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과 요시가 사는 빌라의 경비는 외국인 둘이 일본 여행을 한다는 말을 듣고 도야마에 가보라고 추천했다. ‘가제노봉’이라는, 풍년을 비는 전통 샤머니즘 축제를 보지 않고 이 나라를 뜨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년의 그는 큰 안경을 썼고 마른 몸에 피부가 검고 반짝이는 것이 건강미가 넘쳐 보였다. 더운 여름날 에어컨이 꺼진 빌라 로비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땀도 흘리지 않았다. 매번 우리에게 자신이 직접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대접했는데, 다리오는 아저씨가 잠깐 자리를 비우면 나에게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다리오에게 더운 날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일은 고문에 가까웠지만 나는 ‘이열치열’이라는 참뜻을 알고 있었기에 커피를 맛있게 받아 마셨다.
떠나는 날 아침 아저씨가 행운을 빌어주었지만,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열차를 13시간 타고도 도야마에 이르지 못했다. 10분만 더 빨리 일어났다면, 아니 열차를 잘못 타고 온 길을 되돌아가지만 않았어도 도착했을 텐데. 하지만 이미 늦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도시의 일본인들도 잘 모르는 ‘요시다’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한 이유는 따로 없었다. 단지 그날 열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최대 거리를 온 것이다. 작은 역의 역무원들은 이미 퇴근한 모양이었고 사람은커녕 동네 똥개도 보이지 않았다. 멀리서 술에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 둘이 비틀거리며 오는 게 보였다. 그들이 비틀거리는 게 아니라 세상이 비틀거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웨어… 유… 프롬?” “아이… 드링크… 사케.” “나이스!”
화장실에서 돌아와 술이 조금 깬 아저씨는 자기 친구가 우리를 귀찮게 하는 게 민망한지 자꾸 말렸지만, 여전히 잔뜩 취해 흔들거리는 아저씨는 어떻게든 대화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버려둬봐! 나 지금 영어로 말하고 있어. 내가 영어로 말할 수 있는지 처음 알았네.” 막차가 온다는 친구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우리와 작별 인사를 하고 그는 떠났다. 다리오는 술에 취한 일본 사람들이 맨정신의 일본 사람들보다 더 좋다고 했다.
그날 밤 마을의 놀이터에 텐트를 치고 잤다. 다음날 컵라면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두 정거장 거리의 더 작은 마을 ‘야히코’로 향했다. 출근 시간이 막 지나고 난 뒤 야히코를 찾는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두 칸밖에 없는 오래된 열차는 우리의 전용 열차가 되었다.
야히코역은 일본에서 유일한 신사 겸 역이라고 했다. 지은 지 100년 된 역 앞의 샘에서 목을 축이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텅 빈 마을에는 식당 3개와 온천수가 나오는 여관이 몇 개 있었지만 모두 문을 닫은 듯했다. 우리는 마을을 에워싼 작은 산으로 들어가서 텐트를 치고 3일 밤을 지냈다. 낮에는 나무 그늘 아래 해먹을 매달고 찌는 더위를 피했고, 해가 지면 공원의 수돗가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나름 즐거운 바캉스를 보내고 있었지만, 가끔 만나는 마을 어른들은 산발한 외국인 둘이 외진 시골 동네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주말이 되자 관광객이 역 앞을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어차피 야히코를 지나는 열차는 하루에 3대뿐이고 두 칸짜리 완행열차에 사람들이 가득 찬다고 해도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평일의 유령도시에 비하면 활기가 돌았다. 주말에만 운행하는 큰 온천장의 셔틀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야히코에 왔는데 온천도 안 가느냐고 했다. 야히코에는 유명하지는 않지만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성스럽게 여겨온 온천이 있었다. 그것도 성분이 전혀 다른 온천 3개가 있어 체질에 따라 선택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찜질방 분위기의 목욕탕이었다. 900엔으로 하루 종일 온천욕을 즐기고 다다미방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야 알았다. 헤매는 데도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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