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일 울릉도로 가겠다며 서울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일본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9시간 동안 출국을 거부하다 출국장으로 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독도가 일본 땅’이라며 울릉도를 가겠다던 일본 국회의원 3명의 ‘김포공항 농성’이 9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일회성 해프닝이었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이런 일이 앞으로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인이나 우익단체가 배를 타고 독도 상륙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독도에 상륙하는 것은 물론 접근조차 불가능하겠지만, 일본 시마네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출항식을 거행하며 법석을 떨고 한발 더 나아가 동해 바다에서 몇 시간 동안 ‘바다 농성’만 해도 꽤 시끄러워질 것이다. 시끄러워지기를 바라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니 시끄러워지는 걸 마다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면 지지표가 늘어나고, 우익단체라면 단체 이름을 알릴 수 있다.
식민지배와 영토 문제의 분리
문제는 노이즈 마케팅을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반응이다. 물론 이 정치인들의 행동이 경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리고 한-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말도 나온다. 반면 한국 쪽의 입국 금지를 일본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책임과 사죄를 주장하면서 일본 정부에 비판적 태도를 취하는 많은 일본 사람들 중에, 유독 독도 문제에는 냉담한 태도를 보이거나 심지어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참회하려고 2000년부터 중국·필리핀·한국 등 아시아 국가를 돌며 ‘사죄 순례’를 하는 승려 이와타 류조가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국을 방문해 8월 한 달 동안 전국을 돌며 ‘사죄 여행’을 할 계획이란다. 이 승려의 역사 문제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런데 신문 보도에 따르면,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해 사죄 여행을 하는 이 승려가 왜 독도 문제를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을까? 이와타 류조의 유보적인 태도는 역사 문제와 독도 문제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일본의 한국 침략은 명백히 잘못한 일이고 이에 대해서는 일본 쪽이 당연히 사죄하고 책임져야 하지만, 독도는 일본의 한국 침략과는 관계없는 한-일 양국 사이의 영토 내셔널리즘 문제이니 이에 대해서는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게다.
일본 공산당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공산당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하지만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다. 한국의 일방적 점거를 비난하며 일본 영토임을 천명한다. 심지어 1950년대에 독도의 무력 탈환을 주장했다. 러시아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쿠릴열도 4개 섬(일본에서는 ‘북방 영토’라 한다)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의 공식 주장보다 더 과격하다. 쿠릴열도 4개 섬에 더해 쿠릴열도 북쪽에 자리한 2개 섬에다 사할린 지역의 영유권도 주장한다. 중국 등과 영토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은 ‘댜오위다오’고 영어명은 ‘피너클열도’이지만,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으니 ‘센카쿠’라 표기한다)에 대해서도 일본 공산당은 일본 영토임을 천명하고 있다. 일본 공산당도 영토 문제를 일본의 대외침략 역사와 분리해 보는 셈이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독도나 댜오위다오를 각각 ‘일본의 대외침략 입구’로 바라보는데, 일본에서는 침략사와 분리된 영토 문제로만 본다. 내셔널리즘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한국이나 중국의 영유권 주장을 ‘영토 내셔널리즘’이라 보며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 침략이 영토 문제의 발단동아시아에는 여러 영토분쟁이 있다. 한국과 일본은 독도를, 중국·대만과 일본은 센카쿠를, 러시아와 일본은 쿠릴열도 4개 섬을, 그리고 중국·베트남·대만·브루나이·말레이시아는 스프라틀리군도(난사군도)를 각각 자신의 영토라 주장한다. 독도는 한국이, 센카쿠는 일본이, 쿠릴열도 4개 섬은 러시아가, 스프라틀리군도는 중국 등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의 영토분쟁은 인접한 나라 사이의 영토 내셔널리즘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영토는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불덩이이니 영토를 둘러싸고 각국 사이에, 그리고 각국 내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내셔널리즘이 아니라고 강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 나타나는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배경에 일본의 대외침략 역사가 깔려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센카쿠는 1895년 내각 결정을 통해 일본 영토로 편입됐다. 청일전쟁(1894) 및 대만 식민지화(1895)와 무관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전에 있었던 오키나와 병합(1872)의 연장선상에 있다. 독도는 1905년 내각 결정을 통해 일본 영토로 편입됐다. 외교권 박탈 및 조선 식민지화와 무관할 수 없다. 쿠릴열도 4개 섬이 러시아와의 조약에 의해 일본 땅으로 편입된 것은 1875년이다. 원주민인 아이누 민족을 제압하고 이 지역을 홋카이도로 개칭한 것이 1869년이니 쿠릴열도 문제의 시발은 일본의 아이누 침략사와 분리할 수 없다. 스프라틀리군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된 것은 1939년이다. 대만 총독부령에 의해 대만의 가오슝에 편입된 것이니 일본의 대만 식민지화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씨앗이 일본의 대외침략에서 비롯됐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진 뒤, 이 영토들의 귀속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서로 상의하는 과정이 마련됐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완전히 무시됐다.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한국 등은 배제됐고, 미국 주도로 냉전 논리가 동원됐다. 이 조약을 통해 일본의 영유권이 완전히 부정된 것은 스프라틀리군도뿐이다(스프라틀리군도를 어느 국가에 귀속시킬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스프라틀리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에 일본이 개입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참가하지 못했거나 회의 참가를 거부한 한국·중국·러시아는 독도·센카쿠열도·쿠릴열도가 각각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는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영토 문제는 일본 문제다. 하지만 영유권 분쟁을 주변 국가 간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점에 동아시아 영유권 분쟁의 복잡함이 있다. 쿠릴열도 4개 섬은 러시아와 일본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고, 센카쿠는 중국·대만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 지역이다. 하지만 동시에 쿠릴열도 4개 섬은 이 지역의 선주민인 아이누 민족의 땅이다. 센카쿠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땅’이기도 하다.
오키나와와 대만 사이의 문제센카쿠열도는 5개의 섬과 3개의 암초로 이뤄진 무인도다. 넓이가 5.56㎢이니 독도의 0.23㎢보다 크다. 5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인 우오쓰리지마는 오키나와 남단에 자리한 이시가키지마에서 약 170km, 그리고 대만 북쪽에서 약 170km, 중국 대륙에서는 330km, 오키나와 본도에서는 약 410km 떨어져 있다. 일본 정부는 “센카쿠열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하며 지금 우리나라가 실효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센카쿠를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다지만, 일본인의 입도에는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자국 영토라고 해서 어디든지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일본인의 센카쿠 상륙이 제한받는다고 해서 이를 근거로 센카쿠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센카쿠를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미국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2010년 10월22일)에는 센카쿠 지역에 들어가려면 “미군의 허가가 필요하다”고 돼 있다.
실제로 미군은 1950년대부터 1979년까지 센카쿠의 일부 섬을 사격장으로 사용해왔다. 1979년부터 미군의 사격장 사용은 중지된 듯하지만, 2008년 10월에 발표된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는 “미군의 사격훈련이 아직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것이다. 일본의 해상보안본부가 2010년 7월에 작성한 ‘관내 주일 미군 해상훈련 구역 일람표’에도 사격장으로 센카쿠의 섬 2개가 올라 있다. 1996년 월터 먼데일 당시 주일대사는 “미국은 (센카쿠)열도의 영유 문제에 어느 쪽 편도 들지 않는다. 미국의 군사 개입을 미-일 조약이 의무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센카쿠에 대해 미국은 중립을 지킬 뿐만 아니라, 일본의 시정권 아래 있는 지역을 군사적으로 지켜준다는 미-일 안보조약을 센카쿠에는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대로라면 만일 센카쿠가 무력 공격을 받아도 미국이 반드시 군사적으로 개입할 의무가 없다. 미국은 센카쿠의 일본 영유를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센카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관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센카쿠 실효지배’란 ‘미군에 군사기지 제공’의 다른 말이다. 센카쿠 문제는 군사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영토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동원하는 논리에는 항상 ‘고유’라는 말이 등장한다. 고유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니 일본이 탄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떤 논리를 동원해도 이 무인도를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센카쿠의 일본 영유는 일본의 오키나와와 대만 침략의 산물이니 고유라고 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짧다. 일본 고유의 영토가 된 지 겨우 100년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따라서 센카쿠는 중-일 간 문제가 아니라 오키나와와 대만의 문제다.
누구의 ‘고유’인지 물어야물론 지금 오키나와는 일본 영토다. 그리고 중국은 대만을 중국 영토라 주장한다. 따라서 형식논리로만 보면, 센카쿠열도 문제는 중-일 간 문제다. 하지만 역사적 과정을 고려하면 일본은 오키나와를 통해서만 센카쿠 문제에 다가갈 수 있고, 중국은 대만을 통해서만 댜오위다오에 다가갈 수 있다. 따라서 1차적으로는 센카쿠가 오키나와에 속하는지, 아니면 대만에 속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아니 어디에 속하는지를 따져보는 게 뜻깊은 일인지를 오키나와 사람과 대만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 하지만 쿠릴열도 4개 섬을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 간 교섭 과정에 선주민인 아이누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적은 없다. 센카쿠 문제에서도 오키나와 사람들이나 대만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된다. 고유라는 말을 쓴다면 오키나와나 대만 사람들이 써야 한다. ‘고유’를 오키나와와 대만과 아이누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는 것만이 지난 100년 이상 동안의 식민주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길이다.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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