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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지와 다리오



버스도 히치하이킹하고 공짜로 데리러 오는 천사 운전사도 있고…

경치보다 사람이 아름다운 마르가리타섬
등록 2010-11-10 11:36 수정 2020-05-03 04:26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걸 그랬다.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베네수엘라에 가더라도 그 유명한 마르가리타 섬에는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실제로 마르가리타 섬의 가장 큰 번화가인 ‘포르 라 마르’(Por la Mar)에 도착한 뒤 시몬 볼리바르 광장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고 나니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배차 시간을 기다리며 쉬고 있는 버스 운전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우리가 좋아할 만한 곳이 있다며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우리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남미에서는 말만 잘하면 버스도 히치하이킹할 수 있다.
운전사가 데려다준 해변에서 캠핑을 했다. 마르가리타섬에서 캠핑하는 데 가장 불편한 것은 바로 ‘샤워’였다. 땀으로 얼룩진 몸에 소
금 결정체가 주렁주렁 달리고, 머리에는 하얀 것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해변에 즐비한 레스토랑에는 모두 샤워기가 있었지만 오직 손님에게만 사용이 허락됐다. 샤워기 손잡이 부분을 아예 빼놓은 곳도 많았다. (비싼 음식을 먹는 손님의 발에 묻은 모래를 씻어내기 위해 종업원들은 손잡이를 가져와 샤워기를 틀어주었다.) 물에는 그렇게 짠돌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섬에는 지하수가 없어서 모든 수돗물을 본토에서 끌어다 썼다. 아무리 그래도 물 좀 쓰겠다는데 그렇게까지 문전박대를 하다니…. 나는 별 상관없는 얘기들을 갖다 붙이며, 사회주의를 실현하겠다는 나라가 물도 공짜로 안 주느냐고 괜히 신경질을 냈다. 휘발유 50ℓ가 1달러인 이 나라는 미네랄워터 1.5ℓ가 1달러다.

히치하이킹을 한 버스를 타고 지와 다리오는 해변으로 가서 캠핑을 했다.지와 다리오 제공

히치하이킹을 한 버스를 타고 지와 다리오는 해변으로 가서 캠핑을 했다.지와 다리오 제공

베네수엘라는 이상한 나라였다. 암시장에서 돈을 바꾸면 은행 환율보다 2배 이상이 많았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

에 브라질에서부터 꼬깃꼬깃 접어둔 100달러짜리 10장을 계속 가지고 다녔다. 둘이 베네수엘라를 3개월 동안 여행할 예산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선거철이라서 암시장의 달러 가격이 더 올라간 상태였다. 그러나 이곳에 오면 누구나 한 번씩 당한다는 환전 사기에 우리도 예외 없이 걸려들었다. 연금술사도 아닌데, 분명 세어본 돈의 50볼리바르푸에르테(BF) 지폐가 전부 2BF짜리로 바뀌어 있었다. 예산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그래도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푼타아레나(Punta Arena) 마을에 가는 계획은 실행하기로 했다.

내 마음은 사람들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히치하이킹이 먹힐 리 없었다. 푼타 아레나는 히피나 찾는 마르가리타 섬 변두리에 있는 작은 동네로, 버스는 고사하고 지나가는 차도 20분에 한 대씩 있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서 우리는 우선 걸었다. 길을 걸으면서 분노도 점점 사그라지는 것 같았다. 돈을 잃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의 ‘긍정 에너지’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듯이 긍정 에너지를 불어넣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말없이 걸었다. 땡볕에 달궈진 아스팔트 열기 때문에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반대편 길에서 똥차 한 대가 우리에게 와서 섰다.

“아까 이 길을 지나면서 걷고 있는 당신들을 보았지만 차에 사람이 많아서 세울 수 없었어요. 푼타 아레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에요. 당신들을 데리러 왔어요.”

그는 천사임이 틀림없다. 그의 차는 한국에서라면 여러 번 폐차하고도 남을 만큼 낡았다. 게다가 그는 한손을 쓸 수 없었다. 내가 그의 손을 쳐다보자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오른손은 마비된 지 오래됐지만, 나는 운전하는 걸 아주 좋아해요.”

그는 캠핑하기 좋은 해변의 끝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고, 이 마을은 안전하니까 걱정 말라며 물이 필요하면 동네 사람 아무에게나 부탁하면 된다고 말했다. 마을의 집들은 거의 판잣집이었다.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해변의 부자 레스토랑 사장도 나눠주지 않던 물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아름답다고 소문난 푼타 아레나의 해변에는 쓰레기가 지천에 깔려 있었다. 아마도 아름답다고 소문난 이유는 해변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지와 다리오 ‘배꼽 두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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