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하시모토, 괴물의 탄생

등록 2012-12-21 19:27 수정 2020-05-03 04:27

역사 속에서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독재자들을 만날 때마다 당혹감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독재자에게서 인격적 결함을 찾아내 모든 책임을 이에 돌리는 방식이다. 찰리 채플린이 영화 (1940)에서 히틀러의 변덕스럽고 비정상적인 ‘광기’를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것처럼, 프로이트에 따르면, 히틀러는 “무슨 짓을 할지 예측 불가능한 정신이상자”였다. 일본을 전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는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는 ‘편집광적 기질’이 있었고, 일본에서 평화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군주로 각색된 히로히토도 허버트 빅스에 따르면 패권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이었으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복합적 인격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일상이 의의로 따뜻하고 인간적이었다는 기록도 동시에 존재한다. 상반되는 두 기록 사이에서 사람들은 혼란을 느끼지만, 사실 일상에서의 인간적인 모습과 정치 지도자로서의 인격 파탄은 반드시 모순되지는 않는다. 집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아버지가 밖에서 잔혹한 가해자로 행동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나 아렌트는 ‘악(惡)의 평범함’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가?
 
독재자=인격장애=유전인자
그런데도 사람들은 ‘악의 평범성’, 즉 내 안의 ‘악마’를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독재자들의 ‘인격장애’에 모든 책임을 돌리고 그 대가로 안심감을 얻어 자신의 ‘정상성’을 온실 속에서 지켜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독재자들의 인격장애의 뿌리를 찾아 이들의 성장 배경으로 달려간다. 족보를 그려 인격 파탄의 생물학적 기원을 찾아내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 생긴 트라우마를 찾아내 인격 파탄과 이어내기도 한다. 그 결과 하나의 단순한 도식이 만들어진다. ‘독재자=인격장애=트라우마=유전인자’라는 등식이다. 독재자라는 결과를 가지고 모든 것을 연역적으로 꿰맞추는 방식이다.
일본에서 지금 인기를 얻고 있는 세 명의 유력 정치가는 자민당의 아베 신조, 도쿄 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다. 인종주의, 패권주의, 군국주의라는 점에서 서로 앞을 다투는 파시스트들이다. 그런데 성장 배경은 대조적이다. 이시하라는 대기업 임원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하게 자란 명문학교 출신이고, 아베는 대표적인 세습정치가다. 사회의 계층이동을 가로막는 상징적인 존재들이다. 이 두 사람과 대조적인 인물이 바로 하시모토 도루다. 아베가 1954년생이고 이시하라가 1932년생인데, 하시모토는 1969년생이니 세 사람 중 가장 젊다. 그런데 성장 과정을 보면 두 사람과 달리 하시모토는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다. 아베와 이시하라가 부잣집 도련님 출신인 데 비해, 하시모토는 불우한 가정환경을 이겨낸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정치인이다.
하시모토는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품에서 컸다. 아버지는 소년원 출신에 야쿠자였고, 마약중독자에 도박 상습자였다. 그리고 하시모토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약물중독 상태에서 자살했다. 작은아버지도 소년원 출신이고, 1999년 오사카의 거리에서 쇠몽둥이 살인사건을 일으킨 범인은 하시모토의 사촌이다. 이런 환경에서도 그는 와세다대학을 재수 끝에 들어갔고 그 뒤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며, 텔레비전 등에서 인기를 얻어 정치가로 거듭났다. 일본의 ‘88만원 세대’가 특히 하시모토에 열광하는 것은 다른 두 정치인에 비해 젊다는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이런 성장 배경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사히신문사가 발행하는 (2012년 10월26일)에 실린 하시모토에 대한 인물평은 이렇다.
 
‘오물’ ‘이중인격’으로 묘사된 사나이
“(카메라가 돌아갈 때는) 억지로 웃다가도 텔레비전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으면 바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어두운 얼굴을 한다. 이 남자는 틀림없이 뒤에서 무슨 음산한 짓이라도 할 사람이다” “(이 사람의) 언동을 움직이는 것은 그때그때의 인기몰이만을 목적으로 한 동물적 충동이다” “역시 이 남자는 아부와 더럽기 짝이 없는 유영술로 살아온 것일까?” “(이 사람은) 텔레비전이 배설한 오물이다” “낡은 약육강식 사상과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를 거꾸로 발판으로 삼은 자부심에서 오는 엘리트주의, 텔레비전의 시청률지상주의 그대로의 대중영합 사상, 그리고 수험전쟁을 이겨낸 남자답게 겨우 하룻밤 벼락치기 공부로 몸에 익힌 이발소 잡담 수준의 공허한 정치적 희언뿐이다” “만일 하시모토가 일본의 정치를 좌우하는 존재가 된다면, 가장 문제인 것은 적대자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이 남자의 관용 없는 인격이고 그 위험한 성격의 뿌리에 있는 본성이다”.
유명한 논픽션 작가 사노 신이치가 쓴 기사다. 일본을 대표하는 신문사가 발행하는 주간지에 실린 공적인 인물평으로 보기에는 격조가 떨어지고 감정적이다. 거의 인격 모독에 가깝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에 빈번히 등장해 대중영합적인 발언을 거듭해 정치가로 성공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지만, ‘오물’이라는 표현이나 ‘이중인격’이라는 규정은 언론매체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용어다. 치밀한 취재를 바탕으로 썼다는 설명이 무색해진다. 기사 내용대로 하면, 그는 독재자에게 어울리는 ‘인격장애’를 모두 갖추었다. 그런데 이 글의 취지는 한마디로 ‘하시모토의 삐뚤어진 사고가 어려운 성장 배경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하시모토의 발언이나 행동을 보면 그는 분명히 파시스트에 가깝다. 하시모토라는 이름을 따서 그의 정치이념을 ‘하시즘’(파시즘)이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이 그의 어려운 성장 배경에서 비롯됐다는 도식은 너무 연역적이고 단순하다.
그런데 이 기사는 이 정도로는 성에 안 찬 듯하다. 그래서 괴물이 괴물일 수밖에 없다는 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간다. 바로 그의 ‘신분’이다. 기사는 하시모토 도루의 부모나 집안의 뿌리가 이른바 ‘동화(同和)지구’에 있음을 폭로한다. 하시모토는 ‘동화지구’, 즉 한국의 ‘백정’에 상당하는 이른바 ‘피차별부락’ 출신이다. 동화는 ‘동포융화’의 줄임말로 이들에 대한 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행정 쪽이 붙인 이름이다. 과거에는 ‘융화’라고도 불렸다. 이들을 차별할 때 사용하는 말은 ‘에타’ ‘히닌’인데, 한자대로라면 각각 ‘더러움이 많음’과 ‘사람이 아님’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봉건시대의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제 밖의 가장 밑에 자리했던 계급이고, 도살·피혁가공·사형집행·주검처리 등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일컫는다.
 
오직 신분으로 차별받는 1%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을 ‘피차별부락’ 출신으로 비하한  표지. 리버럴 매체가 그의 ‘혈통’을 문제 삼은 문제적 기사였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을 ‘피차별부락’ 출신으로 비하한 표지. 리버럴 매체가 그의 ‘혈통’을 문제 삼은 문제적 기사였다.

1871년 신분해방령으로 법적인 차별은 없어졌다. 그런데 일본 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1993년 현재 전국적으로 4533지구가 있고 이들 인구는 1987년 현재 116만 명으로 일본 전체 인구의 약 1%를 차지한다. 현재 도살 등의 직업에 종사하는 비율은 아주 낮지만, 행정 쪽이 이름 붙인 동화지구에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모두 일본 국적자이고 ‘외모상’으로도 구별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차별은 인종·민족·외모·직업·국적·성별 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은 이 점에서 다수자와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그런데 결혼 및 취업에서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차별하는 것은 오직 ‘신분’이다. 이 신분은 무려 140년 전까지 존재했던 제도고 이를 근대적으로 계승한 호적제도로만 특정될 뿐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인간을 오직 ‘피’로 위아래 서열화하는 봉건시대의 신분제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셈이다.

또 이 기사는 하시모토의 어머니에 대해 ‘순수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동화지구 출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마치 백정 계급의 ‘더러운 피’를 가진 아버지의 오염된 혈통이 다수자 출신인 어머니의 ‘순수한 피’로 중화됐기 때문에 좋은 대학을 갔고 사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으며 정치가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더러운 피’ 때문에 인격적 결함을 갖게 되었고,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독재적 정치 스타일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단순한 논리가 일어났을까?

를 발행하는 아사히신문사는 일본의 리버럴 언론을 대표한다. 따라서 하시모토라는 인물의 등장과 인기는 이 언론사의 처지에서 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사회현상이다. 그래서 피차별부락민에 대한 잠재된 사회적 ‘혐오감’을 이용해 하시모토 깎아내리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정한 신분·민족·인종·성별 등을 들어 사회적 차별을 조장하고 이를 선동하는 우파의 단골 메뉴를 리버럴을 대표하는 언론사가 차용하는 세상이 된 셈이다. 만일 하시모토라는 ‘괴물’의 탄생이 그의 불우한 어린 시절에 뿌리가 있다고 한다면,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그의 혈통이 아니라 그의 혈통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배제해온 일본 사회의 ‘평범성’이다.

 

진짜 문제는 천황제, 세습정치

그런데 일본 사회에 책임을 물으려 하지 않고 하시모토라는 개인과 그 ‘혈통’에 책임을 돌림으로써 기왕에 존재하는 신분 차별에 한몫을 더했다. 만일 혈통을 문제 삼는다면 그 혈통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왜 이런 현상이 재생산되는지를 다루어야 한다. 또 반대로 그 혈통 덕분에 노동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세습정치가와 천황제를 다루어야 한다. 피차별부락민을 차별하는 혈통주의는 천황제 혈통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양극단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피차별부락민 문제는 세습적 신분 차별이지 직업 차별은 아니다. 결국 는 11월2일 사과 성명을 냈지만 성명서에서 이런 관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