보종에서 태어나 18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쇼핑몰 푸드코트 한식당에 캐셔로 들어갔어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오빠, 아저씨. 저는 한국말을 곧잘 합니다. 도 발음할 수 있어요. 한국인 사장님은 제가 아저씨라고 부르면 오빠가 맞는 말이라고 하지만 저는 속지 않죠. 자카르타 사람 누구보다 한국 드라마와 노래를 많이 보고 들었으니까요.
13살 때 를 보았어요. 한국 드라마는 그때가 처음이었죠. 거기서 이민호씨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어요. 그렇게 잘생기고, 키 크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는 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계산대 밑에 이민호씨의 사진을 붙여놓았죠. 누군가가(아마도 사장님) 민호씨 얼굴에 콧수염을 그려서 울 뻔한 적도 있어요. 사장님이 주방에 있을 때 가끔 손님들에게 이민호 닮은 ‘오랑 아슬리 코레아’(원조 한국 사람)가 있다고 농담하는데, 주방 안을 엿보다가 실망하는 손님들도 재밌고 민망해하는 사장님도 재밌어요. 어쨌든 민호씨를 알게 된 뒤부터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았어요.

한식당 캐셔로 일하는 ‘한류 소녀’ 리리. 유현산

한식당 캐셔로 일하는 ‘한류 소녀’ 리리. 유현산

아이돌 그룹 중에선 슈퍼주니어, 그중에서도 규현씨를 가장 좋아해요. 고등학교 입학할 때쯤 TV에서 규현씨를 처음 봤는데,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죠. 잘생기고 노래 잘하고 뭔가 똑똑해 보여요. 저는 푸드코트에서 한국 노래를 틀어줄 때마다 사장님한테 가사를 해석해달라고 졸라요. 사장님이 이상한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해주긴 하지만, 그게 진짜 맞는지는 믿을 수 없어요.

지난해 가수 이루씨가 쇼핑몰에 왔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 가수죠. 그때 저는 감기몸살에 걸려서 죽을 것 같았지만 이루씨를 보려고 출근했어요. 근무시간에 경비아저씨 몰래 식당을 빠져나가 이루씨가 노래 부르는 로비로 달려갔어요. 한국 가수를 실물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라 눈물이 핑 돌았죠. 눈치 없는 사장님은 이루씨 대신 이루씨 아버지(태진아) 사인을 받아와서 선물이라고 줬어요. 한국에서는 이루씨보다 아버지가 더 유명하다면서요.

5월에는 슈퍼주니어가 자카르타에 옵니다. 드디어 규현씨를 직접 볼 기회가 생긴 거죠. 티켓값이 70만루피아(약 7만원)나 하지만 비상금을 털어서 사고 말 거예요. 이제 돈을 버니까 살 수 있어요. 그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휴가를 낼 거예요.

TV에서 본 한국 사람들은 다 친절하고 로맨틱해요. 무엇보다 스타일이 좋아요. 인도네시아 사람들보다 훨씬 옷을 잘 입고 매너가 좋아 보여요. 물론 사장님 빼고요. 사장님은 한국 사람들이 힘들게 살고 인도네시아 사람들보다 화를 잘 낸다고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한국의 가을을 좋아해요. 바람이 불면 빨갛고 노란 나뭇잎들이 파란 하늘에 비처럼 날리는 모습을 TV에서 봤어요. 감동적이었어요. 하얀 눈도 보고 싶지만 빨간 낙엽이라는 걸 진짜 보고 싶어요. 언젠가 가을에 꼭 한국에 갈 거예요. 그때까지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애인과 가장 먼저 남산타워에 가고 싶어요. 정말 로맨틱한 장소인 것 같아요. 그다음엔 SM엔터테인먼트 건물에 갈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이 거기 다 모여 있겠죠.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에 오고, 더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에 갔으면 좋겠어요. 사장님은 자원 많고 사람 많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이 많은 걸 얻어가니까 한국도 인도네시아에 더 잘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인도네시아도 한국에 더 친절해져야죠. 언젠가 낙엽이 비처럼 떨어지는 남산에서 여러분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자카르타(인도네시아)=유현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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