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부터 천둥과 비가 쏟아졌다. 새벽녘까지 빗줄기는 조금도 가늘어지지 않았고 그 날카롭던 아잔(이슬람 사원의 기도 소리)마저 눅눅해졌다.
아침에 나는 창밖으로 물에 잠긴 아파트 앞의 집과 골목을 보았다. 지금 자카르타는 우기의 절정을 지나고 있다. 도시 인프라가 엉망인 자카르타는 하룻밤의 폭우로도 저지대의 수많은 집들이 물에 잠긴다. 이제 오후가 되면 저 흙탕물에 잠긴 골목에서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 것이다. 자카르타 아이들은 저렇게 더러운 물에서 놀아도 아프지 않냐고 현지인 친구에게 물어본 적 있다. “가끔은 아파. 배도 아프고 열도 나고. 하지만 자카르타엔 놀 데가 별로 없잖아.” 친구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침밥을 먹고 나는 식당 직원들의 출근을 걱정했다. 지금쯤 그들의 집 현관에도 물이 찰랑거릴 것이다. 자카르타 사람들은 우기에 비가 쏟아지면 물이 빠질 때까지 집에 갇혀 지내는데, 하루가 될지 일주일이 될지 하늘만이 안다. 다행히 요리사 한 명만 출근할 수 없다고 연락했다.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내일은 출근할 거예요.” 만삭의 아내를 둔 그는 이렇게 씩씩하게 말했지만, 내일의 출근은 역시 하늘만이 결정할 것이다.
나는 침수된 도로를 돌아가며 식당으로 출근했다. 쇼핑몰이 텅 비어 고요했다. 오후에 비가 그친 틈을 타 가까운 시장으로 달걀을 사러 갔는데, 시장문을 나서자 폭우가 다시 내렸다. 행인에게 우산을 씌워주고 돈을 받는 아이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우산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아무 데서나 비를 피하고, 비가 그쳐야 움직인다. 굳이 빗속을 걸어야 하는 행인들을 위해 우산을 씌워주는 맨발의 아이들이 곳곳에 대기하고 있다. 나는 한 아이에게 얼마냐고 물었다. “트르스라(알아서 주세요).” 내가 다시 캐묻자 가까운 곳은 2천루피(약 200원), 내가 가야 할 쇼핑몰까지는 5천루피(약 500원)를 불렀다. 나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차는 지금 아내가 사용하고 있다. 5천루피를 아끼기 위해 쇼핑몰 슈퍼마켓 대신 가격이 싼 시장까지 걸어왔는데, 그 5천루피를 아이에게 줄 것인가 아니면 비를 맞고 걸어갈 것인가.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이는 낮 12시에 학교를 마치자마자 우산을 들고 이곳으로 왔으며 저녁까지 여기서 일하면 하루에 5만루피(약 5천원)까지 벌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주었다.
식당은 하루 종일 한산했다. 집과 골목이 물에 잠겨 퇴근할 때 들어갈 수 없을지 모른다고 어린 캐셔가 걱정했다. 그를 일찍 퇴근시키고 나는 쇼핑몰을 나섰다. 모든 고가도로와 굴다리 밑에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비를 피하고 있었다. 자카르타는 오토바이의 천국이자 지옥이다. 비 오는 날, 이 오토바이들은 빗줄기가 가늘어질 때 움직이고 굵어지면 다시 굴다리 속으로 들어간다.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굴다리 위로, 빗줄기를 뚫고 피어올랐다.
밤에 바람이 불었다. 우기는 추위와 감기의 계절이다. 기껏해야 24℃인데 오리털 파카를 입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벌써 일교차를 느끼고 감기에 자주 걸린다. 더운 나라의 추위가 무엇인지 이제 좀 알 것 같다. 비 오는 날, 가뜩이나 느린 자카르타는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다. 이런 날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파전과 막걸리를 먹어야 하지만 아뿔싸, 자카르타엔 온돌방도 막걸리를 파는 가게도 없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유현산 소설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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