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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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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저씨’ 배우 김석훈 바지는 말레이, 신발은 볼리비아서 신호가 왔다

①헌 옷의 경로
수거함 넣자 한 달 뒤 불타버린 신발
수출업계 “국외 나간 헌 옷, 절반 이상 버려진다”
등록 2024-12-27 21:43 수정 2024-12-28 14:43
배우 김석훈씨가 2024년 7월25일 서울 용산구 미스틱스토리 사옥에서 한겨레21과 만나 옷 추적 프로젝트에 기부할 물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김씨 손에 들린 검은 바지는 말레이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배우 김석훈씨가 2024년 7월25일 서울 용산구 미스틱스토리 사옥에서 한겨레21과 만나 옷 추적 프로젝트에 기부할 물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김씨 손에 들린 검은 바지는 말레이시아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영국의 엘런맥아더재단은 매년 발생하는 세계 의류 쓰레기가 약 4700만t(2017년 기준)이며 이 가운데 87%가 쓰레기로 처리된다고 분석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이가 의류수거함에 넣은 옷이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재활용될 거라 기대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의류수거함에 들어간 헌 옷들은 의류 폐기물이 되어 국내 중고 의류 수출업체를 통해 동남아·아프리카로 판매되는데, 이 지역의 의류 폐기물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러서 상당 부분 재활용되지 못한 채 소각되거나 매립돼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한겨레21은 국내 의류수거함에 버려진 옷들에 스마트태그와 지피에스(GPS·글로벌포지셔닝시스템) 추적기 153개를 달아 이 옷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 살펴보고, 버려지는 헌 옷들이 일으키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보기로 했다.

싱가포르와 인접한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의 파시르 구당 항구에 있는 한 컨테이너 화물 창고. 2024년 11월6일, ‘나의 쓰레기 아저씨’로 불리는 배우 김석훈씨의 검은색 바지에 달린 추적기는 이곳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 바지는 한겨레21 취재팀이 석훈씨에게 기부받아 8월1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 인근 의류수거함에 버렸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뒤, 바지가 한국에서 4500㎞가량 떨어진 말레이시아 조호르주에 있는 항구에 도착한 것이다.

김석훈씨가 기부한 또 다른 물품인 아동용 운동화는 더 먼거리를 이동했다. 한국과 1만7340km 떨어진 볼리비아에서 발견됐다. 서울 강서구의 헌 옷 수거함에 2024년 8월11일 넣은 이 운동화는, 경기도 일산과 인천항을 거쳐 12월4일 칠레에서 신호를 보냈다. 칠레를 통해 남아메리카에 간 이 신발은 12월12일 볼리비아 파타카마야로 이동했다. 해발 3800미터의 고산 지대에 있는 인구 2만 명 남짓의 작은 마을로, 추적기는 위성사진으로 보면, 공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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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월 전국 수거함 넣은 옷의 이동 경로

우리가 입다 헌 옷 수거함에 버린 옷은 어디로 갈까. 한겨레21 취재팀은 이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국내 언론 최초로 헌 옷에 추적기를 넣어 수거함에 넣는 시도를 했다. 한국은 세계 중고의류 수출 5위(2022년 BACI 국제무역통계 기준) 국가인데, 국외로 간 옷이 어디로 가고 어떻게 재활용되는지 제대로 알려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헌 옷 수거함에 버린 옷들의 행방과 재활용·폐기 여부를 추적하기 위해 스마트태그 혹은 지피에스(GPS·글로벌 포지셔닝 시스템) 추적기 153개를 헌 옷에 달아 버렸다. 이 작업을 위해 배우 김석훈·박진희씨, 방송인 줄리안, 펑크 밴드 가수 크라잉넛의 한경록씨,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저자 이소연씨와 한겨레21 구성원들에게 버리려고 했던 옷을 기부받았다. 다양한 의류·신발 및 잡화류가 실험 대에 올랐다. 취재팀은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부소장의 조언을 받아 니트(16벌), 티셔츠(22벌), 남방(14벌), 원피스(11벌), 패딩(9벌), 겨울코트(9벌), 스포츠의류(등산복 포함·10벌), 간절기 재킷(13벌), 바지(26벌), 신발(16켤레), 가방(2개), 특수복 등 기타 제품(모자, 인형, 한복, 기모노 등 5개) 등 12가지 품목으로 나눴다. 그리고 각 물건에 추적기를 달았다. 물품은 중저가 제품들이다. 에이치앤엠(H&M)과 자라, 탑텐, 유니클로 등 패스트패션 의류와 테무·쉬인 등 저가 중국 플랫폼에서 구매한 옷들, 나이키·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 신발 등이 실험 대상이었다. 이 물건들을 7~8월 전국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옷들은 어디로 이동했을까.

서울의 한 의류수거함. 한겨레 조윤상 피디.

서울의 한 의류수거함. 한겨레 조윤상 피디.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넣고 약 4개월이 지난 2024년 12월4일 집계한 결과, 옷·모자·신발 등 31개를 국외에서 발견했다. 153벌 중 20.3%에 이르는 수치다. 취재팀은 구글 스트리트뷰와 위성사진을 통해 국외에서 옷이 발견된 장소가 어떤 곳인지 찾아봤다. 옷에 달린 추적기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됐다. 10개였다. 이어 인도 8개, 필리핀 6개, 타이·볼리비아 각 2개, 인도네시아·페루·일본 각 1개 순으로 발견됐다. 말레이시아로 간 옷들은 10개 중 8개가 항구에 있었다. 석훈씨 바지처럼 조호르주의 파시르 구당 항구 혹은 셀랑고르주 클랑항의 창고 등에서 신호를 보냈다. 석훈씨의 바지처럼 싱가포르 인근 말레이시아 항구로 간 옷들은 인도네시아와 인도, 캄보디아 등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크다.

 

위성사진에 잡힌 말레이 항구, 인도 재활용 창고

말레이시아에 있는 헌 옷의 이동 장소로 특히 유력한 곳은 인도네시아다. 수출업체 유영선 현대이아이 대표는 “말레이시아로 간 헌 옷들은 자국에서 소비하는 게 10% 정도다. 나머지는 주변국으로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재수출되는 나라가 인도네시아”라고 했다. 인도네시아는 중고의류 수입을 규제하는 나라이기에, 한국 수출업체들은 인접국인 말레이시아를 거쳐 인도네시아로 헌 옷을 보낸다.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로 수출하는 게 상대적으로 용이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를 거쳤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서울 도봉구의 수거함에 넣은 티셔츠 한 벌이 발견됐다. 물론 말레이시아를 통해 인도네시아가 아닌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송파구의 헌 옷 수거함에 넣었던 스웨터는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주 클랑항을 거쳐서, 인도로 간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 파니파트에 간 스웨터의 추적기 좌표를 확인한 스트리트뷰. ‘헌 옷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세계의 헌 옷이 수입된다. 구글 스트리트뷰 갈무리

인도 파니파트에 간 스웨터의 추적기 좌표를 확인한 스트리트뷰. ‘헌 옷의 수도’라고 불릴 만큼 세계의 헌 옷이 수입된다. 구글 스트리트뷰 갈무리


취재팀이 보낸 옷 중 두 번째로 많은 옷이 이동한 인도에서는, 추적기가 재활용 공장 창고나 공터에서 주로 신호를 보내왔다. 특히 인도에 도착한 옷 8개 중 5개가 파니파트라는 시로 이동했다. 파니파트는 ‘헌 옷의 수도’라고 불리는 도시다. 세계에서 수입한 옷을 재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섬유 폐기물이 증가하고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 포천시의 한 수출업체에서 수출할 옷이 포장돼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경기 포천시의 한 수출업체에서 수출할 옷이 포장돼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필리핀으로 보낸 옷들이 신호를 보내오는 곳은 지도상으로는 좌표를 알기 힘든 곳이 많았다. 인근에 야적장이 있는 시골에서 2벌, 용도를 알 수 없는 창고에서 2벌, 중고시장에서 2벌 등이 신호를 보내왔다. 타이로 보내진 신발 두 켤레는 타이 동부의 롱끌르아 시장에서 발견됐다. 롱끌르아 는 타이과 캄보디아의 국경시장으로, 중고 신발이 주로 팔린다.

베레모는 서울의 한 헌 옷 수거함에서 출발해 페루로 이동했다. 구글 지도 갈무리.

베레모는 서울의 한 헌 옷 수거함에서 출발해 페루로 이동했다. 구글 지도 갈무리.


남미의 페루로 간 베레모는 볼리비아 국경지대 훌리아카 에 있다가, 볼리비아와 더 가까운 한 산골 마을로 이동했다. 위성지도로 보면, 이 모자는 마을 외진 공터에 있어서 매립됐을 가능성도 있다. 볼리비아로 간 남방은 해발 3735m의 도시 오루로시의 시내에 있다.

추적기를 단 옷이 출발한 지 4개월, 아직 의류는 종착지로 가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중고시장이나 항구, 창고에 머물고 있는 옷들은 앞으로 다른 나라나 다른 장소로 이동할 가능성도 크다. 동남아시아나 인도로 보내진 옷도 재수출 등을 통해 아프리카나 남미로 이동하기도 한다.

헌 옷들이 간 국가들은 중고의류 수입을 금지하는 곳이 많았다. 자국 제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2015년부터 헌 옷 수입을 금지했고, 필리핀 또한 1960년대부터 옷 수입 금지 규정을 두고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 또한 중고의류 수입을 제한(페루는 기부 물품은 통관 허용)한다. 하지만 한국 중고 옷들은 편법·불법적으로 이런 규제를 뚫고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동은 선진국들의 중고의류가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는 흐름과도 같은 맥락이다. 엘런맥아더재단의 2024년 보고서를 보면, 중진국·선진국 중심 경제협력개발기구(오이시디·OECD) 국가들은 전세계 중고의류 수출의 71%(2021년 기준)를 차지했다. 미국·유럽이 아프리카·남미로 옷을 보내는 반면, 한국은 가까운 동남아시아나 인도로 옷을 보낸다는 점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나로 수출된 헌 옷, 상인들이 강에 버리고 있더라”

수출업계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수출된 옷 절반 이상이 결국 버려진다고 본다. 취재팀 또한 현지 취재를 통해 이같은 추정을 눈으로 확인했다.(2부 기사 참고) 의류 수출업체인 유창트레이딩 유종상 대표는 “가나에 갔었는데, 중고상인들이 주변 강에 헌 옷을 버리고 있었다. 이런 사례들처럼 해당 국가에서는 주로 헌 옷을 팔다가 못 파는 걸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외로 간 의류 일부는 재판매나 재활용 시도도 없이 바로 버려지기도 한다. 애초에 재활용이나 재판매가 어려운 옷을 수출한 경우다. 수출업체에서 일하는 ㅈ씨는 “싼 가격으로 쓰레기에 가까운 옷을 수출할 옷에 섞어 보내는 사례도 있다.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소각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많은 헌 옷이 인천항을 통해 수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인천 중구 인천컨테이너터미널. 배우 김석훈씨의 바지도 이곳을 거쳐갔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많은 헌 옷이 인천항을 통해 수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인천 중구 인천컨테이너터미널. 배우 김석훈씨의 바지도 이곳을 거쳐갔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2024년 12월4일 기준 실험 대상인 153개의 옷을 추적한 결과, 향후 국외로 수출될 것으로 보이는 헌 옷들도 많았다. 먼저 항구에 머물러 있는 옷이 32벌에 달했다. 이 가운데 인천항에 있는 옷이 21벌로 가장 많았다. 배우 박진희씨의 재킷은 서울 구로구 수거함에 넣었는데, 인천 중구의 항구로 이동했다. 크라잉넛 한경록씨의 공연용 셔츠, 이소연 작가의 스웨터도 각각 서울 동대문구, 경남 창원에 있는 헌 옷 수거함에서 인천항으로 향했다. 줄리안이 건넨 티셔츠도 경남 창원시의 한 의류수거함에 투입했는데, 가까운 마산합포구 가포신항만 인근으로 간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항구로 이동하지는 않았지만, 헌 옷 수출업체로 보내져 곧 국외로 보내질 가능성이 있는 의류들도 있었다. 확인된 것만 21벌이 이런 옷이다. 폐기용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지만, 수출업체의 사정에 따라 현재 재고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유영선 대표는 “헌 옷이 계절이 바뀌는 가을에 조금 많이 수거되고, 겨울에는 비수기여서 수거가 안 된다. 겨울을 대비해서 나머지는 보관해놓는다”고 했다. 헌 옷 수출업체 ㄱ무역 실장은 “어떤 공장은 국외와 거래선이 좋아서 바로바로 수출된다. 그런데 아닌 곳도 있다. 그런 공장은 재고가 남는다”고 했다.

153벌 중 국외에서 발견됐거나, 항구에 있거나, 수출업체에 있는 것을 합하면 84벌로 절반이 넘는다. 추적기 작동 오류 등으로 행방을 알 수 없는 옷들이 40여 벌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70~90%가량이 수출된다고 말하는 수거·수출업체 관계자들의 추정이 맞아떨어진다.

 

4개월 만에 8개국으로… 항구서 대기 중인 옷도 수십 벌

그렇다면 수출된 옷은 어떻게 타국으로 떠나게 된 걸까. 취재팀은 이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추적기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경기 포천과 광주의 의류 수출업체, 남양주의 의류 수거업체를 방문해 취재했다. 헌 옷들은 수거-분류-수출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로 간 배우 김석훈씨의 검은색 바지도 이런 방식으로 이동했다.

■수거 석훈씨 바지는 2024년 8월12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의류수거함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이틀이 지난 8월14일 이동을 시작했다. 헌 옷 수거함 수거차량에 실린 게 이때로 보인다. 옷은 수거차량의 이동 경로에 따라 이날 마포구 일대를 한 바퀴 돈 뒤 저녁 늦게 경기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에 도착했다.

추적기를 살펴보니 헌 옷 수거함에 들어간 옷의 약 80%가 10일 안에 수거(추적기 첫 이동을 수거로 집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거업체가 자주 방문하는 곳은 이틀이나 사흘 정도면 옷들이 이동한다. 수거업체에서 일하는 40대 직원 조아무개씨는 한겨레21과 만나 “헌 옷 수거함이 다 차면 20㎏ 정도 된다. (수거함이) 다 차지 않아도, 일주일에 한 헌 옷 수거함에서 많을 때는 세 번 정도 수거를 한다”며 “재활용이 안 되는 담요 같은 것도 수거함에 많은데, 저희가 폐기물 처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경기 남양주시의 한 수거·수출업체 관계자가 헌 옷을 수거하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경기 남양주시의 한 수거·수출업체 관계자가 헌 옷을 수거하는 모습. 한겨레 조윤상 피디.


■분류 석훈씨의 바지는 헌 옷 수거업체가 몰려 있는 경기 고양시를 기반으로 움직이다가, 8월20일 파주시의 한 장소로 이동했다. 취재팀이 확인해보니, 파주의 이곳은 의류 수출업체였다. 수출업체는 여기서 옷을 수출할 수 있는 상품인지 아닌지 분류하는 작업을 한다. 수출업체에 들어온 의류는 분류 작업을 통해 180종류로 분류된다. 유영선 대표는 “바지 종류면, 반바지·청바지·면바지·등산바지 등 20가지다. 티셔츠, 아동복, 패딩, 블라우스류 등도 세부적으로 나눈다”고 했다. 수거된 옷은 주로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분류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걸러져 아예 폐기되는 것도 10~20% 정도 있다. 유종상 대표는 “수거된 옷이 들어오면 컨베이어 라인을 태운다. (…) 그 과정에서 찢어지거나 오염된 건 쓰레기로 처리된다. 하루에 한 35~40t 헌 옷을 분류하면, 3.5~4t 정도가 쓰레기로 나온다”고 했다. 인조가죽처럼 습한 환경에 녹아 수출이 어렵거나, 에코백·한복 등 수입국에서 수요가 없는 물품도 걸러져 쓰레기가 된다.

경기 포천시의 한 수출업체에서 이주노동자가 헌 옷을 분류하고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경기 포천시의 한 수출업체에서 이주노동자가 헌 옷을 분류하고 있다. 한겨레 조윤상 피디.


■수출 석훈씨의 바지는 폐기되지 않고 수출 대상 품목으로 분류됐다.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된 옷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분류를 마친 헌 옷은 50㎏, 70㎏, 100㎏ 등으로 묶인다. 수거시에 헌 옷은 ㎏당 600원인데, 수출할 때는 품목이나 수출 국가별로 천차만별이다. 석훈씨 바지는 수출업체에 도착한 지 일주일 뒤인 8월26일 서쪽으로 이동했다. 이날은 경기 김포시에서 신호가 끊겼다. 8월30일부터는 서해 바닷가 인근에서 위치를 전송했다. 이곳은 인천 중구 인천컨테이너터미널이었다. 그로부터 약 두 달이 지난 10월24일, 옷은 말레이시아 조호르주 파시르 구당 항구에서 발견됐다.

 

인조가죽 신발은 버린 지 한 달 만에 불탔다

수출되지 않고 국내에 남는 옷들은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불타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팀이 추적기를 단 옷·신발 중 태워진 것으로 파악되는 물품은 5개다. 특히 신발 두 켤레(서울 영등포구 투입)와 원피스(서울 용산구 투입)는 수거되고 약 한 달 만에 경기 평택시의 한 민간 소각장으로 이동했다. 이 소각장 관계자는 “의류만 따로 들어오는 것은 없고, 공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이나 생활폐기물만 처리하고 있다”며 “들어온 쓰레기는 열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다”고 했다.

수출업체를 거친 헌 옷들은 ‘생활폐기물’에서 ‘산업폐기물’(사업장 폐기물·공장 등에서 나온 쓰레기)로 바뀌어 소각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활폐기물은 지역자치단체가 관리하고 공공 소각장에서 주로 처리되지만, 산업폐기물은 민간업체가 주로 소각한다. 그러니까 헌 옷 소각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려운 민간 영역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소각장이 아닌 소각로가 있는 염색·섬유 공장으로 이동한 옷들도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출발한 코트와 강원 영월군에서 출발한 등산복 상의는 경기의 한 도시에 있는 섬유 공장 2곳(옷마다 다른 공장)에서 위치 신호가 끊겼다. 두 공장은 소각로를 보유하고 있다. 일부 섬유 공장의 중고의류 소각은 불법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공장들은 지정된 품목을 환경부에 신고한 양만큼만 소각해야 한다. 그러나 폐의류의 경우 섬유·염색 공장이 이를 지키지 않고 무허가로 소각하기도 한다. 선박 운임비용 상승과 국제 헌 옷 이동 규제 강화로 헌 옷 수출업계가 어려워진 탓에, 저렴하게 헌 옷 쓰레기를 처리하려는 시도다. 수출업체 관계자 ㅈ씨는 “헌 옷 양 대비 처리해야 할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소각 가격은 비싸고 수출 사정은 좋지 않아 여력이 없다. 섬유 공장에서 신고하지 않고 더 싸게 소각해준다고 하고 태우는 경우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헌 옷 수거함에 넣은 옷 중 수출하지 않는 옷들은 소각된다. 취재팀이 보낸 의류·잡화 3개가 도착한 경기도 평택의 한 소각장. 한겨레 조윤상 피디.

헌 옷 수거함에 넣은 옷 중 수출하지 않는 옷들은 소각된다. 취재팀이 보낸 의류·잡화 3개가 도착한 경기도 평택의 한 소각장. 한겨레 조윤상 피디.


재판매 의류는 전체 1%… 옷 쓰레기를 떠넘기는 한국

태우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도 일부 있다. 전체 헌 옷 수거량의 10%는 산업용 기름걸레로 재활용한다. 선박, 기계나 바닥 등을 닦는 용도다. 일반적으로 면 소재 헌 옷이 주로 쓰인다는 게 수출업자들의 말이다. 실제로 배우 박진희씨의 카디건은 수출업체를 거쳐 경기도 포천의 산업용 기름걸레를 만드는 회사로 이동했다.

수출업계 관계자들 말을 들어보면, 재판매되는 의류는 전체 중고의류의 1% 안팎이다. 취재팀이 보낸 추적기에도 옷이 구제 의류 가게에서 국내 재판매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누군가 다시 입겠지’라며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넣으며 했던 막연한 기대는 현실이 아니다. 취재팀이 153개의 추적기로 살펴본 헌 옷의 여정은 대부분 태워지거나 매립지로 향하는 과정이었다.

수출되지 않고 국내에 남은 옷은 소각됐고, 재활용이나 재사용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출된 헌 옷들 또한 대부분은 인도·말레이시아·필리핀·타이 등 개발도상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재판매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매립지와 소각장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이 과정은 정당하다 말할 수 없다고 본다. “물론 그 나라들도 (중고의류 수입) 수요가 있어요. 중고의류 수출업체들이 비도덕적이고, 문제라고만 얘기하긴 어려워요. 그런데 그 나라에서 절반은 안 입고 버려진다고 보면, 이건 쓰레기를 수출하는 거죠.”

최근 유행하는 패스트패션(자라, H&M 등 저가 의류)과 울트라패스트패션(테무·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기반 저가 의류) 옷들은 대부분 합성섬유 소재다. 취재팀이 보낸 옷 중 소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74개였는데, 이 중 66개(89%)가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등 합성섬유로 이뤄졌다. 합성섬유는 매립할 때 많은 양의 메탄가스를 배출하고, 잘 썩지도 않는다. 불법 소각시에는 유독가스도 뿜어낸다. 합성섬유에서 나온 미세플라스틱은 강과 바다를 오염시킨다. 한국은 이 모든 오염 또한 헌 옷과 함께 개발도상국으로 보내고 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조윤상 피디 jopd@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곽진산 기자 kjs@hani.co.kr·유나현 인턴기자 gamma25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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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버린 수거함 속 ‘헌 옷’ 어디로 갈까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6616.html

*한겨레21 '당신이 버린 옷의 최후' 보도는 12월27일부터 2025년 1월2일까지 매일 이어집니다. 한겨레21 통권호(1545호)로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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