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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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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려라, 열릴지도 모른다

17 대 1 경쟁 뚫고 ‘CJ 리턴십 프로그램’ 합격한 세 엄마들
“포트폴리오에 ‘나만의 스토리’까지 치밀하게 준비했다”
등록 2013-12-07 14:14 수정 2020-05-03 04:27
김명진

김명진

지난여름 다시 일하고 싶은 엄마의 열망은 뜨거웠다. 출산·육아 등으로 일터를 떠난 경력 단절 여성을 채용한 CJ그룹의 ‘리턴십 프로그램 1기’에 2530명이 몰렸다. 경쟁률은 17 대 1로 치솟았다. 내년 1월에는 2기를 뽑는다. 새로운 채용시장이 떠올랐는데 그 흔한 최종 합격기조차 찾아볼 데가 없다. 이 ‘돌아온 언니들’을 만나 합격 비결과 리턴십 과정을 물어봤다. 엄지미(40·CJ제일제당), 전수경(36·CGV), 이은주(33·CJ대한통운)씨는 “‘설마 내가 될까’라는 의심을 접고 지금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최종 합격한 비결이 무엇인가.

엄지미(이하 엄)-중소기업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던 경력만으로 대기업에 들어갈 순 없다고 판단했다. CJ 소비자모니터 패널인 톡톡주부연구원을 했지만 이력서 경력란에는 쓸 곳이 없었다. 다행히 포트폴리오를 첨부할 수 있었다. 내가 왜 CJ제일제당의 마케팅 기획자로서 합당한지 ‘나만의 스토리’를 첨부했다. “전공이 원예학이라서 식품의 원료인 채소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수입식품 회사를 다니며 국제 무역 동향을 파악했고 모니터 패널로 활동하며 CJ제일제당 제품과 소비자 반응을 연구했다.”

전수경(이하 전)-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할 때 각양각색의 승객을 만났다. 대부분 친절하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를 만한 고객도 응대해야 한다. 10년을 그렇게 일했으니 분명 나만의 서비스 기술이 생겼을 것이다. 그 노하우를 CGV에 잘 적용하겠다고 면접 때 강조했다.

“스펙보다 적응 가능성 봤다더라”

이은주(이하 이)-내가 어떻게 뽑혔느냐고 인사담당자에게 물었다. 최고 스펙을 뽑기보다는 CJ에 적합하고 잘 적응할 사람을 채용했다고 말하더라. 경력 단절 여성을 채용할 때 회사가 걱정하는 키워드가 있다. 예를 들면 풀타임이 어렵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힘들다, 어린 직원과 어울리지 못한다 등등이다. 이런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으며 다시 일할 준비가 됐는지 점검했다.

대기업 인사팀에서 8년 가까이 일하던 이은주씨는 2011년 11월 직장을 그만뒀다. 채용 시즌마다 교육하러 몇 주씩 지방 출장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께 아이를 맡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곧 한계에 다다랐다. 10년간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한 전수경씨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어린데 집을 오래 비우는 비행 생활을 계속할 순 없었다. 2~3년이 지나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여유가 생기자 자꾸 눈이 밖으로 향했다. 그때 CJ 리턴십 프로그램 공고를 발견했다.

-리턴십 프로그램이 왜 매력적이었나.

-시간제 일자리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일자리의 질이었다. 텔레마케터나 캐시어가 아닌 양질의 일자리라는 점에 끌렸다. 게다가 근무시간이 4시간이라면 아이 때문에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고도 일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채용시장에서 3개월, 6개월만 경력이 끊겨도 일거리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일에 대한 감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2~3년 육아에 전념하던 여성을 경력사원으로 뽑겠다고 대기업이 나섰으니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였다.

-아이가 학교 갔을 시간을 투자해 ‘엄지미’라는 내 이름을 되찾을 수 있으니까.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내 이름이 녹아 있는 제일제당 제품이 나오면 풀타임으로 전환할 길도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젊을 땐 일하지 말라던 남편도…

CJ는 전일제와 시간제로 나눠 입사 지원을 받았다. CJ 리턴십을 밟은 157명 가운데 시간제는 95명, 전일제는 62명이었다. 이은주씨는 전일제이고 전수경·엄지미씨는 시간제를 선택했다. 현재는 본인이 원하더라도 시간제가 전일제로 전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리턴십 제도가 뿌리내리면 시간제·전일제 호환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CJ 관계자는 ‘2013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서 말했다.

-채용 과정은 힘들지 않았나.

-다 재미있었다. OMR 카드 작성도 10년 만에 하니까 시간이 모자랐다. 면접에 가려니까 옷도 없더라. 물어보니 첫 월급은 다 옷을 사는 데 썼다고 하더라.

-리턴십 6주간이 가장 힘들었다. 나도 나를 평가하고 회사도 나를 평가하는 시기였다. 내가 다시 직장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점검하며 긴장을 지속했다.

-리턴십 첫쨋주는 낯선 출퇴근 시간에 일부 직원들이 당황했다. 늦게 출근해 일찍 퇴근하니까. 바쁜 시간에 먼저 나가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나중엔 출퇴근 시간을 먼저 챙겨줬다.

-가족의 반응은 어떠했나.

- “회사는 아빠가 가잖아”라고 아이가 자꾸 물어서 타일렀다. “엄마도 아빠랑 똑같이 회사 가는 거야. 하지만 유치원을 갔다 왔을 때 엄마는 집에 와 있을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엄마가 일하면 더 예쁜 장난감을 사줄 수 있다고도 꾀었다. (웃음)

- 젊었을 때 남편은 일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40대 중반이 되니까 불안감이 생겼나보다. 회사에서 임원이 되지 않으면 물러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니까 아내가 직장일 하는 걸 자연스레 수용한다. 아이도 엄마가 일하는 걸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네가 일해서 참 좋다”는 친정아버지의 말에 엄지미씨는 눈물을 쏟았다. “아버지가 CJ 관련 정보가 눈에 띄면 전화해 알려주고 리턴십 내내 ‘우리 딸은 잘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딸이 나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전 세대와 똑같이 전업주부로 머무는 게 그동안 안타까웠던 거다.” 원예학을 전공한 엄씨는 채소 종자 회사에서 직장일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해외봉사도 다녀오고 결혼하고서도 프리랜서로 틈틈이 일했다. 하지만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재취업했다가 8개월 만에 좌절했다. 열악한 처우와 고무줄 퇴근시간 탓이었다.

‘CJ 제품 좋아요’식 소개서는 안 된다-나이 차이 등 어려움은 없나.

-태도가 관계를 좌우하더라. 먼저 입사한 사람에게 겸손하게 배운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아예 따질 필요가 없다.

- CJ의 ‘님’이라는 호칭이 중요한 포인트다. 마음으로는 그렇게 생각해도 선배님이라고 부르기도 그렇고 호칭이 애매하다. 하지만 님으로 통일하니까 자연스레 융합된다.

-CJ 리턴십 2기 지원자에게 조언해준다면.

- 채용설명회에서 상담받을 때 입사지원서 작성시 도움이 되는 질문을 전략적으로 던져라. 예를 들면 “마케팅팀에 지원하려는데 주력할 상품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을 수 있다.

- ‘CJ 제품을 좋아합니다, 사랑합니다’ 이렇게 뻔한 자기소개서를 쓰면 안 된다. 차별성이 있어야 한다. 관심 있는 CJ 제품이 어떻게 전시돼 소비자가 어떻게 구입하는지, 타사 제품과 비교할 때 개선점은 무엇인지를 분석해 자기소개서에 담아라. 소비자모니터 활동도 산업생태계를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돈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다. 도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 두드리지 않으면 문은 열리지 않는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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