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한마디로 축구 인생이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축구선수로 뛰었고, 은퇴 뒤 20년은 방송에서 축구 해설을 했다. 축구는 보기에는 아름다울지 몰라도, 그라운드 위의 선수로서는 말할 수 없이 고약한 스포츠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심판의 눈을 피해 상대를 걷어차는 일이 다반사다. 이도 모자라 고의로 상대를 머리로 들이받는 짓도 하게 된다. 그라운드 위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순서를 바꿔가며 뒤죽박죽으로 섞인다. 물론 비신사적이며, 반스포츠적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그라운드 위에서 반칙과 공격적 플레이는 종이 한 장 사이를 오간다. ‘승리’를 위한 거친 플레이는, 말하자면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된다. 축구는 지구촌에 존재하는 어느 스포츠보다 거칠고 야성적이다. 그 경기를 바라보며 관중은 축구의 열병에 들뜨게 된다.
우리나라 축구선수는 승리에 더욱 민감하다. 어린 선수들도 일단 경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 한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올바른 판정을 한 심판을 ‘사기꾼’으로 매도하기도 했고, 불륜과 로맨스의 경계를 오가며 오로지 승리만을 생각하도록 교육받는다.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까지 한국 축구의 풍토가 그랬다. 이런 문화 속에 나 역시 축구선수로 살았다. 그러니 그라운드에서 승리를 위해 상대편을 거세게 밀어붙여야 했다. 축구선수에게 이런 공격 성향은 승리를 위한 미덕인 것도 사실이다.
1985년 유공에서 축구선수로서의 경력을 접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20년 넘게 그라운드를 누비며 몸에 밴 공격 성향을 털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라운드에 최적화된 성향을 이제는 바꿔야 했다. 동적이고 공격적인 마음의 성향을 정적인 상태로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 변화를 도운 것이 다름 아닌 차와 음악이었다. 특히 차는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게 차를 마시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차를 끓이는 그릇인 다관과 찻잔이었다. 차와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면서 동적인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졌다. 공 대신, 다관과 찻잔이 나의 동반자가 됐고, 나의 연애 상대가 됐다. 그리고 매일 입맞춤을 하는 애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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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가 가장 아끼는 다관과 찻잔은 단 한 가지는 아니다. 차를 알아가면서 다른 종류의 다구를 쓰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 일기나 시간에 따라, 기분과 감정에 따라 다관과 찻잔을 달리 쓰기도 한다. 차 종류에 따라, 다른 종류의 다관과 찻잔이 교체선수처럼 등장하기도 한다.
축구 해설가로서 무수히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그때마다 여행가방에는 늘 다관과 차, 찻잔이 빠지지 않았다. 목이 터져라 마이크에 대고 “골, 골, 골이에요”를 질러대던 내 목청의 원천은 바로 차였다. 그 차를 우려내던 다관은 여행에 항상 동반하는 친구이자 애인이다. 나는 오늘도 이 오랜 애인과 입맞춤을 하며 찻잔을 기울이고 있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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