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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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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밥통과 ‘자구발’ 사이, 일본은 없다

등록 2013-01-08 17:10 수정 2020-05-03 04:27

2012년 10월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탈핵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를 전한 뉴스 사진을 보고 섬뜩했다. 젊은 참가자들이 쓰고 있는 헬멧 때문이었다. 누가 보아도 1960∼7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에서 유행하던 헬멧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신좌익 당파가 즐겨 쓰는 글자체를 흉내 낸 구호가 새겨져 있었다. 화염병이나 몽둥이 대신 벼와 꽃을 들었다지만, 나는 이 사진에서 피로 점철된 일본 좌익운동의 실패한 역사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일본 사회운동에 대한 이상한 소비의 한 단면이다.

2012년 10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탈핵 집회. 헬멧과 글자체 등에서 일본 좌익운동의 실패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2년 10월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탈핵 집회. 헬멧과 글자체 등에서 일본 좌익운동의 실패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국적을 보이자 대답이 극단적으로 쏠려

몇 년 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아시아계 얼굴을 한 복수의 모델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한 번은 국적과 이름을 가리고, 또 한 번은 국적과 이름을 명기한 채로 각각 가장 세련되고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고르는 실험이다. 국적과 이름을 숨긴 상태에서 학생들의 선호도는 쏠림 없이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였다. 그런데 국적과 이름을 적시한 상태에서 학생들의 대답은 극단적인 쏠림을 보여 일본인 모델을 뽑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간단한 실험을 통해, 모델 선호도가 모델 자체보다 그 모델이 속한 ‘집단’, 즉 국가나 인종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대학로나 홍익대 부근을 돌아다니다 보면 최근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돈가스 전문점, 초밥집, 우동집, 카레집에 더해 최근에는 ‘이자카야’라 불리는 일본식 선술집, 일본식 덮밥집, 그리고 그 독특한 맛 때문에 한국에선 자리잡기 힘들 것으로 여겨졌던 일본 라멘(라면)집이 한 집 걸러 한 집씩 있다. 일본 음식점이 왜 인기 있을까? 사람들은 물론 일본 음식의 맛을 소비한다. 이 맛에 끌려 가게를 찾는다. 하지만 이들이 맛만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라는 이미지도 동시에 소비한다. 사용가치뿐만 아니라 기호의 가치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사례는 같은 층위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헬멧이든 모델이든 음식이든 한국 사회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일본이라는 기호를 통해 소비하고 이를 통해 치유를 얻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 일본을 어떻게 소비했을까?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들은 리영희·강만길·박현채 등의 글, 그리고 같은 잡지에 더해 모리스 돕이나 폴 스위지, 안드레 군더 프랑크, 프란츠 파농, 사미르 아민, 파울루 프레이리, 죄르지 루카치, 아르놀트 하우저 등의 책을 읽었다. 개인차가 있으니 내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이 기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전공을 뛰어넘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닥치는 대로 읽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한글 책을 제외하면 이들 책을 거의 원서로 읽었으니 제대로 이해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어설프게 읽은 내용에 선배한테 전해 들은 이야기를 더해 제 말인 양 떠들어댔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창피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물론 진학률이 낮은 사회에 나타나는 대학생들의 교양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시대는 어둡고 갑갑한데 그 시대를 설명해주는 책은 한정돼 있으니 때로는 ‘신체 구속’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원서 읽기에 벌떼처럼 달려들었던 듯하다.

마르크스 읽으려 ‘속성 일본어’

그런데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1970년대 말부터 일본 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유통 경로를 거쳤는지 지금도 불가사의하지만, 미시마 유키오의 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같은 몇 안 되는 소설에 더해, 신문 등을 통해 전해지는 반공주의로 각색된 정보가 식민지를 경험한 세대의 경험담과 결합돼 기묘한 일본론이 유통되던 시대에 새롭게 들어온 일본의 사회과학 책이 신선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읽혔던 책은 지금 세대에게는 다소 의외일지 모르지만, 속칭 ‘자구발’이라 불렸던 딱딱한 사회과학 책이다. ‘자구발’은 1977년 일본에서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이다(한글 번역본은 1984년 으로 나왔다). 겨우 일주일간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외우고 기초 문법을 배운 다음, 바로 원서 강독에 들어갔으니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한 쪽을 읽는 데 얼마나 많이 사전을 뒤적였는지 거의 끈기 싸움이었다. 내가 처음 접한 일본어 원서였다. 아마 필자를 포함한 한글 세대에게 처음으로 불어닥친 기묘한 ‘일본어 학습 붐’이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알기 쉽게 풀이한 이 책은 이나 을 합법적으로 읽을 수 없었던 당시의 청년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책이었다.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우회 경로’ 같은 것이었다. 갈증을 채워주는 치유 효과가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외국 원서 읽기에 복사기의 대중적 보급이 한몫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찌됐든 ‘자구발’은 나를 일본으로 이끌었고 결국 1985년에 일본 유학까지 결심하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책을 출판한 일본 사회의 사상적 자유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일본을 운동과 사상의 ‘선진국’으로 생각했던 게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데 직접 일본을 가보니 이 책을 통해 상상했던 일본 모습과 전혀 달랐다.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자구발’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자구발’은 훌륭한 입문서임이 틀림없었지만, 일본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한 갈래에서 나온 대중서였고 따라서 일본의 사회운동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전체적인 역사에서 자리매김돼야 할 책이었을 뿐이다. 게다가 일본 사회는 ‘자구발’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치닫고 있었다. 나는 ‘자구발’을 통해 일본을 상상하고 희망을 보았지만 내가 찾은 일본은 ‘자구발’의 세계가 아니었다. 나는 ‘자구발’을 통해 일본을 ‘짝사랑’했던 셈이다.

서울 홍익대 앞에 한 집 건너 한 집씩 있는 일본 음식 가게. 사람들은 일본 음식 맛에 끌려 가게를 찾는다. 하지만 이들이 맛만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서울 홍익대 앞에 한 집 건너 한 집씩 있는 일본 음식 가게. 사람들은 일본 음식 맛에 끌려 가게를 찾는다. 하지만 이들이 맛만 소비하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생각해보니, 과거 한국인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이른바 ‘코끼리 밥통’이나 최근의 SK-II 같은 화장품은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배후에서 국가 브랜드 효과가 한몫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또 1970∼80년대에 방송사 프로듀서들이 일본 방송을 보려고 부산을 찾은 것도, 정부 관료나 기업체들이 일본의 ‘선진 사례’를 학습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들이 본 것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욕망이었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일본=선진국’이라는 필터가 강하게 작용했던 셈이다. 이렇게 보면 2000년대 젊은이들이 일본을 소비하는 심리와 1970∼80년대 젊은이들이 일본 좌익에 탐닉했던 심리는 그 내용에서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줄기다.

에 티베트가 있던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85년 일본에 갔을 때, 이웃집 아주머니한테 들은 첫 번째 말은 “집에서 불고깃집 하세요?”였다. 불고깃집의 대부분을 재일조선인이 하기 때문에 한국인 하면 불고깃집이 떠올랐을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인 하면 중국요릿집을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학원 연구실에서 만난 일본 좌파 대학원생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한국 학생운동의 강철 같은 투쟁력에 대해서다. 그 밖의 이야기가 껴들 틈이 없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강연회를 할 때 있었던 일이다. 강연회가 끝나자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와서 물었다. “전 배용준 팬이에요. 선생님도 드라마 보셨지요?” “안 봤는데요.” “배용준 좋아하시지요?” “아니, 글쎄요. 좋다고도 싫다고도 할 수 없어요. 별 느낌 없는데요.” 그러자 그 여성은 뜨악한 표정과 가시 돋은 말투로 말했다. “아니 한국 사람인데 를 안 보다니…. 게다가 배용준도 안 좋아하다니….” 매우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여성은 아주 힘든 삶을 살다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를 보고 배용준에 빠져들었고 한국을 찾았고 그래서 삶의 의욕이 생겼다고 한다. 사실 이 여성이 말하는 한국은 한국에 없다. 일본 사회의 불편함에서 상상된 한국일 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구원’을 얻고 치유를 받으며 희망을 본다.

서양의 물질문명에 지친 미국 배우 리처드 기어는 티베트 불교와 달라이라마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이라는 영화는 서구사회의 오리엔탈리즘을 여실히 보여준다. 1960년대에 68혁명에서 희망을 보았던 서구의 젊은이들은 이 싸움에서 지자, 동남아시아의 시장 바닥에서 치유를 얻었다. 베트남 전쟁에 지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타이의 카오산로드는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혼돈과 무질서에 지친 사람들은 관리되고 정돈된 일본에서, 천박함과 무교양에 지친 사람들은 유럽에서, 그리고 경쟁과 개발주의에 지친 사람들은 티베트나 인도에서, 자유로운 혁명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들은 체 게바라에게서 구원을 찾고 치유받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과거로 달려간다. 인정에 굶주린 사람들은 과거의 인정에 매달려 복고주의에 몸을 내맡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이 구원을 찾고 치유를 얻는 일본, 유럽, 티베트, 인도, 체 게바라는 일본, 유럽, 티베트, 체 게바라 그 자체가 아니다. 리처드 기어의 티베트는 서양 속에서 상상되는 티베트이고, 한류 여성의 한국은 영상 속의 한국을 자신의 욕망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과거의 인정은 몰인정한 현재에서 각색된 환상이지 과거 자체는 아니다.

희망은 가까운 곳에도 먼 곳에도 없다

깨끗한 모습으로 상상되는 선진국 일본은 한국의 욕망에 투사된 무기질의 일본일 뿐이다. 상상 속의 타자는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쉽지만, 반대로 무인(無人)의 장밋빛으로 채색되기도 쉽다. 타자를 증오하는 심성과 타자를 신비화하는 심성은 같은 줄기에서 나온다. 혼자서 좋아하다가 거절당하면 극도의 증오로 달려가는 스토커와 닮아 있다. 그래서 벨기에의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가 주는 교훈은 ‘희망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지만, 이 말은 고쳐 써야 한다. ‘희망은 가까운 곳에도 먼 곳에도 없다’라고. 반대로 ‘절망은 가까운 곳에도 먼 곳에도 있다’라고. 한국의 일본론도 마찬가지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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