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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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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 학벌? 경력? 나는 왜 떨어졌을까

<한겨레21> 여기자의 ‘경력 단절 여성’ 위장취업 실패기
결론은 “문고리라도 잡고 지금 직장에서 버텨야 한다”
등록 2013-12-06 13:39 수정 2020-05-03 04:27
여기자(38)가 취업시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목표는 ‘연봉 2500만원 받는 정규직 사원’이 되는 것으로 정했다. 기자 신분은 밝히지 않았다. ‘위장취업’이다. 지난 6월 정부가 지원하는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집단상담’에서 성격유형과 직업선호도, 이미지 컨설팅을 받았다. 그 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신입·경력사원 채용의 문을 5개월간 두드렸다. 경력 단절 여성만을 뽑은 CJ그룹의 리턴십 프로그램 1기에도 지원했다. _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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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남은 반찬이나 야식 자주 먹죠?” 이미지컨설턴트가 내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몸은 내가 사회생활을 할 준비가 됐음을 보여주는 겁니다. 몸 관리가 자기계발의 출발점이에요.” 강사는 살부터 10kg을 빼야 한다고 했다. “커리어우먼의 옷차림은 하루아침에 가능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자로 일하면서 늘어난 것은 술과 몸밖에 없다는 동료들의 농담이 떠올랐다. 강사는 진담이었다. “뚱뚱하면 게으르고 둔해 보여요. 아무런 긴장감과 준비 없이 ‘퍼질러’ 지냈다는 그런 느낌이에요.”

#장면2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집니다.” 내 MBTI(자기보고식 성격유형지표) 성격유형검사 결과를 보며 MBTI 전문가가 이렇게 분석한다.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시간 제한을 지키지 못하죠. 신속한 판단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합니다.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지 않은 전업주부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머릿속을 여러 생각이 떠다녔다. ‘12년간 날마다 기사 마감 시간을 맞췄는데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내가 마감 때 괴로운 게 타고난 성격 탓인가.’

#장면3

“흥미와 능력은 구별돼야 합니다.” ‘직업선호도’ 검사 결과지를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는데 직업상담사가 다가왔다. 내 흥미 육각형은 한쪽으로 찌그러진 모양이었다. 진취형(E)·사회형(S)은 너무 크고 현실형(R)·관습형(C)·예술형(A)은 너무 작았다. 특정 분야에 관심이 뚜렷하다는 의미다. 문제는 그것이 내 능력·경험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라고 직업상담사가 설명했다. “보험설계사, 부동산컨설턴트, 호텔관리자를 직업으로 추천합니다.” 기자는 예술형 대표 직업으로 소개됐다. 직업선호도 검사 결과로 보면 나와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직업’이다.

내게 어울리는 직업이 보험설계사?

지난 6월24~29일 서울지역 여성새로일하기센터에서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재취업 집단상담’을 받았다. 갓 돌이 지난 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나온 20대부터 큰 식당을 운영하다 망했다는 50대까지 연령대도, 재취업 이유도 다양했다. 첫쨋날 자기소개를 이렇게 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어요. 결혼 등으로 취업하지 못하고 뉴스 번역·통역 아르바이트를 틈틈이 했습니다. 이제 경영학·신문방송학 전공을 살려 홍보·마케팅 분야에 재취업하고 싶어요.”

돌직구가 날아왔다. “올해 졸업한 젊은 친구들이 있는데 왜 기업이 당신을 뽑아야 하죠? 회사 입장에선 경력이 있더라도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을 선호해요. 경력도 없는데 나이는 많고 무엇을 내세울 건가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직업상담사가 물었다. “스스로를 설득할 논리와 강점이 없으면 당연히 회사를 설득할 수 없어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6월 ‘위장취업’을 시작할 때 나는 서류전형에서 수없이 떨어질 줄 몰랐다. 2001년 캐나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 석사를 받고 돌아와 언론사에 지원할 때 서류전형에서 불합격한 적이 없었다. 필기전형에서는 몇 차례 고배를 마셨지만 6개월 만에 기자가 됐다. 12년 만에 재취업에 나서는 것으로 ‘위장’했지만 ‘연봉 2500만원 받는 정규직 사원’이라는 목표가 비실현적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취업전문가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경력 단절 여성의 평균 월급은 120만원이에요.” 특별한 장점도 없고 단절 기간도 10년이 넘은 내가 ‘무모한 도전’을 한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반문했다. “해외에서 저널리즘 석사를 했는데 그건 장점이 안 되나요? 인턴기자 생활도 현지에서 했어요. 통역도 할 수 있어요.” 날카로운 충고가 이어졌다. “졸업한 대학이 미국 명문대도 아니잖아요. 통·번역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졸업자가 훨씬 유리해요.” 학부는 국내 ‘지잡대’(지방 잡스러운 대학) 출신 아니냐는 말은 차마 내뱉지 않는 듯했다.

다른 직업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경력이 없으니 단순 사무지원이나 시켜야 하는데 유학파니까 오히려 껄끄럽죠. 가뜩이나 나이도 많은데 말입니다. 학력란에서 아예 유학을 빼면 중소기업 인턴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몰라요.” 이미지컨설턴트는 외모를 더 가꾸라고 주문을 외웠다. “재취업에서 최고의 스펙은 ‘동안’이에요.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도록 온갖 노력을 해야 해요. 가르마가 없는 짧은 머리로 우선 바꿔보세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몸무게는 엄청 늘었는데 다이어트는 만날 작심삼일이다. 이력서에 써넣을 어학시험 성적표도 하나 없고 컴퓨터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스펙인 나이만 먹었구나.’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취업준비생들이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려고 그토록 애쓰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헬스장·컴퓨터학원에 등록하다

불안감에 나도 스펙을 준비했다. 첫째, 헬스장에 등록했다. 둘째, 오픽(OPIc·영어 말하기 시험)을 신청했다. 셋째, 컴퓨터활용능력2급 강좌를 수강했다. 그러면서 취업 포털에 홍보·마케팅 분야 채용 공고가 날 때마다 이력서를 냈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는 끝내 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지난 11월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는 속 빈 강정이었다. 6천 개 시간제 일자리를 약속한 삼성그룹의 인사담당자는 고졸 신입사원 수준의 일자리로 월급은 100만원 정도라고 밝혔다. 그것도 2년 계약직이다.한겨레 김봉규

지난 11월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는 속 빈 강정이었다. 6천 개 시간제 일자리를 약속한 삼성그룹의 인사담당자는 고졸 신입사원 수준의 일자리로 월급은 100만원 정도라고 밝혔다. 그것도 2년 계약직이다.한겨레 김봉규

때마침 CJ그룹이 경력 단절 2년 이상인 여성만을 인턴으로 뽑는 ‘리턴십 프로그램 1기’를 모집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가 지원할 수 없다니 승산이 있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7월4일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채용설명회. 여성 1천여 명이 북적였다. 아이를 업고 온 이도 있고 커리어룩으로 차려입은 이도 있었다. 질문과 답변이 끝없이 오갔다. “경력과 나이 가운데 어떤 게 중요한가요?” “경력이오.” “경력이 아예 없으면요?” “힘들지만 사무지원 분야에 지원해보세요.” “파트타임이지만 연장근무를 하지 않나요?” “아니요, 연장근무수당이라는 게 아예 없습니다.” “복리후생은 전일제와 시간제가 차이가 있나요?” “똑같습니다.” “월급은요?” “근무시간에 비례합니다. 전일제의 절반이라고 보면 됩니다.” 직장 경력이 없는 나에게 인사담당자는 CGV 사이트 운영지원을 추천했다. 시간제라서 연봉 2500만원에는 못 미쳤다. 하지만 ‘대기업 정규직 사원’이니까 최종 합격하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7월8일 오후 4시50분 리턴십 입사지원서를 제출했다. “잠시 꿈을 ‘쉰다’는 마음으로 결혼했는데, 그 ‘쉼’이 어느덧 10년 가까이 됐습니다. ‘CJ 리턴십’ 프로그램 공고를 보며, 가슴에 묻었던 꿈이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또다시 좌절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러나 두드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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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CJ 리턴십 관련 기사가 떴다. ‘경쟁률이 얼마나 됐을까.’ 신문 제목을 보고 뜨악했다. ‘17 대 1.’ 32개 직무 150여 명 선발에 2530명이 지원했다. CJ는 애초에 1천 명 정도 지원할 것으로 예상했다. 나이는 30대(51%)와 40대(36.6%), 학력은 대졸 이상(86.5%)이 압도적이었다. 영어·중국어는 물론 베트남어·스페인어·인니어 등 언어 능통자가 많았다. 약사·수의사 등 전문 자격증 보유자도 있었다.

서류전형 발표가 예정된 7월12일, CJ 누리집을 들락거렸다. 예정 시간인 오후 5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결과가 뜨지 않는다. ‘합격자들한테만 개별적으로 연락한 게 아닐까.’ 불안함이 커져가는데 문자메시지가 왔다. “발표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문자와 이메일로 안내하겠습니다.” ‘희망고문’이 계속됐다. 저녁을 대충 때우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컴퓨터 주변을 맴돌았다. 밤 9시38분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 “채용 누리집에서 전형 결과 확인이 가능합니다.” 심호흡을 하고 로그인을 했다. ‘합격.’ 재취업에 도전해 서류전형을 처음 통과했다.

내 인성이 CJ엔 적합하지 않았던가

‘필기시험은 IQ 테스트와 비슷한 적성검사일까, 아니면 정답을 알 수 없는 인성검사일까.’ 전례가 없는 리턴십 채용이라 기본 정보조차 없었다. ‘CJ 인·적성검사(CAT) 문제집이라도 한 권 사야겠다.’ 7월1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더니 품절이었다. CJ 인·적성검사 교재를 내는 출판사가 여러 곳인데 한 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삼성·LG·롯데 등 다른 그룹의 인·적성검사 문제집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아줌마들이 사가서 동났다. 추가 주문했는데 내일이나 들어온다.” 서점 직원이 말했다. 필기시험 응시자가 1776명이나 됐기 때문이다.

7월18일 필기시험장. OMR 카드 답안지를 받고 인성검사 문항을 풀었다. 비슷한 질문이 조금씩 비틀어져 반복됐다. “오늘이 마감날이다. 가까스로 회계 결산을 끝냈는데 뒤늦게 오류가 발견됐다. 오류를 고치면 마감일을 지킬 수 없다. 당신이 회계담당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A. 오류가 있는 회계 결산을 제출하더라도 마감일을 지킨다. B. 마감일을 넘기더라도 오류를 바로잡은 회계 결산을 제출한다.” ‘오류가 없는 회계 결산을 마감일에 내는 게 정답이 아닐까.’ 선문답이 답답하기만 했다.

CJ는 내 인성이 부족하다고 7월24일 오후 5시15분에 공표했다. “불합격 소식을 전해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면접 전형에 모시지 못해 송구스러습니다. 오랜 경력 단절을 딛고 용기 내 지원한 당신의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도전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갈 기원합니다.” 필기시험 응시자 10명 중 2명만이 면접에 갔다고 했다. 다수가 불합격이라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됐다.

CJ에 이어 공기업과 대기업도 경력 단절 여성을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채용하겠다고 나섰다. ‘몇 개월 더 도전하면 재취업할 수 있을까.’ 궁금해 10월30일 ‘2013년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에 참가했다. 전날 한국철도공사·한국전력·국민연금공단 등 공공기관 136곳이 시간선택제 일자리에 1027명을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가장 많은 인원(84명)을 뽑겠다고 선언한 철도공사 상담 부스에 앉았다. “어떤 직무에서 선발할지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채용하겠다는 입장만 밝힌 것입니다.” 상담자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속 빈 강정 ‘시간선택제 일자리 박람회’

11월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도 속 빈 강정이었다. 삼성그룹 인사담당자는 20개 계열사가 채용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 6천 개는 “고졸 신입사원이 하던 일”이라고 말했다. “월급은 100만원 정도”라며 “2년 계약직”이라고 덧붙였다. 2년 뒤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만 전일제로 바꿀 계획은 없다. 그마저도 경력이 없는 나는 지원 자격이 아예 없었다. 2년 경력이 필수였다. SK그룹은 월급 100만원도 받지 못하는 텔레마케터직에 경력 단절 여성을 뽑겠다고 했다. 그나마 신한은행이 은행 창구에서 일할 ‘텔러’(200명)를 모집했다. 연봉은 1800만원이고 성과에 따라 전일제로 전환한다. 다만 ‘금융권 경력 우대’라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나는 또 후순위로 밀려날 것이다.

경력 단절을 겪은 한 선배가 말했다. “육아로 쉬었던 여성을 더 나은 직급으로 받아들이는 회사는 없다. 수평 이동도 힘들다. 문고리라도 잡고 현재 일터에서 무조건 버텨야 한다.” 지난 5개월간 재취업에 도전해 실패하며 얻은 내 결론이기도 하다. 여기자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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