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한 호텔에서 (RBC)을 틀었더니 묘한 공익광고가 흘러나온다. 동네 야구의 한 장면이다. 사구를 얻은 타자가 1루까지 진루하는데 택시를 불러 타고 간다. 외야수가 공중볼을 쫓는데 오토바이를 탄다. 1루에 있던 주자가 2루를 훔치는데 ‘세그웨이’(Segway)에 올라탄다. 빵 터지게 만드는 재미있는 광고다. 그런데 “걷지 않는 우치난추, 비만율 일본 1위” “가끔은 걸읍시다! 우치난추!”라는 자막과 내레이션을 접하면 웃을 수만은 없다. ‘우치난추’는 오키나와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본인(야마톤추)과 구별해서 부르는 호칭이다. 운동을 너무 하지 않아서 비만 문제가 심각해진 오키나와의 현실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오키나와 건강 장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든 이 공익광고는 오키나와의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적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키나와 하면 장수의 마을로 알려져 있다. 1973년부터 2004년까지 32년 동안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가장 수명이 긴 곳이었다. 오키나와는 1995년에는 ‘세계장수지역선언’을 발표했고 오키나와 북쪽에 자리한 오기미손(大宜味村)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세계 최고의 장수지역으로 인정받았다. 국도 58호선에 면한 오기미손 입구에는 ‘장수 일본 제일’이라는 제목의 석비(1993년 건립)가 세워져 있다. 이 석비에는 “80살은 사라와라비(‘어린아이’라는 뜻의 오키나와말). 90살에 저승사자가 오면 100살까지 기다리라 하고 돌려보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장수의 마을로 알려진 오키나와가 비만율 전국 1위라니! 비만율이 높은데 어떻게 장수마을이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 동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2012년 후생성이 공표한 ‘국민건강 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성(20~69살)의 비만율(신체질량지수(BMI) 기준)이 가장 높은 지역은 오키나와로 일본 평균인 30.4%를 크게 웃도는 45.2%다. 성인 남성 둘 중에 한 명이 비만인 셈이다. 비만율이 높아지면 수명도 짧아진다. 실제로 오키나와의 평균수명은 2002년까지 현별 순위 1위였다가 2010년 현재 남성 기준 전국 30위(여성은 3위)로 떨어졌다. 특히 심각한 것은 연령별 순위다. 2010년 현재 남성 기준, 0살 유아의 평균 여명은 79.4년(전국 30위), 20살은 59.9년(27위), 40살은 40.8년(27위), 65살은 19.5년(2위), 75살은 12.4년(1위)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2010년 현재 0살 남성은 평균적으로 79.4살, 20살 남성은 79.9살, 40살은 80.8살, 65살은 84.5살, 75살은 87.4살까지 산다는 뜻이다. 젊을수록 수명이 짧아지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오키나와는 이미 장수마을이 아닐 뿐만 아니라 향후 개선의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들어오는 칼로리는 높은데 나가는 칼로리는 낮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역시 오키나와가 자동차 중심 사회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오키나와의 자동차 보급률은 일본 평균이니 반드시 일본의 여타 지역보다 자동차 보유 대수가 많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자동차를 대체하는 교통수단이 부족하니 당연히 자동차 의존율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오키나와 사람들의 운동량이 떨어진다. 오키나와에는 전철이 없다. 오키나와 현청 소재지인 나하에 모노레일 하나가 운영되고 있을 뿐이다. 운행 구간 13km에 겨우 두 차량에 불과한 규모인데다 2003년 개통돼 역사가 겨우 10년 남짓에 불과하니 그 효과는 미미하다. 여객수송 분담률의 일본 전국 평균은 철도가 25%, 자가용은 66%인데 오키나와는 철도가 1%에 불과하고 자가용 의존율은 무려 86%에 달한다. 즉, 일상생활에서 운동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교통 시스템인 셈이다.
외식비용 1.5배, 세계적 햄버거 가게 밀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역시 식생활의 변화다. 오키나와의 ‘전통’ 식재료는 고야(여주), 쑥, 씀바귀다. 특히 고야의 생산량은 일본에서 가장 많다. ‘고야 참푸르’라 불리는 볶음은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이같은 고섬유 식재료에 다시마와 두부가 오키나와 장수의 비밀이었다.
그런데 1945년부터 1972년까지 이어진 미군 점령과 지금도 계속되는 미군기지의 주둔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식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1963년 오키나와에 진출한 미국의 햄버거 식당 A&W는 오키나와에 27개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의 인구당 점포 수는 오키나와가 일본 전체에서 가장 많고 모스버그와 미스터도넛은 전국 3위, 맥도널드는 전국 8위다. 2012년 세대당 햄버거 외식비용도 전국 1위로 일본 평균의 1.5배에 달한다. 일본 전체 면적의 0.6%에 불과한 작은 섬 오키나와에 세계적인 햄버거 가게들이 밀집돼 있다. 출생률이 일본에서 가장 높으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햄버거 소비량이 많을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청소년기 때부터 햄버거에 길들여진 입맛은 오키나와 성인들의 식생활도 지배한다.
최근 오키나와의 식단을 지배하는 대표적 식재료는 바로 통조림 고기(luncheon meat)다. 일본에서 통조림 고기 소비량이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오키나와다. 오키나와 식당에서 제공되는 달걀 스크램블에도, 쓴맛이 특징인 ‘고야 참푸르’에도 거의 통조림 고기가 들어 있다. 심지어 채소볶음 요리를 주문했는데 채소볶음 한가운데 통조림 고기구이가 ‘서비스’로 자리를 잡고 있어 당혹감을 느낀 경우도 있다. 된장국에도 들어 있고 심지어 편의점에서 파는 주먹밥에도 들어 있다. 이 주먹밥은 ‘오니포’라 불리는데, ‘오니’는 ‘오니기리’(주먹밥), ‘포’는 ‘포크’(통조림 돼지고기)의 줄임말이다.
통조림 고기는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미국의 호멜(Hormel)사가 제조하는 스팸이 일반적이지만 오키나와에선 덴마크에서 만드는 ‘튤립’(Tulip)이 유명하다. ‘튤립’ 소비량은 영국·독일이 선두를 다투고 3위가 일본인데, 일본 소비량의 90% 이상이 오키나와에서 소비된다. 오키나와 1인당 소비량이 연간 12캔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는 것으로 보아 오키나와의 통조림 고기 소비량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튤립’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휴대용 전투식량이었으니, 오키나와의 식문화를 바꾼 것이 바로 전쟁이고 미군인 셈이다.
관광객이 들끓는 나하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국제거리에 가면, 여기저기에 스테이크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에선 술자리 뒤에 라면을 먹지만 오키나와에선 술자리 뒤에 스테이크를 먹는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오키나와의 스테이크 소비량이 많은 편이다. 역시 미군 주둔의 영향이다.
오키나와 하면 당연히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니 어패류 소비량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세대당 어패류 구입량은 일본 전국에서 가장 낮다. 전국 평균의 반도 안 된다. 어패류 소비량이 적은 데는 이유가 있다. 1609년 류큐왕국을 침공한 일본 본토의 사쓰마(현 가고시마현)가 사탕수수 모노컬처로 오키나와 농업을 재편하면서 어업과 어선 건조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키나와 음식에서 해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게다가 채소 섭취량은 일본 전국에서 여성이 44위, 남성은 45위로 꼴찌 수준이다. 인구당 술집 수는 일본에서 가장 많다. 실업률은 최악이고 이혼율은 가장 높다. 소득수준도 전국에서 가장 낮다. 채소는 먹지 않고 고기, 그것도 술에 통조림 고기를 상식하고 상대적 빈곤이 겹치니 비만율이 높아지고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고 수명이 짧아지는 것이다.
음식에 ‘고유’나 ‘전통’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른다. 문화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와의 접촉이나 충돌을 통해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변하는 것이다. 식문화의 차이를 국경선이나 민족의 안팎으로 구분해 국경선이나 민족의 안에 있는 사람들의 동질성을 강조하거나 국경선이나 민족의 밖에 있는 사람들과의 이질성을 드러내 음식에서 ‘고유’나 ‘전통’을 들이대는 것은 사실 거의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오키나와 음식이 일본이나 미국의 영향을 받아 이런저런 형태로 바뀌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땅에서 나는 것을 그 땅에서 먹는 것’이 건강에 가장 좋다는 생태적 시점을 들이대지 않아도 오키나와의 식생활 변천에는 오키나와를 지배해온 일본과 미국이라는 지배자의 폭압적인 역사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일본 전체 면적에서 겨우 0.6%에 지나지 않는 작은 섬 오키나와에 일본 주둔 미군기지의 70%를 밀어넣은 덕분에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일본이나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걸쳐 있는 오키나와를 ‘전략적 요충지’로 자리매김하고 초헌법적 권력을 일본 정부의 양해하에 휘두르는 미국이 오키나와 식생활 변천의 배후에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함포가 먹다 남긴 것‘함포가 먹다 남긴 것’이라는 제목의 오키나와 민요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젊었을 때는 전쟁 세상/ 젊음의 꽃도 피울 수 없었네/ 집도 조상도 형제도/ 함포사격의 표적이 되어/ 입을 것도 먹을 것도 모두 없어/ 소철을 먹고/ 살았네/ 당신도 나도/ 모두가/ 함포가 먹다 남긴 것이라네.” 히가 쓰네도시(比嘉恒敏·1917~73)가 작사·작곡한 반전 민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미군의 함포사격과 일본군과의 지옥 같은 전투 사이에서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를 겪었던 히가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만든 민요다. 히가의 이 민요에 빗대어 말하자면, 오키나와의 식생활 변천에 나타나는 굴곡에는 ‘함포가 먹다 남긴 것’을 가꾸어온 오키나와 사람들의 고뇌가 담겨 있다. 요즘 오키나와에서 부는 독립론이나 자립론에 이같은 고뇌가 응축돼 있고 이 ‘새롭고도 오래된’ 오키나와 사람들의 용트림이 ‘함포가 먹다 남긴 것’을 역사적인 디딤돌로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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