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외곽 산드라 집에 들어서니, 뒷마당에는 식탁보가 덮인 식탁 5개에 접시와 포크, 와인잔이 벌써 놓여 있다. 산드라의 형부 마르코가 고기를 구울 숯불을 피운다. 기름기와 먼지가 범벅된 석쇠는 비계로 쓱쓱 닦고 만다. “한국은 새해 첫날 뭐해요?”
10:00산드라 동생 파트리시아 가족이 도착했다. 무슨 장비를 잔뜩 가져온다. 대형 스피커와 빔프로젝터다. “춤춰야지! 한국은 춤 안 춰?”
“택시는 몇 시로 예약했어?” 산드라가 묻는다. “1시30분.” “1시30분? 아직 파티가 시작도 안 될 시간이야. 늦춰!” 예약하면서도 빠르다 싶었다. 새벽 2시30분으로 예약을 늦췄다. 배가 고프다. 나초를 치즈에 찍어 와인 안주로 먹는다.
11:00“고기 다 구워졌어?” 산드라 남편 아돌포가 묻는다. “거의 다 됐어.” 파트리시아가 샐러드에 올리브유를 쳐서 뒤적이고 차례로 고기 앞에 줄을 섰다. 어른 먼저, 애 먼저도 없다. 줄 서는 대로다. 쇠고기 한 덩이에 상추, 감자, 아보카도 샐러드…. “즐거운 한 해가 되기를.” 산드라의 건배 제안 뒤 와인을 들이켠다. “잡채라고 했나? 벌써 다 떨어졌어. 맛있었는데….” 다들 잘 먹어 다행이다. 파트리시아가 산드라의 딸 카밀라와 접시 설거지를 한다.
4, 3, 2, 1!!! “새해 축하해. 복 많이 받아!” 돌아가며 서로 꼭 껴안는다. 20명이 넘는다. 나도 아내와 딸을 먼저 껴안는다. “올해는 논문 끝내자!” 새해맞이로 포도 12알을 먹고 골목으로 몰려나왔다. 멀리 산 위에 퍼지는 불꽃놀이. 내 곁 아내의 어깨를 감싼다. 가면을 쓴 한 주민이 여행용 가방을 끌고 딸과 마을 골목을 돈다. 해외여행을 갔으면 하는 소망을 새해 첫날 저렇게 빈다. 저 아주머니는 부를 부른다는 금색 팬티도 특별히 입었을까?
12:20불꽃놀이가 끝났다. 샴페인에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을 섞어 폰체를 만든다. 와인과 폰체가 섞여 술기운이 오르는데, 한국에 유학 간 산드라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해 축하해!” “너도. 한국은 새해 됐지?” 할머니는 또 눈물을 글썽인다.
담벼락에 비친 뮤직비디오도, 음악도 빨라졌다. “좋잖아. 힘들고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지난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왔으니까. 춤추면서 파티 해야지.” 살사, 메렝게, 팝송…. 선곡 다툼까지 하다가 누군가 외쳤다. “쿠에카!” 일흔을 넘긴 산드라 아버지가 나섰다. 손수건 대신 휴지를 잡고 전통춤 쿠에카를 딸 그리고 아내와 춘다. 내가 아내를 떠밀어 내보냈다. “젊은 한국 여자랑 추시니까 입이 찢어지셨어!”
1:30큼지막한 50대 아줌마 엉덩이가 흔들거린다. 산드라다. 카밀라가 언니에게 보낼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딸 생각에 착잡하던 아돌포는 한쪽에서 존다. 파비올라 부부의 쿠에카를 우리 부부도 ‘그대로’ 따라 춘다. 수건 돌리다 발 구르고 빙빙 돌면 되는데… 안 된다.
새해맞이 파티에 친구 집으로 10년째 오는 곤살로 부부는 쉬지도 않고 춤을 춘다. 아저씨 막춤도 저런 게 없다. “Y~MCA, Y~MCA~.” 여든 살의 곤살로 장모까지 팔을 흔들다가 나랑 같이 돌리고, 돌리고….
2:30택시가 도착했다. “자, 우리 가요!!” 음악도 안 멈추고 다들 춤추면서 인사한다. 골목마다 네온사인 장식이 음악에 섞여 반짝인다. 파티는 언제 끝날까?
실컷 토했다. 웩~.
금연, 다이어트, 취업, 승진, 결혼, 내 집 장만, 성공…. 우리는 왜 새해 첫날부터 경건하게 꼭 결심해야 하는가?
산티아고(칠레)=김순배 유학생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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