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의 입장에서 ‘좋은 사건’이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는 사건을 말한다. 사실관계에 대해서 관련된 사람들의 말이 일치하지 않아 격론이 벌어질 소지가 있고, 처리 과정이나 결론에 대해서도 각기 다른 의견이 있어서 논쟁이 가능한 사건이야말로 법을 바라보는 각양각색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설 로젠버그 부부가 간첩음모 혐의로 처형당한 ‘로젠버그 사건’은 법의 역사를 통틀어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수 있는 ‘좋은 사건’이다.
전세계 지성-미국 정부 대립했던 ‘간첩 사건’냉전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쟁점을 갖고 있고, 당대 지식인들은 이 모든 쟁점을 놓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격렬히 부딪쳤다.
많은 사람들이 로젠버그 부부의 무고함을 믿었다.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장 폴 사르트르는 이 사건을 “법을 빙자한 린치”라고 불렀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장 콕토, 파블로 피카소, 프리다 칼로 등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들이 미국 정부의 조처를 강력히 비난했다. 교황인 피우스 12세마저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사면을 호소했다. 그들에게 이 사건은 사법의 수치요, 국가권력에 의한 살인과 다름없었다.
물론 그런 입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0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지내고 1971년에 죽은 흐루쇼프의 자서전이 사후 20년 만에 공개되었다. 그 책에서 흐루쇼프는 로젠버그 부부가 미국의 기밀을 소련으로 빼돌린 사실을 스탈린에게 들었다고 하면서 소련의 원자폭탄 개발을 앞당긴 그들의 업적을 높이 찬양했다.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흐루쇼프의 자서전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좌파들은 명백한 사실마저 왜곡한다는 것, 그럼에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고 끝내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산 증거가 되었다.
그렇다면 로젠버그 부부에게는 이 사건이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은 1953년 6월19일 금요일에 차례로 처형당한다. 당시 연방교도소에는 전기의자 설비가 없었다. 연방정부는 뉴욕주에서 운영하는 싱싱 교도소에 로젠버그 부부의 사형 집행을 맡긴다. 원래 6월17일로 잡혀 있다가 이틀 연기된 처형은 관례에 따라 밤 11시에 집행될 예정이었다. 어떻게든 집행을 연기해보려는 변호인은 마지막 수단으로 금요일 해가 진 이후는 유대인에게 안식일인데 그때 사형을 집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서 미국 정부는 해가 지기 직전인 저녁 8시께 사형을 집행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3시간 앞당겨 전기의자에 앉게 된 부부는 마지막까지 초연한 자세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들이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이 사건을 놓고 격론을 벌인 세계적 석학들도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E. L. 닥터로의 소설 (The Book of Daniel)는 로젠버그 부부 아들의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줄리어스 로젠버그는 1918년 뉴욕에서 가난한 유대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살이 되었을 때 청년 공산주의자 연합에 가입했고, 그곳에서 장차 아내가 될 세 살 연상의 에설 그린글래스를 만나게 된다. 줄리어스는 21살이 되었을 때 미 육군 통신부대에 들어가지만 6년이 지난 뒤 공산당 가입 사실이 발각되어 쫓겨난다.
로젠버그의 유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통신부대에 근무하던 1942년에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에 포섭되었다고 한다. 그는 소련에 군사기밀을 넘겼고, 마침내는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처남 데이비드 그린글래스(에설 로젠버그의 남동생)를 통해 원폭에 관한 정보까지 빼돌리게 된다. 법정에서 로젠버그 부부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그린글래스에 따르면, 그의 누이인 에설은 소련에 보낼 비밀 메모를 타이핑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반역자 부부는 닥터로의 소설에서 아이작슨 부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사형당한 부모 누명 벗기려 진실 좇는 아들사형 존폐론을 놓고 제시되는 다양한 의견 중에 정치범에 대해서는 사형을 폐지해야 하고 전통적으로 사형을 인정해온 살인죄만을 사형 대상이 되는 범죄로 남겨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견 그럴듯한 타협책으로 보이지만 이는 역사적 진실을 짐짓 외면한 것이다. 법의 역사에서 반역자에 대한 처형은 살인자에 대한 사형 집행 못지않게 뿌리가 깊다.
소설에는 영국에서 반역자를 처벌할 때 사용해온 사형 집행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죄인은 형틀에 매달린 채 숨이 끊어질 때까지 신체를 절단당한다. 먼저 거세당하고, 창자가 꺼내지고, 그렇게 제거된 부분은 죄인이 보는 앞에서 불에 태워진다. 자비심 많은 집행인을 만나면 그때쯤 심장도 제거당하지만, 그렇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마지막에는 말 네 마리에 사지가 묶여 찢겨나가는 의식을 치러야 한다. 네 조각으로 나뉜 몸은 개 먹이로 던져진다.
자신이 속한 체제와 국가의 배신자로 낙인찍힌 사람이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것은 과거의 일만이 아니다. 2001년 미연방수사국(FBI) 요원으로 일하면서 20년 이상 소련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것이 발각되어 전 미국을 충격에 몰아넣은 로버트 핸슨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하루에 23시간을 독방에서 혼자 지내야 한다. 로젠버그 부부가 저지른 죄는(혹은 저질렀다고 의심받은 죄는) 최소한 이런 취급을 받을 정도의 중죄인 것이다.
소설 속에서 부부의 아들이자 화자인 주인공의 이름은 다니엘이다. 베트남전 반전 열풍에 휩싸인 컬럼비아대 도서관에서 졸업논문을 쓰는 그는 반역자의 아들이라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절대로 징집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을 중퇴해도 군대에 끌려가지 않는다. 국방성 앞에서 징병카드를 태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내 파일에 한 줄이 추가될 뿐이다. 정부는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다만 어떤 형식으로든지 정부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못하게만 할 것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만일 내가 군대를 이끌고 정부를 공격한다면, 그때는 그들의 모든 경고가 정당한 것이라고 판명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대의명분을 내세우든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다니엘에게는 여동생이 있다. 부모의 그늘 아래 방황하던 그녀는 자살을 기도한다. 소설은 다니엘이 그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여동생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애써 한켠에 미뤄두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다니엘은 결국 부모의 재판에서 불리한 증언을 한 증인을 찾아나선다. 10여 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온 그 증인은 날마다 디즈니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이미 정신상태가 명료하지 않은 노인과 그 가족 앞에서 다니엘은 부모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억지로 쥐어짜낸 음모론을 들이댄다. 혹시 다른 커플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진짜 스파이 부부는 따로 있었는데, 수사기관의 손길이 좁혀오자 그들을 보호하려고 아이작슨 부부를 간첩으로 몰지 않았느냐는 것이 반역자의 아들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던 다니엘이 필사적으로 던진 마지막 질문이었다.
현실에서 반역자의 아들은 어땠을까? 실제 로젠버그 부부에게는 로버트와 마이클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사형이 집행된 뒤 어떤 친척도 그들을 돌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한 작곡가가 입양을 하게 된다. 둘은 그들의 인생 전부를 바쳐 부모의 억울함을 밝히려고 한다. 책을 쓰고 진보적 활동가를 위한 기금을 만들면서 로젠버그 부부를 반역자라고 여기는 사회에 격렬하게 저항한다.
반전은 2008년에 찾아온다. 로젠버그 부부와 함께 간첩음모죄로 재판을 받고 30년형을 선고받았던(실제로는 17년9개월을 복역했다) 모턴 소벨이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과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실제로 소련의 스파이 노릇을 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의 나이 91살이었다. 평생을 부모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애썼던 반역자의 아들들은 소벨의 자백을 들은 뒤 피눈물을 흘리며 자기들의 부모가 적국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물론 논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설사 줄리어스 로젠버그가 소련의 첩자였다고 해도 아내인 에설까지 공범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몇 년 전에 공개된 대배심 기록을 보면 에설이 비밀 서류를 타이핑했다는 그린글래스의 증언은 거짓말일 가능성도 높다. 에설까지 기소한 것은 당시 FBI가 줄리어스를 압박해 다른 간첩들에 대해 털어놓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다. 줄리어스가 넘겼다는 ‘비밀정보’도 실제 소련이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저급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형까지 당할 범죄는 아니었던 것이다. 소벨의 ‘자백’이 믿을 만한 것인지도 사실 확실하지 않다. 신문에 기사가 나간 직후, 소벨은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항의 서신을 보냈다.
정당한 죗값과 거리 멀었던 냉전시대의 반역죄그러나 과연 이 사건에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쟁점이 로젠버그 부부가 스파이였는지 여부뿐일까. 설사 그들이 스파이였다고 해도 미국 정부는 정말 특별한 훈련도 받지 못한 로젠버그 부부가 원자폭탄 개발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빼돌렸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일까. 오히려 사회의 몇몇 구성원을 반역자로 처벌해서 공포를 만들어내고 내부를 단속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로젠버그 부부의 죄는 소련에 정보를 넘긴 행위 그 자체였을까.
소설 속에서 다니엘은 끝내 부모의 유무죄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내지 못한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냉전의 시대에) 만일 당신이 유대인 공산주의자라면, 반파시즘주의자라면,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진보당 모임에 참석해서 평화를 외치고 공산주의자를 찬양했다면, 만일 당신이 가난했다면, 만일 당신이 이 모두에 해당했다면, 당신은 무엇이 다가올지 알았을 것이다.” 로젠버그 부부를 형장으로 끌려가게 했던 죄, 냉전시대에서의 반역죄란 결국 ‘이 모두에 해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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