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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삽니다 군용지 팝니다

오키나와 부동산 시장에서 중요한 재테크 수단의 하나가 된 군용지, 철거 뒤 재개발에서 얻는 수익 커지면서 지난해 지사선거에서는 기지 철거 주장하는 정치인 압승하는 ‘대사건’ 벌어져
등록 2015-01-29 15:08 수정 2020-05-03 04:27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를 가면 ‘야마토’(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치나’(오키나와 말로 오키나와를 뜻함)만의 특징을 많이 엿볼 수 있다. 아열대에 속해 있으니 한겨울에도 영상 10℃ 아래로 내려가는 법이 거의 없고 곳곳에는 사탕수수밭이 널려 있다. 쌀농사는 거의 없다. 야마토에선 찾아볼 수 없는 ‘하브’라 불리는 독성 강한 뱀이 있는 곳도 오키나와다. 오키나와 소바는 소바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 밀가루로 만들었다. 이런저런 볶음 음식에는 거개가 다소 쓴맛이 나는 고야(여주)와 포크햄이 섞여 있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은 기린이나 아사히가 아니라 오키나와에서 만드는 오리온맥주이거나 아와모리라 불리는 증류주다. 무덤은 거북이 등딱지를 닮은 귀갑묘(龜甲墓)다. 야마토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신사도 오키나와에선 드물다. 지하철도 없고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는 모노레일이 나하 시내의 짧은 거리만을 오간다.

미군기지 임대료는 일본 정부가 지불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임대수입이 보장된다. 기지 철거가 쟁점으로 등장한 후텐마 기지는 철거 계획이 전혀 없는 가데나 기지보다 싸게 거래된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미군기지 임대료는 일본 정부가 지불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임대수입이 보장된다. 기지 철거가 쟁점으로 등장한 후텐마 기지는 철거 계획이 전혀 없는 가데나 기지보다 싸게 거래된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야마토에서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도 이곳에선 전혀 힘을 못 쓴다. 와 라는 진보적 지역신문이 굳건하다. 극우파 신문 는 구하기조차 힘들다. 지난해 총선에서 아베 신조가 이끄는 자민당이 야마토에서는 압승을 거뒀으나 이곳 오키나와에서는 모두 졌다. 야마토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블루실 아이스크림이나 햄버거 등의 양식을 판매하는 A&W 식당도 오키나와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모두 미군기지와 관련 있다. 오키나와에서 발달한 유리공예도 미군이 버린 콜라병에서 유래했고, 오키나와 사람들이 즐겨 먹는 포크햄도 미군의 영향이다. ‘오키나와스러움’은 야마토나 미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는 찾기 어렵고 아베가 모조리 진 곳

일본 영토에 주둔하는 미군기지의 70% 이상이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 전체 면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0.6%에 불과하다. 오키나와현 전체 면적에서 미군기지는 약 10%다. 오키나와 본섬에 한하면 약 20%가 미군기지다. 오키나와 본섬의 남북을 관통하는 국토 58번 선을 달리다보면 좌우로 길게 끝없이 늘어서 있는 미군기지가 사람들을 압도한다. 후텐마 기지 철거와 헤노코 신기지 및 다카에 헬기장 건설에 반대하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싸움이 생존을 위한 싸움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오키나와를 갈 때마다 반드시 사보는 나 를 읽다보면 기묘한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군용지를 삽니다!’라는 단신 광고가 신문의 하단을 뒤덮고 있는 것이다. 군용지를 거래하다니!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하다가 이런저런 자료를 읽다보니 형체가 잡히기 시작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미군이 점유한 미군기지 토지가 재테크 수단으로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것이다.

오키나와현 미군기지 중 국유지는 35%에 불과하고 사유지가 33%, 오키나와현의 지자체 소유가 약 32%다. 야마토 미군기지의 거의 90%가 국유지인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후텐마 기지는 90%가 사유지이고 아시아 최대의 전투비행장이라는 가데나 기지도 사유지가 약 80%를 차지한다. 토지 사용자가 토지 소유자와 다르면, 사용자는 소유자의 동의하에 계약을 맺고 소유자(지주)에게 사용료(임차료)를 내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지금 미군이 사용하는 기지는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군은 지주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 토지를 무단 점령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은 적어도 1952년까지 토지 소유자에게 단 한 푼의 임차료도 내지 않았다.

임대료도 없이 수도세도 안 내고

1952년부터는 임차료를 내게 되었지만 임차료라고 해봤자 당시 콜라 한 병이나 담배 한 갑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였다. 오키나와 사람들이 들고일어났고 이를 미군은 ‘불도저와 총검’으로 진압하고 임차료를 일괄 지급해 사용 토지에 대한 영구적 권리를 확보하려 했다. 결국 1956년 싸움이 오키나와 전체로 번지자 미군은 1958년 기존 임차료를 2배로 인상했고 많은 지주들이 미군과 사용계약을 맺게 되었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귀’하자 미군의 안정적인 오키나와 주둔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본 정부는 임차료를 4배 이상 올렸고 그 전까지 계약을 거부하던 많은 지주들도 이에 응했다. 물론 이같은 미군과 일본 정부의 강온 회유책을 거부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1971년에는 토지사용 계약을 거부한 약 3천 명의 지주들이 중심이 되어 ‘권리와 재산을 지키는 군용지주회’(일명 반전지주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회원 수는 점차 줄어들어 1976년에는 약 500명, 1981년에는 약 200명, 그리고 2000년에는 약 100명으로 줄어들었다. 미군과 일본 정부의 회유책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런데 사용료를 내는 것은 기지 사용자인 미군이 아니다. 미군을 대신해서 지주에게 사용료(임차료)를 내는 것은 일본 정부다. 임차료를 포함한 미군 지원 예산을 일본에선 ‘오모이야리 예산’이라 부른다. ‘오모이야리’라는 말이 배려 혹은 선심이라는 뜻이니, 일본의 안전 보장을 책임지는 미군에 일본 정부 혹은 일본 국민이 배려와 감사의 차원에서 예산을 편성해 자금을 지원해준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예산은 미군이 사용하는 기지 임차료와 주택비용 및 광열비 지원 등으로 나뉘는데, 이 중 기지 임차료는 일-미 지원협정(SOFA)에 규정돼 있지만 후자는 협정상의 근거도 없다. 쉽게 말하자면, 미군은 임대료도 내지 않고 전기와 수도도 공짜로 마구 쓰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지주에게 지급하는 군용지 임차료 총액은 연간 약 900억엔이다. 지주는 약 3만3천 명이다.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의 임차료 수입은 적지 않지만 이런 대지주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개는 중소 지주로 적은 수입에 재산권 행사만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평당’으로 거래되지 않는
군용지주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어서 웬만하면 팔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팔자 주문만 내면 즉시 팔린다. 군용지를 산다는 단신 광고도 심심찮게 실린다. https://c2.staticflickr.com

군용지주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어서 웬만하면 팔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팔자 주문만 내면 즉시 팔린다. 군용지를 산다는 단신 광고도 심심찮게 실린다. https://c2.staticflickr.com

그런데 이런 군용지가 지금은 부동산 시장에서 중요한 재테크 수단의 하나로 거래되는 것이다. 왜일까? 군용지 매매를 알선하는 부동산 회사의 선전물은 군용지 구입의 이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가 안정성이다. 임차료가 정부 예산에서 지급되는데다 매년 반드시 일정 비율로 오르고 있으니 매우 안정적이고, 따라서 담보 가치도 매우 높다. 임차료는 해마다 정부와 지주들의 모임인 군용지주 연합회가 협의해 정하는데, 매년 3∼4%씩 인상돼왔지만 최근에는 1% 정도 올랐다. 1972년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이후, 일본 정부가 지주에게 내는 임차료가 감액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은행 등이 ‘군용지 론’이라는 이름으로 군용지 대출제도까지 운용할 정도다. 투자자는 적은 돈으로 은행 대출을 끼고 군용지를 구입한 다음, 매년 여름에 지급되는 임차료로 대출 원리금을 상환해나간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대체로 임차료 연간 인상률이 은행 대출금리를 웃돌고 있으니 ‘대박’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안정적 투자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군용지주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이어서 웬만하며 팔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팔자 주문만 내면 즉시 팔린다. 즉, 환금성이 매우 높다. 상속세나 재산세 등에서 절세 효과도 높다. 과세 대상이 되는 평가액이 낮기 때문이다.

군용지 매매가격은 연간 임차료에 해당 토지의 조건에 따라 결정된 배수를 곱해 결정된다. 즉, ‘평당 얼마’라는 일반적인 부동산 시장 거래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후텐마 기지로 사용되는 일정 필지의 연간 임차료가 95만엔이라면, 이 임차료에 약 25배를 곱한 2375엔이 판매가격이 된다. 배수는 기지의 조건과 정치적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일반적으로 기지 철거 가능성이 커질수록 배수가 낮아진다. 기지 철거가 쟁점으로 등장한 후텐마 기지는 철거 계획이 전혀 없는 가데나 기지보다 배수가 낮다. 즉, 기지가 철거되면 그때까지 받았던 안정적 임차료 수입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기지 철거 가능성이 커지면 매매가격이 낮아진다.

최근 들어 몇 가지 변화의 가능성이 점쳐진다. 하나는 땅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지주들로부터 상속받은 후손은 부모 세대에 비해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야마토로 이주한 경우에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상속 토지의 판매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적지 않다. 게다가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으면서 오키나와인이 아닌 사람들의 군용지 구입도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기지 철거나 이전의 정책 논의 과정에서 이들의 ‘여론’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기지 철거 이후 재개발에서 높은 수익이 예상될 때 철거가 예상되는 기지 군용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기지 철거 뒤 재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오키나와의 현청 소재지 나하의 북부에 조성된 신도심을 가보면, 도보로 약 20분 떨어진 옛 도심과 전혀 다른 모습에 당혹감을 느낀다. 넓디넓게 쭉 뻗은 도로와 초현대적인 대형 쇼핑센터에 세계적인 브랜드 가게들이 줄지어 서 있고 세련된 박물관과 공원이 조성돼 있다. 원래는 미군 주택 시설이 있던 곳으로 1987년에 반환됐다. 이곳은 이미 그 오키나와가 아니다. 오키나와 중부 차탄에 자리한 ‘아메리칸 빌리지’라는 테마파크도 그렇다. 여기는 원래 미군 비행장이 있던 곳으로 1981년 반환됐고, 해안 매립지와 연결해 1990년대 말에 공사를 시작해 2004년에 완성됐다. 미국 냄새를 풍기는 각종 가게에 하늘 높게 돌아가는 관람차가 끊임없이 관광객을 유혹하고 관광버스는 손님들을 쏟아낸다. 연간 관광객 수가 약 1천만 명에 이른다. 이곳도 이미 그 오키나와는 아니다.

기지 반대파를 지지한 관광업자·토건업자

지난해 지사 선거와 총선거에서 후텐마 기지 철거와 헤노코 기지 반대를 주장하는 정치인이 압승을 거두었다. 더 이상 미국과 야마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결정한다는 자기결정의 원리가 오키나와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대사건임이 분명하다. 전쟁과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와 공존을 선택한 오키나와 사람들의 선택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는 이론이 없다. 그런데 이 선거에서 관광업자와 토건업자가 적지 않게 기지 반대파를 지지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오키나와 경제가 더 이상 미군기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야마토의 보수적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경제는 미군기지가 철거되면 무너진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오키나와 재계는 기지에 의존해 먹고사는 것보다 기지 철거 뒤 재개발에서 얻는 개발 수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향후 군용지 거래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가능성은 이같은 흐름을 읽어내는 데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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