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식이형 6m, 6m에. 좋아, 좋아. 그대로. 어! 왼쪽, 왼쪽으로 온다.”
지난 9월13일 오후 1시께 중국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시각축구 경기가 열린 올림픽 그린 하키경기장에 조우현(23) 골키퍼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날 상대는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 상대편 공격수인 이반 선수가 한국 골대를 향해 무섭게 돌진해오다 말고 우리 수비수들과 잠시 뒤엉켰다. 이리저리 몸을 부딪치는 선수들 사이로 공이 빠지자 조 선수가 다급한 듯 외쳤다. “뒤쪽! 뒤쪽!” 앞이 보이지 않는 수비수들은 조 선수의 말에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 사이 이반 선수가 빠르게 왼발로 슛을 날렸고, 그의 발에서 떠난 공은 조 선수의 오른쪽 네트를 정확히 갈랐다. 전반 8분.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조 선수가 고개를 떨궜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통하는 법일까. 멀리서 이진원(37) 선수가 “괜찮아”라고 소리쳤다.
장애인올림픽에는 장애인들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비장애인도 선수로 참여해 장애인들과 호흡을 맞춘다. 이번 장애인올림픽에 참여한 우리나라 대표선수 중 비장애인은 조우현 선수와 지준민(19) 선수 2명으로 모두 시각축구 골키퍼다.
영남대 특수체육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조우현 선수는 2006년 포항시각장애인축구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가 시각축구 골키퍼로 활동하게 됐다. 그는 “처음 시각장애인 선수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공이 발에서 떨어지지 않는 드리블은 일반 축구에서도 보지 못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슈팅 능력은 ‘그들의 눈을’ 의심하게 했다. “거짓말 같아 실험 삼아 안대를 쓰고 경기장에 나가봤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불안했다. 사람 소리가 들리면 부딪히지 않을까 걱정됐고,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잘못 가고 있을까 걱정됐다. “눈을 감고 몸을 한 바퀴만 돌려보세요. 방향감각이 사라져요.” 그런데 시각축구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구르고 뛰어다니면서도 정확한 위치를 찾아갔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가 있던 날에도 조 선수가 “6m”라고 사인을 주면 선수들이 골문에서 정확히 6m 거리에서 수비대형을 취했고, “10m”를 외치면 그 위치에서 공격대형을 갖췄다.
경기 끝나면 ‘형들의 안마’ 기대돼조 선수는 2007년 7월 아시안컵선수권선발대회에서 골키퍼로 뛰면서 국제대회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그의 첫 올림픽 출전이다. 벌써 이들과 함께한 시간만 2년이 다 돼간다. “처음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형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걱정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함께 지내보니 똑같아요. 앞이 안 보여서 생활하는 데 힘들 거라는 그 생각이 바로 장애예요.”
그는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올 때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했다. 대부분 안마사인 형들이 몸을 ‘사정없이’ 풀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눈을 뜨고도 골을 많이 먹나요?” 그에게 장난 섞어 물어봤다. “직접 해보세요.” 그의 답이다.
베이징(중국)=글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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