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에서 식당 하면 좋은 점은 진상 손님이 없다는 거예요. 가끔 오는 진상 손님은… 거의 교민이죠.” 남자카르타 대형 한식당의 한국인 매니저가 말했다.
“한국인은 어떤 사소한 불편함도 참지 못해요. 처음 한국인들과 일했을 땐 많이 놀라고 무서웠어요.” 자카르타 식당 체인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한 화교가 말했다.
누군가 내게 서울이든 자카르타든 사람 상대하는 일이 뭐 그리 다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고 대답하겠다. 큰소리를 내면 미친 사람인 줄 안다는 인도네시아인들의 그 밑도 끝도 없는 느긋함을 나는 식당을 차린 뒤에야 알았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가스레인지가 고장났다. 하필이면 그때 이곳 최대 명절이자 식당들의 대목인 르바란 주간이 시작됐다. 휴대용 가스버너를 사서 버텼지만 그 화력으로는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바쁜 점심시간에는 불고기나 돌솥비빔밥 하나 먹자고 30분씩 기다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속도가 생명인 푸드코트인데 말이다.
그 일주일 동안 손님들의 컴플레인이 몇 건이나 있었을까. 단 한 팀이 정색하고 화를 냈다. 한국 교민 가족이었다. 그 외에 더러 음식이 언제 나오냐고 묻는 손님이 있었지만, 대부분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다. 안달이 난 건 나뿐이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하염없이 수다를 떠는 손님들을 보며 나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그건 안도감이라기보다는 기이함에 가까웠다. 이 사람들의 정체는 뭘까.
우리 가게에서는 카드를 받지 않는다. 푸드코트라 주문할 때 현찰로 음식값을 지불한다. 은행이 문을 열지 않는 주말에, 하필이면 한 가족 일곱 명이 주문을 잔뜩 했을 때 잔돈이 똑 떨어졌다. 나중에 주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이 가게 저 가게, 아래층 슈퍼마켓까지 뛰어다녔지만 손님들이 밥을 다 먹고 10여 분이 흐를 때까지 잔돈을 구하지 못했다.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잔돈을 달라고 세 번째로 카운터에 오자, 나는 사과를 하며 큰돈을 그냥 건넸다. 그 남자는 손을 내젓더니 자리로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의 지갑을 털어 다시 셈을 치렀다. 나는 동전을 긁어모으며 웃고 떠드는 가족을 멍하니 보았다.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 사람들의 정체는 뭘까.
다른 쇼핑몰에서 밥을 먹을 때 정전이 있었다. 아마 그날따라 쇼핑몰의 전력 사용량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두 번째 불이 나가자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렸다. 고함 소리가 아니라 웃음소리였다. 밥이나 국물이 코로 들어갔는지 사람들이 깔깔거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불이 나가자 어떤 사람은 환호성을 질렀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불렀다. 잔치라도 벌어진 것 같았다. 나는 나이트클럽처럼 불이 깜박이는 식당에서 또 의문을 느꼈다. 이 사람들의 정체는 뭘까.
자카르타에 온 지 1년 만에 한국에 돌아가서 동서와 함께 치킨집에 갔다. 금요일 밤이라 가게가 북적였다. 오랜만에 만난 동서와 조금 시끄럽게 떠들었고 가게 밖의 테라스에 앉아서 담배도 피웠다. 갑자기 손님들이 내게 건네는 신경질적인 눈빛이 느껴졌다. 망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자카르타 식당 분위기에 1년 동안 젖어 있던 내게는, 하여간 뭔가 어색했다. 종업원을 대하는 거친 태도, 연신 무언가를 투덜대는 찌푸린 표정들, 이런 것들도 불편했다. 물론 나는 이 ‘한국식’에 하루 만에 적응했고 다음날부터는 아무런 불편함도 못 느꼈다. 하지만 그때의 서늘한 감정은 잊을 수 없다. 나는 처음으로 내 조국의 사람들에게 의문을 느꼈다. 대체 이 사람들의 정체는 뭘까.
자카르타(인도네시아)=유현산 소설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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