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짧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를 계획하고 조개가 그려진 표시를 보고 걷던 도중에 샛길로 빠졌다. 왜 언제나 샛길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는 유전자 검사를 하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에 알레르기라도 있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할아버지 집을 연상시키는 산으로 갔다. 스페인에서 웬 알프스인가 의아해할지 모르지만, 아스투리아스의 소미에도 국립공원에 가면 알 수 있다. 스페인은 지중해의 쪽빛 해변과 플라멩코만 있는 게 아니라, 언덕을 덮은 초록 잔디와 색색의 들꽃으로 가득한 들판도 있었다.
협곡 사이로 바람이 들락날락거려 어찌나 춥던지, 그러다 다시 바람이 멈추고 구름에 가려졌던 태양이 제대로 내리쬐는 몇 분 동안은 어찌나 덥던지,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 겉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해야 했다. 첫날 밤 마을 공터에 텐트를 쳤다. 너무 오래 써서 ‘제한온도 영하 1℃’라고 쓰인 표시가 무색한 침낭을 두르고 자다가 네 번이나 눈을 떴다. 텐트 밖 바람 소리와 소의 목에 걸린 종소리가 환상의 앙상블을 이루는 밤, 소들도 추워서 잠을 이루지 못해 거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겨울만큼 추운 봄날의 새벽녘에 잠을 설치는 이가 나뿐만이 아님을 확인하자 동지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덜 상했다. 아침의 단잠이 늦잠으로 이어지고, 텐트 문을 여니 해는 중천에 떠 있고 맑은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은 지붕이 없을 때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떠돌아다니다 보면 더 이상 집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된다. 대신 하늘과 산과 해와 별, 그리고 사람이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집이 없는 우리가 그토록 떠돌이 생활을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목동이라 하기엔 나이가 많은 노인이 나막신을 신고 소를 몰고 지나갔다. 나막신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딸그락거리는 소리와 소 목에 걸린 종소리가 또 다른 음악을 만들어냈다. 노인과 소떼가 눈앞에서 멀어져 사라질 때까지 주시했다. 문득 내 종교관에는 없던 ‘윤회’의 참뜻이 단어가 아닌 마음으로 와닿았다. 천천히 걷는 노인과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가는 소들은 생과 우주를 넘어선 관계라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수많은 생을 거듭하며 소는 전생에 소몰이였고 지금의 소몰이 노인은 전생에 그가 소유한 소였다는, 복잡하지만 간단한 숙명의 그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피구에세스’라는 유난히 작은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집 앞에 홀로 앉아 햇살을 받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인사를 나누며 지나가는 말로 아름다운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자, 노인은 산 중턱에 있는 빈집을 기꺼이 10년 전 가격에 팔겠다고 했다. 가진 돈도 없으면서 솔깃한 우리는 할아버지가 알려준 길을 따라 집을 보러 갔다. 아침부터 종일 걷고도 빈집을 찾아헤매느라 산길을 두어 시간 보너스로 더 걸었지만 마음만은 즐거웠다. 어쩌면 이것이 집을 찾는 운명적 사건이 아닐까 하는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집이 분명 우리를 찾아올 거라는 기대를 잊지 않았다. 우리에게 집은 가격이나 평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운명처럼 만나 사랑할 수 있는 솔메이트(Soulmate) 개념이기에 분명 특별했다. 드디어 할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언덕을 가로지르는 시냇가가 보였다. 돌로 만든 집 앞에는 도끼며 안장이 벽에 걸려 있었고 문 앞에는 나막신도 한 켤레 있었다. “올라.”(여보세요.) 불러도 대답이 없자 다리오가 살짝 문을 열었다. ‘음매’ 하며 소 두 마리가 대답을 했다.
여기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저기엔 당근을 심자! 닭도 몇 마리 키우자! 이 땅과 집의 법적 주인은 따로 있지만 잠시 동안 우리는 진짜 주인이 된 것처럼 이것도 심고 저것도 심어보았다. 쇠똥으로 가득 찬 외양간이 ‘즐거운 나의 집’으로 바뀔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언덕 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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