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기 싫어. 일찍 일어나야 하잖아!” 딸이 투정이다. 그래도 어쩌랴, 개학이다. 12월5일 이후 석 달 만이다. 밤 12시에 자고 오전 11시에 일어나던 방학은 끝이다.
3월, 칠레는 난리다. 다들 “정신없다”며 다닌다. 여름방학과 1~2월 휴가철이 끝나고 다시 일상이다. 언론은 3월 첫 월요일을 ‘슈퍼 월요일’이라 부른다. 인구 700만 명이 몰려 살지만 주말같이 한가하던 2월 산티아고 거리는 3월부터 딴판이다. 비좁은 거리는 교통체증으로 다시 숨이 막힌다. 버스 운행을 2월보다 22% 늘렸다는데, 버스 안은 터져나간다. 자동차 운행 허가를 접수받는 임시 창구에는 줄이 늘어섰다. 3월에만 보는 풍경이다. 차량의 70%가 3월에 이 허가를 받는단다. 운행 허가를 받기 위한 차량 검사도 몰려 6시간 넘게 줄을 선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3월이 닥치기 직전부터 정신이 없다. 1년 내내 쓸 학용품을 보통 한꺼번에 제출하는 탓이다. 파란색 커버를 씌운 80장짜리 수학용 공책, 22음계 실로폰, 인형 눈 한 봉지….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딸의 준비물이 77가지다. 올해는 3년 만에 아내가 초등생 엄마 노릇을 해냈다. 첫해는 ‘반짝이가 붙은 가는 철사 한 묶음’을 찾아헤매는 남편을 졸졸 따라만 다니더니, “올해는 내가 이틀 만에 끝냈어!”라며 신났다.
3월에는 결국 돈 들어가는 데가 많다. 일간 의 최근 보도를 보면, 보통 월 74만페소(약 132만원)를 쓰는 중산층 가정이 3월에는 43%가 늘어난 약 100만페소를 쓴다. 자녀가 2명이면 학용품에 평균 11만3천페소, 교복과 구두 등에 11만7천페소가 든단다. 그래서 저소득층에 ‘3월 보조금’을 나눠준다. 올해 금액은 4만1236페소다.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이 지난해 취임 직후 법률로 만들었다. 170만 가구에 준다는데, 나도 받고 싶다.
그래도 여름은 좋았다. 아이들은 방학 3개월 내내 논다. 어른들도 특히 2월에는 온통 휴가다. 2~3주를 많이 쉰다. 아파트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 에두아르도가 한참 안 보이더니 돌아왔다. 비행기로 10시간 넘게 걸리는 멕시코 휴양도시 칸쿤을 가족끼리 열흘간 갔다왔단다. 지난해는 쿠바로 놀러갔다. 부러워했더니,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몇 해 안 남았어요. 그때까지 즐겨야죠” 한다. 2평 남짓한 복사가게의 자넷 아주머니는 남쪽으로 휴가를 다녀왔다. 8박9일 여행에 한국 돈 200만원을 썼다. 화산 앞 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진짜 좋다고 꼭 가보란다.
우리 가족도 여름휴가를 즐겼다. 딸은 친구 룰루를 따라 4박5일을 바닷가에서 보냈다. 산티아고의 먹고살 만한 사람들처럼, 수영장이 딸린 바닷가 아파트형 별장에서 놀았다. 유학생 딸이 친구 집안 덕을 톡톡히 봤다. 딸은 난생처음 우리와 떨어져 5일, 그것도 외국인 가족과 보냈다. 칠레살이 3년, 이런 가족도 사귀고 딸도 부쩍 컸지만 조마조마했다. 딸은 “한국말을 안 했더니 이상해”라며 새카맣게 타서 돌아왔다. 우리 가족은 구청에서 운영하는 1박2일 포도밭 투어와 당일치기 바닷가 투어로 며칠 산티아고를 벗어났다.
휴가철은 2월 마지막 주, 해안도시 비냐델마르의 축제로 화려하게 끝났다. 그 주말,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자동차 행렬이 이어졌다. 슬슬 가을이다. 우편물을 돌리던 관리실 직원은 “올 한 해가 이제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휴가 자랑을 듣다가 돈 주는 것도 잊었더니, 자넷 아줌마는 복사비 300원을 주고 가란다. “많이 썼으니 이제 모아야 돼”라며. 에두아르도는 쉬던 일요일에도 택시 손님을 기다린다. 그렇게 2월이 채 끝나기 전, 같은 반 학부모 우고한테서 연락이 왔다. 6월 겨울방학에 맞춰 좋은 곳을 예약했는데 같이 놀러가자고. 허허….
산티아고(칠레)=김순배 유학생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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