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평소 품었던 의문을 피폭자들에게 던졌다. “피폭자들의 수기를 읽어보면, 피폭자들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미국에 대한 분노와 복수를 그대로 표현하는 경우를 찾기가 매우 힘듭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피폭 당시의 참상을 증언한 다음, 평화에 대한 의지를 담은 메시지로 매듭을 짓지요. 모두 마치 ‘성인’ 같아요. 원자폭탄에 대한 증오는 있어도 미국이나 미국인에 대한 증오를 그대로 표출하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왜 그렇지요?” 대답은 이랬다. “처음에는 당연히 미국에 대한 증오감이 있었지요. 영어 글자만 보아도 증오감이 생겼을 정도였지요. 그래서 영어 공부를 거부했고 그 때문에 대학 진학에 실패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점차 미국에 대한 증오감을 표출할 기회가 없어지게 되었어요. 일본이 친미국가로 자리잡아가면서 번영을 누리게 되자 미국을 증오하는 언설이 설 자리를 잃게 되었지요.”
찾아볼 수 없는 복수의 의지사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 경험에서 시작된 일본의 반핵평화운동에서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직접적 증오감을 담은 언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제국주의 혹은 패권주의 문제로서 반미주의는 있어도 피폭 경험에서 비롯된 증오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피폭자들의 수기를 접할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피폭자들의 피폭 직후의 증언에서는 미국에 대한 증오감과 복수의 의지를 드러내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미국놈들”이라며 미국에 대한 증오감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혹은 일본도 원자폭탄을 하루빨리 만들어 미국에 복수해야 한다는 증언도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대체로 1950년대 중반부터 이런 증언은 자취를 감춘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 경험을 보편적인 반핵평화주의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1955년 시작된 원수폭 금지 세계대회의 영향이 한몫했을 것이다.
히로시마 피폭 경험을 그린 나카자와 게이지(中澤啓治·1939~2012)의 (1972∼)은 일본에서 600만 권이나 팔린 대표적인 반핵평화 만화다. 뮤지컬·영화·연극·애니메이션 등으로 만들어졌고 영어판·인도네시아판도 발행됐고 한국에도 번역돼 소개된 바 있다. 이 만화의 대중적 성공에는 이 만화가 미국·미국인에 대한 증오 대신 보편적 반핵평화주의를 담고 있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을 언급하기도 하고 천황의 전쟁 책임을 제기하고 동시에 미국의 원폭 투하 책임을 꾸짖으면서도 미국에 대한 증오감이나 복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1960년대에 발표된 나카자와의 초기 만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카자와는 1939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 당한 피폭으로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었다. 그는 간판장이 일을 하다가 만화가가 되고자 도쿄로 상경해 유명 만화가의 보조일을 한다. 상경 초기에는 피폭자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차별을 의식해 피폭자라는 사실을 숨겼지만, 피폭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어머니의 죽음(1967)을 계기로 히로시마 원폭 문제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이때 발표한 두 개의 작품에는 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증오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내 몸 매독균을 전쟁꾼들에게 퍼트릴 거야”(1968)는 나카자와가 처음으로 원폭 문제를 다룬 단편만화다. 내용은 지극히 단순하면서 강렬하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피폭을 당한 청부살인업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원자폭탄으로 가족을 모두 잃었고 피폭시의 화상으로 온몸에 켈로이드(keloid) 상처가 남아 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은 미국을 증오한다. 그는 알파벳으로 쓴 간판을 볼 때마다 분통을 터뜨린다. 술은 위스키를 마시지 않고 오직 일본 술만을 마신다. 미국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아니 미국에 대한 분노를 잃어버린 히로시마와 일본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생활을 위해 청부살인업자가 되었지만 그가 죽이는 대상은 오직 미국인뿐이다. 즉, 일본인은 죽이지 않는다. 어느 날 그는 미국인이 휘두른 칼에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맨다. 그리고 원폭 소녀 2세에게 자신의 눈을 기증하고 눈을 감는다.
(1968)는 매춘여성의 삶을 그린다. 그녀는 피폭자이면서 미국인에게 몸을 파는 ‘양공주’다. 원폭으로 부모와 동생을 잃었고 자신도 후유증으로 시한부 인생을 고통 속에 살고 있다. 결혼을 약속한 남성은 그녀가 피폭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 곁을 떠났다. 그녀는 죽기 전에 복수를 꿈꾼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 몸에 있는 매독균을 전쟁꾼들에게 퍼트릴 거야! 그래서 그놈들을 매독으로 파멸시킬 거야!” 그녀의 복수는 매독균을 미군에 퍼트리는 것이다.
이 두 작품에서 펼쳐지는 피폭자 나카자와의 세계는 에서 펼쳐지는 비폭력 반핵평화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핵무기를 없애자! 전쟁을 없애자!”와 같은 ‘고상’한 평화주의 이념을 설파하지 않는다. 처절한 복수만을 그린다. 남성은 살인으로, 여성은 매독균으로! 그렇다고 복수하는 쪽의 성공적인 승리로 포장되지도 않는다. 복수는 오직 원폭으로 상처받은 몸뚱이(신체)를 통해 이루어지며 자신을 파멸시킴으로써 완성된다. 이때 복수를 극대화하는 메타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인종과 여성이다.
청부살인업자는 미국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놈들 백인들이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이 일을 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더럽혀진 다리로 일본 땅을 활보하는 꼴을 참을 수가 없어!” “네놈들은 입으로는 폼 나게 지껄이지만 속내는 더러운 창자로 가득 차 있다고!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용서할 수 없다고 지껄이면서 뒤에서는 네놈들 양키는 나치보다 더한 학살을 저질렀어! 나치보다 더한 살인마들! 히로시마에 관광 올 시간이 있으면 네놈들 나라에 있는 흑인 문제나 해결하라고!”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군사적·정치적 문제로서가 아니라 오직 백인에 의한 일본인 말살로 그리면서, 피폭자를 일본인과 동일시하고, 이를 베트남으로, 유대인으로, 흑인으로 확장한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는 홀로코스트이고, 피폭자는 유대인이다. 미국과 전쟁을 벌인 일본은 침략자가 아니라 미국의 침략에 맞선 베트남이다.
친미국가의 기반이 만들어지던 시대 거친 뒤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오직 ‘순결한 여성’이다. 아니 원자폭탄으로 온몸에 상처를 입었거나 방사능 오염으로 결혼할 수 없게 된 더럽혀진 ‘순결해야 할 여성’이다. 원자폭탄은 여성의 ‘순결함’을 파괴했기 때문에 악이다. 매춘여성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자폭탄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는 숙명에 나는 울었다. (…)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이를 잊을 수 없었다. 의상실 창가에 진열되어 있는 웨딩드레스 차림의 마네킹을 자신도 모르게 때려부수고 싶었다.” 당시 피폭자 여성은 피폭자이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에 노출돼 있었다. 이부세 마스지(井伏二·1898~1993)의 (1965)라는 작품은 히로시마에서 피폭당한 여성이 피폭자라는 이유로 결혼을 약속했던 남성으로부터 버림받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카자와는 이같은 ‘순결해야 할 여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피폭자 일본인 남성에게 맡긴다. 이 남성들은 대체로 강하고 정의로우면서 폭력적이다. 연약하고 ‘순결한’ 일본인 여성을 더럽히는 존재로서 미국 백인을 등장시키고, 이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남성을 그 대척점에 둠으로써 미국에 대한 복수를 강한 일본 남성의 복원이라는 형태로 그려낸다.
이 두 작품은 1970년대에 나온 과 매우 다르다. 인종주의적 반미와 복수를 남성주의 중심으로 거칠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두 작품을 선뜻 출판하려는 출판사를 찾기 힘들었고 특히 유명 출판사는 모두 출판을 거절했다. 이 작품이 그려진 1960년대는 ‘친미국가’ 일본의 기반이 거의 만들어지던 시점이다. 고도성장으로 삶이 윤택해지고 미-일 안보동맹이 정치적 반대운동을 물리치고 사회적으로 뿌리를 내리던 시기다. 미국과의 동맹하에 ‘잘나가던’ 당시 일본에서 미국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그린 이 작품은 매우 불편했다.
유명 출판사들이 이 작품의 출판을 꺼렸던 것처럼, ‘번영’에 들떠 있던 사람들은 피폭자들의 미국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불편하게 여겼다. 미국에 대한 분노는 평화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괴물’에 휩쓸려버렸고 피폭자들은 모두 평화만을 바라는 착한 ‘성인’이 돼버렸다. 피폭자들의 기억은 깎이고 다듬어졌다. 그리고 분노할 공간과 공격할 대상이 사라져버렸다. 피폭자는 모두 평화의 전도사 같은 ‘성인’이 되었다. 다양한 모습과 기억을 지녔을 피폭자는 모두 하나가 돼버렸고 민족도 계급도 젠더도 없는 초역사적인 공허한 ‘주체’가 돼버렸다. 피폭 경험으로부터 가해와 피해의 주체를 특정하고 그 주체에 책임을 묻고 분노를 표출하는 기억의 환기나 재생산은 작동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나카자와도 초기 작품에서 드러냈던 증오감을 버리고 을 통해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래서 성공을 거두었다. 나카자와의 변신과 성공은 그 자체로 보면 일본에 갇혀 있던 피폭 경험을 인류 공통의 반핵평화주의로 확장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셈이지만, 동시에 ‘평화국가’ 일본의 ‘번영’과 맥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평화국가의 번영이 다하자 공격 시작하지만 21세기 일본에서 그 ‘평화국가’ 일본이 ‘번영’을 다하자 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된다. 2012년 이후 일부 교육위원회에서 이 “묘사가 지나치게 과격”하고 “차별적인 용어”가 있으며 “사실에 반하는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열람 제한 조치를 취했다.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도 이 조치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는 등 의 수난은 일본의 정치 지형과 맞물려 확대 일로에 있다. 물론 일본도서관협회와 미국도서관협회 등이 열람 제한이 일종의 ‘검열’에 해당된다는 이유를 들어 항의 성명을 내면서 부분적으로 열람 제한이 철회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에 대한 증오감은커녕 보편적 반핵 의지를 담은 조차 일본 사회에서 부정되고 있는 셈이다. 피폭자들의 분노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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