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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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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을 지키려다 학살당한 인디오

영혼의 집인 아마존 개발에 맞서던 ‘아구아루나족’,
그들과 헤어진 뒤 들려온 유혈 진압 소식
등록 2010-12-30 15:06 수정 2020-05-03 04:26

“나는 이길 필요가 없다.”
아구아루나(Aguaruna) 인디언이 삶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을 때 페루 리마의 젊은이들이 그들을 지지하기 위해 만든 거리의 메시지였다. 우리는 그 의미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존엄성을 지키는 데 이미 승리한 그들을 향한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석 달간의 에콰도르 생활을 뒤로하고 페루 국경을 건너왔다. 국경지대의 교통은 비싸고 느리기 짝이 없었다. 간신히 ‘하엔’이라는 먼지 날리는 작은 도시에 도착해 우리의 첫 번째 페루 정거장이 될 차차포야로 가려고 다음날 아침 일찍 떠날 채비를 했다.
“뉴스 안 봤어요? 여기서 바구아(아마조나주의 소도시)까지 인디언들이 길을 막고 시위를 하고 있어요. 트럭이고 버스고 지금은 휴업 상태예요. 아마 이곳에서 기다려야 할 거예요. 지금은 그곳을 지나는 것 자체가 위험해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니까….”

도로를 봉쇄하고 자신들의 정글을 지키려던 아구아루나 청년들. 경찰은 이들의 나무 창이 무기라며 총을 쏘았다. 지와 다리오 제공

도로를 봉쇄하고 자신들의 정글을 지키려던 아구아루나 청년들. 경찰은 이들의 나무 창이 무기라며 총을 쏘았다. 지와 다리오 제공

여인숙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차차포야로 가는 다른 방법을 수소문했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했다. 시위를 하는 곳까지 ‘콜렉티보’(Collectivo·여럿이 함께 타는 택시)를 타고 간 다음, 막힌 도로는 걸어서 통과하는 것이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걸어야 할지 잘 몰랐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작정 콜렉티보에 몸을 실었다. 달리던 차가 속도를 줄이며 바위와 나무로 바리케이드를 친 시위 현장의 시작점에 섰다.

“여기서부터는 더 이상 갈 수 없어요.” 운전사는 돈을 걷으며 말했다.

그들은 페루의 아마존 정글에 사는 아구아루나라는 인디언이었다. 잉카에 정복당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부족 중 하나로, 용감한 전사들로 유명하다. 그들이 아마존 정글을 멀리 떠나 도시로 나와 파란 천막을 치고 도로를 봉쇄한 이유는 페루 정부가 그들의 삶의 터전인 정글의 개발권을 미국의 한 기업에 넘기는 바람에 졸지에 집 잃을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정글은 물리적인 ‘집’이 아니라 영혼과 묶인 그들 자신이었다.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정부에 보상금에도 움직이지 않는 그들이 어리석게만 보였고, 발밑의 장애물 같은 존재였다.

포클레인에 의해 정글은 훼손됐고, 그들이 식수로 쓰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은 진흙탕 물로 변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마지막 방편으로 아마조나주를 지나는 유일한 도로를 막고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얼마를 걸어야 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도시에 나와 사는, 스페인어를 말하는 아구아루나족 남자들에게 “당신들의 시위는 정당하며, 우리와 다른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땡볕 아래 파란 천막 안에서는 아낙네들이 시내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원받은 쌀로 밥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식량은 쌀밥에 감자뿐이었다. 이방인의 응원이 그들을 감동시켰는지, 한 아저씨가 아구아루나족의 상징인 길다란 나무 창을 다리오에게 쥐어주었다.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인디언들이지만 우리의 작고 오래된 디지털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해주며, 외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려달라는 부탁의 말을 했다.

그리고 3일 뒤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인디언 26명이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무기가 없는 그들에게 경찰은 총을 쏘았다. 경찰은 그들의 나무 창이 무기였다고 말했다. 페루의 공영방송은 인디언을 적으로 만드는 데 급급했다. 그들을 야만인이라고 불렀다. 힘없는 그들이 왜 싸워야 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교육받지 못한 정글 사람들이었으니까. 나는 아직도 그날의 뉴스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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