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스포츠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용병’이라 부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용된 병사’라는 뜻이다. 스포츠 선수를 군사용어로 부르는 것도, 사람을 오직 금전적 계약관계로만 호칭하는 것도 영 마뜩지 않다. 일본에서는 ‘스켓토’(助っ人)라는 말을 쓴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반드시 외국인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로스포츠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호칭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용병’이라는 말처럼 군사용어도 아니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굳이 딴죽을 걸 까닭은 없다. 그러나 좀더 꼼꼼히 생각해보면, ‘스켓토’라는 말에는 ‘오직 일본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즉, 아무리 시간이 지나고 생활 속에 녹아들어도 절대 같은 ‘주거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 완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외국인의 효용 가치는 오직 일본에 도움을 주는지 여부에 달린 셈이다.
방망이에 맞아 숨진 일본계 브라질
‘가이진’(外人)이라는 말도 있다. 이는 반드시 ‘외국인’과 같은 뜻은 아니다. 일반적 쓰임새로는 비동양계 서양인, 그중에서도 백인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어 사전을 보니, ‘외국인, 특히 서양인’이라는 뜻 말고도 ‘동료 이외의 소원한 사람’, 혹은 ‘적대시해야 할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비동양계 서양인에 대한 차별의 뜻이 은근히 담긴 이 말을 최근에는 방송 등에서 사용을 기피하는 듯하다. ‘스켓토’나 ‘가이진’은 일본 사회에 들어온 외부인이 같은 생활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창코로’라는 말은 중국인에 대해 경멸의 뜻을 담아 부를 때 사용하는 속어다. ‘시나진’이라는 말은 우익 잡지 등에서 여전히 사용되는 중국인에 대한 멸칭이다. ‘센징’이나 앞 글자에 힘을 주어 발음하는 ‘조-센진’은 조선인에 대한 대표적인 멸칭이다. 간단한 기계 조작도 못하는 머리 나쁜 행위 등을 가리켜 ‘바카촌’이라는 속어를 쓰기도 하는데, 이는 어원과 관계없이 ‘조선인 같은 바보들도 쓸 수 있는 자동 카메라’라는 뜻이다. 이런 용어들에는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 사회에 유입되는 타자에 대한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의 시선이 담겨 있다. 조선이나 중국 등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일본 사회의 차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라 ‘겉모습’으로는 거의 구별하기 힘든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에 더해 새로운 양상이 드러난다.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 ‘외부자’의 구성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외국인 등록 현황에 따르면, 중국인과 대만인이 가장 많아 약 70만 명이 일본에 거주한다. 이어서 재일조선인(조선적·한국적 포함)이 약 57만 명이다. 그다음으로 브라질 사람으로서 약 26만 명이 거주한다. 그 외에 단기체류 일본 방문객이 연간 1천만 명에 달한다.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새로운 차별 양상을 살펴보자.
#장면11997년 10월, 아이치현 고마키역 앞에 모여 있던 일본계 브라질 소년들을 약 30명 가까운 일본인 소년들이 습격했다. 브라질 소년들에게 “브라질로 돌아가!”라는 말과 욕설을 퍼부은 일본인 소년들은 한 브라질 소년을 근처 공원으로 납치해 야구방망이 등으로 때렸고, 결국 브라질 소년은 숨졌다. 소년은 겨우 14살이었다.
#장면21998년 6월16일,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에 있는 보석가게에 들어선 여성이 진열대에 있는 보석을 보고 있었다. 주인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영어로 물었고, 브라질 여성은 일본어로 “브라질”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인은 이 가게에는 외국인이 출입할 수 없음을 알리고 가게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브라질 여성이 항의하자, 주인은 경찰서에서 만든 ‘절도범에 주의!’라는 공지문을 보여주며, 가게에서 나가줄 것을 요청했다. 이 여성은 주인의 일련의 행위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1999년 10월12일 1심 재판에서 승소했다.
#장면31999년 9월, 홋카이도 오타루의 온천에서 17명의 ‘외국인’이 온천에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온천 쪽은 외국인은 입장할 수 없다는, ‘JAPANESE ONLY’라고 일본어·영어·러시아어로 쓰인 플랭카드를 보여주면서 입장을 제지했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소는 온천 쪽에 위자료 지급을 명하는 판결을 내리면서도 오타루시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혼혈 자매도 차별 유무 달라
‘외국인’이 목욕탕 입장을 거부당하고, 보석가게에서 쫓겨나고, 폭행당하는 사례는 물론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화 간의 접촉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많은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종, 국적, 종교 등으로 구분되는 타자에 대한 일본 사회의 거부반응이라는 점에서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증)나 증오범죄(Hate Crime)의 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들에 거시적 현미경을 들이대면, 사건의 성격이 다소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첫째 사건의 피해자는 일본계이니 인종적 타자는 아니다. 둘째 사건의 피해자는 외모로도 구별되는 인종적 타자이다. 이 두 사람 모두 브라질 국적자이다. 둘째 사건에서 브라질 여성이 가게에 들어섰을 때, 가게 주인은 바로 제지하지 않았다. 만일 외모로 구별되는 인종적 차별의식이었다면 이 때 바로 제지했어야 한다. 하지만 가게 주인은 이 여성에게 국적을 물었고, “브라질”이라 답하자 가게에 들어설 수 없음을 알렸다. 가게 주인은 브라질 여성을 처음에 ‘프랑스 사람’인 줄 알았다는 증언도 있다. 그렇다면 일본인이 거부한 것은 ‘외국인 일반’이 아니라 브라질 국적자로 읽힌다.
셋째 사건의 피해자는 대체로 백인들이다. 이들 중에 미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두 아이는 모두 일본 국적자에 일본어가 모어이다. 장녀는 검은 머리에 갈색 눈을 가진 동양계의 외모이다. 차녀는 갈색 머리에 녹색 눈을 지녀 서양인의 외모이다. 온천 쪽은 일본인과 쉽게 구별되지 않는 외모를 지닌 장녀는 들어가도 좋고 차녀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일본 국적을 지닌 백인 남성의 입장도 온천 쪽은 제지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재패니즈(Japanese)는 국적 개념이 아니고 ‘일본인과 구별되지 않는 겉모습’을 뜻한다. 그렇다면 외모로 구별되는 인종상의 구분이 재패니즈의 경계선이 된다. 백인이라고 해서, 혹은 미국인이라고 해서,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고 해서 이 경계선의 예외가 될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사건의 배경을 잘 살펴보면 좀더 다른 양상이 떠오른다. 왜냐하면 온천 쪽은 ‘외국인 입장 금지’ 조처가 러시아 입욕객의 말썽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체는 못사는 나라 사람 차별
오타루시는 러시아와 무역이 빈번한 항구도시이다. 사건 당시 오타루 항구에 입항하는 러시아 배는 연간 약 1300척이고, 러시아인의 상륙 인구는 약 3만 명이다. 오타루시 인구가 14만 명 정도니 거주 인구의 약 20%를 넘는 러시아인이 오타루시를 방문하는 셈이다. 그래서 거리 곳곳에서 러시아어로 쓰인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러시아 방문객이 많으니 당연히 오타루시의 상업시설을 많이 찾는다.
그런데 러시아 손님이 찾는 온천은 일본인 손님이 줄어든다. 온천 쪽은 그 이유로 ‘외국인’은 “몸 냄새가 난다” “목욕 예절이 없다” “전염병이 옮는다” “일본어를 못한다” “덩치가 너무 커 위압감을 준다” 등과 함께, 욕장에서 술을 마시거나 싸우거나 범죄를 일으키는 등 말썽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욕장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러시아 목욕 문화의 특징이니 사전에 러시아인 입욕객에게 설명하면 될 일이다. 전염병이 옮는다는 것은 전혀 근거 없는 인종적 편견에 불과하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싸우거나 범죄를 일으킨다는 러시아인에 대한 이미지이다. 온천 쪽의 ‘외국인 입장 금지’ 조처는 사실은 외국인 일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거부이다. 미국 백인들의 입장을 거부한 것은 이들의 외모를 러시아 백인들과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 사건은 ‘브라질’, ‘러시아=못사는 나라=범죄집단’이라는 특정 국가에 대해 품고 있는 일본 사회의 이미지가 인종·문화·국적 등의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증폭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일본에 외국인 범죄는 늘어나고 있는가? 1997~2007년의 전체 형사범 검거인원 중에 외국인 형사범 검거인원의 비율은 매년 약 2%로 특히 증가한 흔적은 없다. 외국인 거주 인구의 비율이 약 1%인 점을 고려하면 거주 인구에 비해 범죄율이 약간 높지만, 외국인 형사범 검거인원에는 단기체류 외국인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2%라는 수치는 일본 전체의 외국인 범죄율이라 할 수 없다. 못사는 나라의 외국인=범죄자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유포된 배경에는 언론 보도의 ‘과잉보도’가 있다. 1989~2002년 외국인 범죄 증가율은 1.6배 늘어났지만, 그간의 외국인 범죄 보도는 22.2배나 늘어났다는 조사가 있다. 이 사이 등록 외국인은 1.6배, 일본 방문 외국인은 3배 늘어났으니 외국인 1인당 범죄건수는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일본에서 만난 알제리 유학생이 일본에서 경험한 일이다. 그는 숙소를 빌릴 때마다 매번 거절당했다. ‘알제리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는 ‘아프리카에 있다’고 ‘솔직하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못사는 나라=범죄집단’이라는 사고회로가 집주인에게 작동했을 것이다. 그는 작전을 바꿔 자신을 프랑스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자 주인은 흔쾌히 방을 빌려주었다. 그의 외모는 그대로인데 말이다. 집주인이 외국인등록증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차별금지법이 없는 한국과 일본
지난 10월 우즈베키스탄 출신 여성이 부산의 한 목욕탕에서 “외국인은 물을 더럽힐 수 있고, 에이즈 감염 문제도 있어서 출입할 수 없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출입을 제지당했다. 이 여성은 한국 국적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은 국적 개념은 아니다. 외모로 구별되는 인종의 문제이기는 하다. 만일 이 여성이 미국 출신의 백인 여성이었다면 상황은 어떠했을까? 피해자들은 모두 민사소송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해야 한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모두 차별금지법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를 말하고, 다문화·다민족 사회를 말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데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인색하다. 왜일까?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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